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인생/법률

‘영혼의 운명’을 건 어느 변호사의 미국 대법원 판례 번역작업

박찬운 교수 2017. 6. 3. 09:59

영혼의 운명을 건 어느 변호사의 미국 대법원 판례 

번역작업

 



학문하는 자세에 관해서 말할 때 막스 베버의 말을 자주 인용합니다. 그는 <직업으로서의 학문>이라는 소책자에서 학자가 갖추어야 할 내적 자질에 대해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일단 눈가리개를 하고서, 어느 고대 필사본의 한 구절을 옳게 판독해 내는 것에 자기 영혼의 운명이 달려 있다는 생각에 침잠할 능력이 없는 사람은 아예 학문을 단념하십시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우리가 학문의 체험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결코 자기 내면에서 경험하지 못할 것입니다.”(막스 베버(전성우 옮김), <직업으로서의 학문>, 34)

 

저는 이 구절을 읽으면서 전율합니다.

 

나는 과연 어떤 문제에 내 영혼의 운명을 걸면서 침잠해 본 적이 있었는가. 그 문제를 풀지 않으면 내 인생은 없다는 각오로 몸과 정신을 불태운 적이 있었던가. 아무리 생각해도 저의 현실은 너무나 거리가 먼 듯합니다. 부끄럽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주변을 돌아보니 한 사람이 눈에 띕니다. 젊은 시절부터 저에게 큰 모범을 보여준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야말로 베버가 말한 저 학문의 자세를 제대로 실천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인물이 아닐까요.




박승옥. 그는 교수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그는 이 시대 학문하는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는 학인 중의 학인이라고, 저는 감히 말하겠습니다. 그는 법 실무에 종사하는 변호사로, 저보다 2년 선배이니(사법연수원 14), 이미 그 세월이 30년이 넘었습니다.

 

그는 서울 변호사가 아닙니다. 출중한 능력이 있고, 김앤장이란 국내 최고의 로펌에서 고액연봉을 받았던 변호사였음에도 불구하고, 부와 명예를 다 떨구고 이십 수년 전 고향인 목포로 내려가, 이제껏 그곳을 지키면서, 지방 변호사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가 서울을 떠나기 전, 저는 그와 자주 만났습니다. 당시 저는 감옥 문제에 관심을 갖고 몇 몇 동료 변호사들과 함께 공부했는데, 그는 그 공부모임의 일원이기도 했습니다. 1993년 제가 제안해 만든 서울변호사회 행형연구소위원회가 조그만 책 한 권을 만들어 냈을 때, 그 속에 나오는 피구금자에 관한 최저기준규칙이라는 인권원칙을 번역한 이가 박승옥입니다. 그와는 감옥과 관련된 헌법재판도 함께 했습니다. 아마 지금, 헌법재판 정보 사이트에 들어가 제 이름을 치면, 검색되는 몇 개의 결정 중 하나가 바로 그 사건입니다.

 

1993년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 발간된 책, 이 속에서 박승옥 변호사는 '피구금자최저기준규칙'이란 인권원칙을 번역했다.


서울에서 잘 나가는 변호사가 고향에 내려간다면, 대개는 여생을 편안하게 살기 위함이 아닐까요. 그런데 박승옥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목포에 내려가 그가 한 일은 그 지역의 소외된 사람들의 억울함을 밝히는 일이었습니다. 지난 20년 이상 그가 광주 목포 지역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아마 알 만한 사람은 다 알 것입니다. 그는 지역 전교조 선생님들의 벗이었고, 민주화 인권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든든한 수호자였습니다.

 



제가 오늘 박승옥이란 사람에 대한 글을 쓰는 이유는 그의 지난 20년 업적 중 특별하고도 대단한 업적 하나를 소개하기 위함입니다. 그는 실무가이면서 미국 형사법 연구가로서 젊은 시절부터 지금까지 줄곧 미국 형사법을 연구해왔습니다. 그의 연구의 본령은 미국 연방대법원의 형사법 관련 판결 중 인권적으로 의미가 있는 것을 발굴해, 그것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일이었습니다. 미국 대법원 판결 전문을 단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그 전문번역이란 게 정말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미국 대법원의 판결문은, 거의 예외 없이, 기가 질리도록 길고 지루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다는 것은 미국 법률가라 할지라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우리나라의 연구가들이 미국 판례를 종종 언급하지만 그게 관련 판결문 전체를 읽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하기야 우리나라 판결문도 필요한 부분만 읽는 게 현실입니다). 대부분 그 판결의 요지만을 읽어보는 것인데, 박승옥 변호사는 그 판결문 전체를 읽고, 그것을 우리말로 번역한 것입니다. 그것도 한 시기가 아니라 19세기 말부터 최근까지 100년에 걸쳐 나온 판결문을 하나하나 검토해,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판결문을 무려 100여 개나 번역했습니다.

