삶의 여정 123

연구실 단상

연구실 단상 .내 연구실, 365일 특별한 일이 없으면 나는 이곳을 지킨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엉덩이가 무거워지는 것을 느낀다. 이게 과연 어쩔 수 없는 현상인가? 옛날보다 판단도 느리고 행동도 굼뜨다.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귀찮다는 생각이 가득하다. 사람 만나는 것도 귀찮고 새롭게 일 벌이는 일은 더욱 귀찮다. .‘귀찮다 마귀‘가 내 몸과 영혼을 갉아먹는다. 이 마귀를 떨구어내야 하는 데 어떻게 하면 될까? 나이 먹음의 장점, 그 경륜의 강점은 살리면서도, 무슨 일이든지 내가 해야 할 일을 피하지 않고 최선을 다할 수는 없을까? .나는 일이 있건 없건, 특별히 연구거리가 있건 없건, 아침 일찍 연구실로 나와 하루 종일 떠나지 않는다. 그런 생활이 어느덧 12년이 넘었다. 이제 이 생활에 너무 익숙해졌..

세계인권선언이란 무엇인가 -제70주년을 기념하며-

세계인권선언이란 무엇인가 -제70주년을 기념하며- 오늘은 세계인권선언 70주년 기념일입니다. 1948년 12월 10일 유엔이 선포한 세계인권선언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 정도는 알고 있지만, 세계인권선언이 정확히 어떤 것이고,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 지에 대해 묻는다면, 제대로 답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오늘 기념일을 맞이해, 제가 잠시 설명 좀 하겠습니다. .세계인권선언의 영어 명칭은 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입니다. 직역하면 ’인권에 관한 보편선언‘입니다. 명칭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인권‘(human rights)이란 단어와 ’보편적‘(universal)이란 단어입니다. 이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할 권리‘(인권)는 ’보편적으로 적용되어..

이들이 있기에 나는 이곳을 떠나지 못한다

이들이 있기에 나는 이곳을 떠나지 못한다 -이 시대의 작은 영웅들- 내가 이 공간을 수년간 떠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 사회에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아무리 보아도 대단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무시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글을 보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오프라인에서 만나다 보면, 같은 한국인으로서 동시대를 함께 산다는 게 어찌나 자랑스러운지 모르겠다. 내킨 김에 생각나는 대로 몇 사람을 열거해 본다. 본인들이 이 글 보면 부끄러워할 것 같아, 신상은 밝히지 않고, 그저 영문 알파벳으로 소개한다. .A 선생. 지방 고등학교 영어 교사. 포스팅하는 글마다 수백 명의 친구들이 열광적으로 ‘좋아요’와 댓글을 단다. 왜 그럴까 호기심이 생겨 유심히 읽어보았더니 그럴만하다. 그의 어린 ..

신참 변호사가 사건을 수임한다는 것, 그것은 어쩜 기적이다

신참 변호사가 사건을 수임한다는 것, 그것은 어쩜 기적이다 (위) 1990년 변호사 1년 차 시절. 서초동 정곡빌딩 사무실에서. (아래) 1990년 가을 개인 사무실을 내고 작은 개업식을 하는 장면 로스쿨을 졸업한 변호사 제자들이 법률사무소를 내고 있다. 아마 그들 대부분이 사무실 운영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고객이 찾아와 사건을 상담하고, 적정 수임료를 책정한 다음, 사건의뢰를 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잘 생각하면 신참 변호사가 사건을 수임하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어떤 사건이든 당사자에겐 중요하지 않은 사건이 없다. 그 사건은 당사자에겐 생명과 재산 그리고 명예와 관련이 있다. 일생일대 가장 큰 시련일지 모른다. 그래서 자기를 도와 줄 변호사를 찾아, 있는 돈 없는 돈 끌어 모..

초년 교수의 꿈

초년 교수의 꿈 교수 초년 시절 강의장면(위), 학생들과 청계천 걷기(아래) 제가 학교에 온지 12년이 넘었습니다. 교수 생활해 보니 학생들(아니 우리 모두)에게 무엇이 중요한 지가 눈에 보입니다. 그 중 하나가 자신이 공부하고 있는 곳, 학교에 대한 긍지라고 봅니다. 인생을 좀 먹는 온갖 콤플렉스가 여기에서 비롯되니까요. 제 컴퓨터 저장고에서 글 하나를 찾아냈습니다. 교수로 부임한 2006년 11월에 쓴 시입니다. 당시 저는 이 시를 쓴 다음 수업시간에 낭송을 했습니다. 학생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지요. 지금이야 이런 시를 쓰지 않습니다.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이런 방법이 아닌 조용한 방법으로도 그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에서 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기억합니다. 제가 이 시를 쓸 때 매우..

학자로서의 반성 -김윤식 선생의 타계를 애도하며- .

