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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고전강독1 인간 불평등의 기원

박찬운 교수 2016. 4. 22. 13:41

인권고전강독1

 

 

인간 불평등의 기원


 

어떤 토지에 울타리를 두르고 이것은 내 것이다선언하는 일을 생각해 내고, 그것을 그대로 믿을 만큼 단순한 사람들을 찾아낸 최초의 사람은 정치사회(국가)의 창립자였다. 말뚝을 뽑아내고, 개천을 메우며 이런 사기꾼이 하는 말 따위는 듣지 않도록 조심해라. 열매는 모든 사람의 것이며 토지는 개인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잊는다면 너희들은 파멸이다!” 동포들에게 외친 자가 있다고 한다면, 그 사람이 얼마나 많은 범죄와 전쟁과 살인, 그리고 얼마나 많은 비참함과 공포를 인류에게서 없애 주었겠는가?“ (<인간불평등기원론/사회계약론>(최석기 옮김), 94)

 

이 말은 장 자크 루소(1712-1778)<인간불평등기원론> 2부 첫머리에 나온다. 내가 보기엔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곳이 바로 이 부분이며, 다른 부분은 이 말의 부연설명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인간불평등기원론>은 디종 아카데미가 1753년 논문현상공모를 하면서 낸 문제(인간 불평등의 기원은 무엇인가?)에 대해 루소가 답한 논문이다. 아쉽게도 이 해 논문심사에서 이 논문은 심사자들의 눈에 들지 못함으로써 루소는 낙방의 고배를 마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이 논문은 그 가치를 인정받았고, 루소 사후엔 불후의 명저로 세계인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다.

 

나는 매년 인권사상사나 인권법 강의를 하면서 이 책을 학생들과 함께 읽는다. 특별히 위 부분을 읽을 때는,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은 다음 학생들과 토론을 하는데, 꽤나 즐거운 경험이 되고 있다.

 

루소가 생각하는 인간 불평등의 기원은 소유제도라는 것이다. 이 소유제도를 만들기 위해 국가가 만들어졌으며 그것이 바로 법의 기원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이 저 한 단락에 함축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한번 나와 함께 저 단락을 잠시 분석해 보자.

 

우선 소유권이 탄생한 과정을 보자. 어느 날 한 사내가 나타나 땅에 울타리를 두르고 오늘부터 이 땅은 내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그런데 이러한 선언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그대로 인정했다. “그렇소, 그 땅은 당신의 땅이오라고 했다는 것이다. 자연상태에선 세상의 모든 땅은 누구의 소유도 아니었을 텐데, 이게 어느 날부터 누구의 땅이 되었다. 어떻게 해서? 누군가가 자신의 것이라 선언하고, 이에 대해 사람들이 그것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거기에서 소유권이라는 게 탄생했다.

 

만일 루소의 말대로 누군가가 이 땅은 내 것이오라고 했을 때, ”, 이 사기꾼아, 어떻게 해서 이 땅이 네 땅이냐, 이 땅은 우리들 모두의 땅이지라고 말했다면 소유제도는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사람들이 땅을 배타적으로 사용하고 처분하는 방식을 인정하지 않았다면, 소유권(혹은 소유제도)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상 그런 민족들도 많았다. 유목민족 중에서 특별히 그런데, 예컨대 몽고족이나 미주대륙의 인디언들은 개인에 의한 토지 소유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많은 민족(특히 농경민족)들이 이러한 소유관념을 인정했다. 그게 사회적 합의에 의해 이루어진 인정인지는 불명확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 소유관념의 인정을 항구화시키는 데 있어 필수 불가결한 존재가 국가라는 사실이다. 또한 국가가 그 소유관념을 제도화시키는 데 수단으로 사용한 게 법이란 사실이다.

 

결국 루소의 생각으론 인간불평등의 기원은 소유를 둘러싼 국가의 탄생, 법의 탄생이다. 그런 이유로 루소 사후 반 세기도 지나기 전에 인류사회의 평등을 목표로 탄생한 사회주의가 국가와 법 그리고 소유제도를 1차적 공격대상으로 삼은 것은 필연적인 일이었다. 

 

(2016. 4.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