 

박변호사는 이 번역을 지난 2007년 이후 시리즈물로 출간해 왔습니다. 지금까지 나온 것만 열거해 볼까요. <미란다 원칙>(2007),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2008), 위법수집증거배재원칙 I, II(2009), <적법절차:자기부죄금지특권>(2013), <적법절차:자백배제법칙, 배심제도, 이중위험 금지원칙>(2013) 등입니다. 이들 책 쪽 수만 합쳐도 2000여 쪽이 넘는 방대한 양입니다. 2013년엔 그 저술의 압축판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형사판례 90>이란 책을 내기도 했습니다.

 

원래 이런 번역과 저술은 학교에 있는 저 같은 사람이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작업을 바쁜 일상 속에 살아가는 변호사가 해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능력, 그 성실함에 혀를 내두를 뿐입니다. 이것은 보통의 학자들이 감히 손댈 수 있는 업적이 아닙니다. 한국의 교수들은 지금 별로 보지 않는 논문 쓰기에 시간을 다 보내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이런 작업을 하라고 하면 다 뒤로 넘어질 겁니다. 이런 것을 한다고 해서 교수업적으로 인정받질 못하거든요. 그리고 무엇보다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립니다.

 



이것은 미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작업입니다. 이런 작업을 했다고 해서 변호사가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무슨 유명세를 타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여 년 간 줄기차게 번역작업을 해 왔으니 도대체 그 힘이 어디서 나왔을까요? 연구대상입니다.

 

박승옥 변호사가 미국 형사법 연구가라 불려도 미국에서 유학한 일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미국 유학을 다녀온 사람이 하지 못한 일을 해 왔습니다. 그의 영어실력? 잘 모릅니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가 탁월한 양어 해독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20여 년 전 그가 외국 사람 앞에서 영어로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는데, 당시 제가 느낀 것은 박승옥의 영어는 완전히 성문종합영어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느릿느릿한 발음으로, 가끔 에ㅡ에ㅡ하면서 또박또박 말하는 영어, 지금 영어 잘하는 젊은 세대가 들으면, 무슨 식민지 시절 영어 배웠느냐고 할지 모르는 영어를 그는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요즘 젊은 세대가 도저히 흉내 내지 못하는 일을 해냈습니다.


 




박승옥 그는 맑고 고운 영혼을 가진 사나이입니다. 이제 곧 60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그의 얼굴은 언제나 젊은 청년입니다. 그가 2004년 쓴 <법률가의 초상>이란 에세이를 보면 그가 어떤 삶을 살아 왔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고향에 내려가 전교조 선생님들을 만나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싸워나간 일화를 읽다보면, 세상엔 이런 순수한 사람이 있어, 우리가 인간에 대한 희망을 놓을 수 없는 모양입니다. 

 

만일 그가 서울에서 법률가 생활을 했더라면 세상은 그를 지금보다 훨씬 잘 알고 있을 겁니다. 그의 행동반경은 지금보다 더 넓었을 것이고, 그의 영향력은 지금보다 더 컸을 겁니다. 그로선 그게 좀 한이 될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우리는 그로부터 더 큰 것을 얻었습니다. 그 사람이야말로 막스 베버가 말한 영혼의 운명을 걸 줄 아는 진짜 학자가 아니겠습니까. 그가 아니라면, 어느 누가 목포의 밤을 미국 대법원 판결로 지새웠을 것이며, 어느 누가 오늘 날의 박승옥의 대작을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요.

 

진즉 그의 업적을 소개하고 싶었지만 저의 게으름으로 하지 못했습니다. 오늘 드디어 그 일부를 보여드렸습니다. 이 글이 20년을 바친 그의 정성과 헌신에 조그만 선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박승옥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