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인생/안데스에 서다

희망의 땅 안데스에 서다(10)-죽음과 희망의 경계, 아타카마 사막-

박찬운 교수 2024. 1. 24. 13:53

희망의 땅 안데스에 서다(10)

-죽음과 희망의 경계, 아타카마 사막-

 
 

아타카마 '달의 계곡" 화성에 가보지 않았지만 이런 모습이 아닐까?

 
 
12월 27일 볼리비아 알티플라노를 드디어 통과하고 칠레 국경에 도달했다. 국경을 통과하자마자 비포장 길이 아스팔트 길로 바뀌었다. 비문명에서 문명권으로 들어오는 기분이다. 볼리비아와 칠레의 차이는 도로부터 극명하다. 인접국가와의 경제력의 차이를 여행자들은 이렇게 실감한다.

버스는 고도 4천 미터에서 서서히 하강을 시작하더니 삽시간에 2500미터로 내려왔다. 일행 중 며칠간 고산병으로 고생하던 사람도 눈에 띄게 차도가 있다. 고도가 이렇게 사람 몸에 영향을 주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일반적으로 아타카마 사막은 지도의 노란색 부분을 말한다. 즉 칠레 북부 지역으로 페루 국경지역까지를 말한다. 오렌지색 부분은 그 주변 건조지대로 아타카마 사막의 연장(범 아타카마)이라고 보면 좋다.

 
점심 무렵 우리가 도착한 곳은 아타카카 사막 여행의 출발점인 산 페드로 데 아타카마. 조그만 마을인데 사막 한 가운데 있는지라 현대적인 건물은 없고 죄다 창문도 없는 단층의 흙벽돌집이다. 사막에서 불어오는 폭풍을 막는 데는 아마도 이런 집이 제격일 것이다.
 

달의 계곡, 퇴적암석이 마치 병풍을 친듯하다. 바람이 세차 시간이 가면서 병풍 같은 암석은 고운 모래로 변한다.

 
사실 우리 여정에서 아타카마 사막의 비중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것에 불과하다. 아타카마 사막을 제대로 보기 위해선 하루 이틀로 될 일이 아니다. 지도를 펴서 이 사막의 위치를 보면 이 사막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이 사막은 이 여행기 제3회에서 다룬 나스카 라인이 있는 페루 리마 남쪽의 태평양 연안 사막지대의 연속이다. 다만 협의의 아타카마는 칠레 북부만을 가리키는데 그것만도 길이가 거의 1600킬로미터. 아마도 단일 사막으론 사하라 사막, 타클라마칸 사막에 이어 세 번째 정도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런 대규모의 사막이라 태평양 연안의 저지대도 있지만 동쪽으로 들어가면 4천, 5천 미터의고원지대가 펼쳐진다.

알티플라노에서 일주일 이상 보내니 내 모습이 이렇게 변했다.

 
말이 나왔으니 잠시 이 지역 대부분이 현재 칠레 땅이 된 연유를 알아보자. 원래 이 지역은 페루, 볼리비아, 칠레가 공동으로 영유하였으나 소위 태평양 전쟁(1879-1883)으로 인해 볼리비아가 완전히 영유권을 잃고 말았다.

볼리비아는 이 전쟁 전까지만 해도 포토시 근처나 아타카마 사막 이곳저곳에서 나온 광물을 열차를 통해 자신들의 도시인 태평양 연안의 항구 도시 안토파가스타로 실어날라 해외 수출을 함으로써 상당한 이익을 취했다.
 

달의 계곡, 표면은 소금기로 마치 눈이 내린듯 하다.

 
19세기 후반 이 지역은 구리 초석 그리고 구아노가 많이 채굴되어 지하자원의 보고가 되어 갔고, 돈 많은 칠레인들이 여기에 자본을 투자했다. 이런 상황에서 볼리비아가 칠레인들에게 불리한 조세정책을 펴자 자국민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칠레 정부가 개입을 했고 이것이 전쟁으로 비화되었다. 전쟁은 볼리비아와 페루가 동맹을 맺고 칠레와 싸웠으나 결과는 칠레의 승전으로 귀결되어 볼리비아는 아타카마의 영유권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볼리비아가 지금 남미 최빈국이 된 것은 이 전쟁의 영향이 아직도 계속된다고도 할 수 있다. 볼리비아는 여전히 지하자원이 풍부하지만 이것을 개발해 세계로 수출하기가 지리적으로 쉽지 않다. 역사에서 가정은 없지만 만일 태평양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볼리비아의 현재는 어떤 모습일까?
 

달의 계곡, 바위 형상이 신기해 많은 이야기 거리를 제공한다.

 
이렇게 아타카마 사막은 엄청난 규모에다 페루, 칠레, 볼리비아의 역사가 점철된 곳이다. 느긋하게 돌아 볼 시간은 없지만 언제 아타카마에 다시 올 수 있으랴. 무리라고 생각했지만 일행 중 대부분은 오후 몇 시간을 아타카마 사막 투어에 투자하기로 했다. 산페드로데아타카마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달의 계곡’을 찾은 것이다.
 

달의 계곡. 생명체란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달의 계곡은 아타카마 사막을 약간이라도 맛보기엔 제격인 곳이다. 이곳이야말로 진정한 데스 밸리(death valley), 1년 내내 비 한 방울도 내리지 않는 아타카마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곳이다. 마치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에 온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곳이다.

NASA도 화성에 우주선을 보내기 위한 실험을 할 때 이곳을 이용한다고 한다. 이곳이 화성의 표면과 매우 흡사하기 때문이다. 화성을 무대로 하는 SF 영화도 곧잘 이곳에서 촬영한다고 하니 ‘지구에 있는 또 다른 행성’이라는 표현이 딱 맞는 곳이다. 단 몇 시간 이곳에서 모래 바람을 맞은 게 전부지만 아타카마의 비현실적 모습은 머릿속에서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생각해 보면 아타카마는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죽음의 땅이지만, 그것이 이 땅을 특별하게 만들었으니 희망의 땅이기도 하다. 아타카마에 비가 내린다면 그것이야말로 아타카마의 진정한 죽음이다.  (희망의 땅 안데스에 서다 10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