학자로서의 반성 -김윤식 선생의 타계를 애도하며- 김윤식 선생(1936-2018) 문학평론가 김윤식 선생이 타계했다. 선생은 학문 없는 세상에서 학문이 무엇인지를 몸으로 실천한 분으로 통한다. 그의 삶은 오로지 공부의 연속이었다. 오로지 읽고 오로지 썼다. 200권이 넘는 저서가 그의 삶을 오롯이 증거한다. 그의 학문하는 자세, 그의 학문에 대한 열정과 성실성에 존경의 염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김윤식 선생이 보여준 학문하는 자세는 그 길에 들어서길 원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해 봐야 한다. 그것 없이는 어떤 이도 제대로 된 학자는 아니기 때문이다. 요즘과 같은 현실에서 이런 말이 얼마나 공감을 받을까 만은 그래도 우리는 이상을 버릴 수 없다. 그것이 한심한 현재를 이길 수 있는 힘이기 때..

젊은 날의 초상 -21살 고시생의 상념- .

젊은 날의 초상 -21살 고시생의 상념- . 우연히 서가를 정리하다가 옛날 쓴 글을 발견했다. 그 중 하나를 여기에 소개한다. 대학 3학년 시절(만 21세)의 글인데, 나는 그 때 한참 고시공부 중이었다. 겨울방학 직전 고시반 기숙사에서 쓴 글이다. 긴 글이라 앞뒤를 빼고 중간 부분만 발췌한다. .이 글을 읽어보니 내 문체가 어쩐지 지금과는 많이 다르다. 약간 신파조다. ㅎㅎ 그러나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내용이다. 내 20대 초의 상념이 무엇이었는지 그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글이다. 마치 젊은 시절 한 순간을 흑백사진으로 찍어 놓은 것 같은 내용이다. .“삶이란 단지 환락은 아닌 것, 삶은 욕망과 결심. 인간은 가문으로서 고상해지지는 않는 것. 얼마나 많은 거룩한 이들이 살인자의 후예인가? ..

눈부신 변화 속에 사는 우리들

눈부신 변화 속에 사는 우리들 1993년 삼성에서 출시한 그린 컴퓨터 아침에 일어나니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난다. 시답지 않은 이야기일지 모르겠다. .우리는 엄청난 변화 속에 산다. 컴퓨터 하나만 예를 들자. 내가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변호사가 될 무렵만 해도 사무실에서 컴퓨터를 구경할 수 없었다. 그 때는 변호사가 육필로 초고를 작성하면 사무원이 그것을 보고 타자를 쳐 문서를 작성하던 때다. .내가 처음 컴퓨터로 문서작성 하는 것을 눈으로 본 것은 1986년 1월 경 서울민사지방법원 판사실에서였다. 나는 당시 사법연수생으로서 법원 시보를 하고 있었는데, 잠시 배치된 곳이 단독판사실이었다. 두 명의 단독판사가 쓰는 방 귀퉁이에 책상 하나를 받아 숨죽이며 시보생활을 하던 시절이다. 그 방에서 만난 뛰어난 젊..

페북 고수가 되는 비결 대공개!

페북 고수가 되는 비결 대공개! “선생님처럼 글을 쓰고 싶은데 잘 안 됩니다. 선생님의 페북 글쓰기 비결을 간단히 공개 글로 써 줄 수 있습니까. 글을 써서 뭔가를 세상에 전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큰 교훈이 될 것 같습니다.” .이런 문자가 왔습니다. 그냥 웃으며 지나칠까 하다가 토요일 아침 자판을 두드립니다. 간단히 답하겠습니다. .페북은 문명의 이기가 만들어낸 최첨단의 글쓰기 플랫폼입니다. 이것의 장점은 특정 글의 평가가 거의 실시간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이곳에선 아무리 훌륭한 글이라도 하루가 지나가면 독자가 읽을 가능성이 거의 없습니다. 페북 알고리즘 때문일 겁니다. 따라서 페북 글은 포스팅한 지 한 시간 내에 결판이 납니다. 제 경우를 보면 이 시간 내에 ‘좋아요’ 개수 100을 넘지 못..

어떤 결혼 파티에서 있었던 일

어떤 결혼 파티에서 있었던 일 . 엊저녁 매우 유니크한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한국 남자와 덴마크 여자가 결혼하는 행사였습니다. 결혼식이라기보다는 결혼 파티라고 하는 게 맞겠군요. 신랑 신부가 가까운 친구를 초대해 저녁 식사를 나누면서 즐겁게 담소를 나누는 자리였습니다. 두 사람은 나이가 든 상태에서 인연을 맺기에 이미 사회적으론 상당히 알려진 분들입니다. .서로를 안지 상당한 시간이 흘러 정식 결혼(법률혼)을 결정했답니다. 아마 오래 동안 어제의 결정을 위해 탐색의 시간을 가진 모양입니다. 한 사람은 런던에서, 또 한 사람은 세계를 무대로 여기저기를 돌아 다니는지라, 다른 사람들과는 매우 다른 환경에서 사랑의 마음을 키워 왔을 겁니다. .어제 저를 매우 흥미롭게 만든 한 가지는 결혼신고와 관련된 에피소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