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인생/남부독일 여행기

2018년 남부 독일을 기록하다(2) 독일 남부의 보석, 콘스탄츠

박찬운 교수 2018. 7. 8. 13:01

 2018년 남부 독일을 기록하다(2)


독일 남부의 보석, 콘스탄츠


 

콘스탄츠 대성당 첨탑에서 본 콘스탄츠 전경



학술대회가 끝났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콘스탄츠 구 도시(old city)를 볼 차례다. 크지 않은 구 도시를 걸으면서 많은 것을 보았고 많은 생각을 했다. 잠시 그것을 스케치해보자. 콘스탄츠는 독일의 바덴 뷔르템부르크 주(주도 프라이부르크)의 한 도시다.

 

콘스탄츠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이곳에 와서 며칠 지내다 보면 이곳이 오랜 세월 영광의 도시였음을 곧 알 수 있다. 알프스에서 내려오는 물이 모여 만든 보덴제(Bodensee)는 독일 내에서 가장 큰 호수다. 면적 536 평방킬로미터. 서울 전체 면적에 육박한다. 이 보덴제에서 라인강이 시작하고, 그것을 사이로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가 국경을 맞대고 있으니, 콘스탄츠의 지정학적 위치를 이해할 수 있다. 그러니 역사적으로 중요한 교황청 회의가 이곳에서 이루어진 것도 우연이 아니다. 교회사의 한 페이지를 차지하는 종교개혁가 얀 후스의 종교재판이이루어진 것도 이곳이다. 바로 콘스탄츠 공의회(1414-1418).

 

콘스탄츠의 명물 임페리아. 9미터 높이의 조각상은 1993년 조각가 피터 렌크가 만든 것이다. 1414-1418년 이곳에서 열린 콘스탄츠 공의회를 기념하기 위한 조각상이라고 한다. 잘 보면 매우 흥미로운 것을 볼 수 있는데 임페리아의 양 손에 들려 있는 두 사람이다. 왼 손에 들린 사람은 교황(마틴 5세), 오른 손에 들린 사람은 황제(지기스문트)다. 한 마디로 임페리아가 교황과 황제를 갖고 놀았다는 말이다. 종교개혁가 얀 후스를 사형시킨 콘스탄츠 공의회를 풍자하는 내용이다. 원래 임페리아는 15세기 말 교황청의 궁녀였다고 하는 데 역사적으로 콘스탄츠를 방문한 적은 없다. 이 여인은 소설가 발자크가 쓴 '라 벨레 임페리아'의 주인공으로 나오는데 피터 렌크는 이 소설을 소재로 이 작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콘스탄츠 하버 근처에 있는 콘질(Konzil). 바로 이 건물이 1414년 콘스탄츠 공의회가 열린 건물이다. 지금은 식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호수에서 보면 저 멀리 알프스의 설산이 보인다. 배를 타고 보덴제 유람을 하면 수려한 경치에 연신 탄성이 나온다. 이런 자연경관을 구경하기 위해 독일 각처에서 그리고 세계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이 찾아온다. 그러나 내겐 이런 자연환경보다 역사의 연륜을 그대로 볼 수 있는 콘스탄츠 구도심에 눈이 간다. 도시 전체를 보기 위해선 콘스탄츠 대성당만한 곳이 없다. 성당 내로 들어가 2유로를 내고 첨탑을 올라가면 보덴제와 콘스탄츠 시내 전체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공중에서 내려다보는 콘스탄츠는 말 그대로 고색창연한 도시다. 중세의 맛을 그대로 볼 수 있는 독일의 일급 역사도시다.


 

구도심 광장과 분수대. 이곳에 설치되어 있는 조형물이 매우 특이하고 아름답다.



독일 사람들이 이곳을 자랑으로 하는 이유 중 하나는 독일 대부분 도시와 달리 전쟁으로부터 피해를 입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영세 중립국 스위스가 바로 옆에 있기 때문이다. 구도심에서 걷다보면 이미 한 발은 스위스로 들어가 있다. 이것으로 양차 대전 중 연합군이 이곳을 폭격하지 않은 이유가 설명된다. 그러다 보니 구도심 곳곳의 옛 건물들은 그 나이를 자랑한다. 건물 벽면에 건립연도를 써놓은 건물들이 보이는데, 다수의 건물이 600년을 넘는다. 이런 건물들이 대부분 점포로 사용되니 우리로선 상상이 안 된다. 물론 이들 건물이 이렇게 사용되는 것은 건축 이후 끊임없이 보수에 보수를 거듭해 오늘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도시 한 가운데에 이번 학술대회 중 이틀을 드나든 라트하우스가 있다. 무려 500년이나 된 건물이다. 그러나 이런 건물도 여전히 사람들이 사용하는 공간이다. 온고지신이란 이런 것을 말한다. 과거와 현재가 완벽하게 공존한다. 약간의 불편함은 전통과 역사라는 훈장을 선사하므로 주민들은 큰 불만이 없다. 오히려 그것은 이곳 사람들에겐 큰 자랑거리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한다. Old is beautiful!


 

콘스탄츠 구 도심에 있는 건물들, 외벽을 잘 보면 건축연대가 보인다. 위 사진들은 1400년대 건축된 건물들을 찍은 것이다.



콘스탄츠 구 도심의 한 광장에서 찍은 사진. 저 건물 외벽을 보면 화려한 벽화가 그러져 있다.


현재 콘스탄츠는 역사도시이면서도 교육도시로 알려져 있다. 콘스탄츠 대학이 있기 때문이다. 인구 8만 중 2만 명 정도가 이 대학의 학생이거나 교직원 또는 그 가족이다. 다만 이 대학은 독일의 다른 유명대학과 달리 그 역사가 매우 짧다. 공식 개교연도는 1966. 물론 과거에 대학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유서 깊은 프라이부르크 대학의 분교가 이곳에 있었다고 한다.


독일과 스위스를 구별해 주는 조형물이다. 왼쪽은 독일, 오른쪽은 스위스다.


콘스탄츠는 스위스와 바로 국경을 맞대고 있다. 도심을 걷다보면 어느새 스위스로 월경한다. 국경이라고 하는 곳에 간단한 경계석이 있다. 나도 거기에 서서 사진 한 장을 남겼다.

 


콘스탄츠 대학은 구도심에서 버스로 20여 분 걸리는 한적한 교외에 있다. 학교 건물에서 보이는 보덴제는 역시 아름답다. 하지만 학교 캠퍼스는 그다지 맘에 와 닿지 않는다. 구도심의 아기자기한 중세건물을 보다가 갑자기 이곳 콘크리트 건물을 보다보면 생경한 것 이상으로 부조화를 느낀다. 역사 도시에서 이런 기능적 현대식 건물은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요인이다.

 


보덴제 내의 섬, 마이나우에서 본 보덴제.



보덴제 내의 작은 섬 마이나우는 식물원으로 유명하다. 섬 전체가 독일의 바덴 대공과 스웨덴의 레나르트 베르나토테 백작 소유라고 한다. 아래 건물은 섬 내의 바로크 스타일의 궁전.



콘스탄츠는 도심을 제외하곤 거대한 숲이다. 내가 묵은 호텔에서 몇 발자국만 띄면 이런 숲이 펼쳐진다.


학술대회가 끝나고 콘스탄츠를 떠나기 전 잠시 짬을 내 호텔 주변 숲 속을 걸었다. 시내를 조금만 나가면 보덴제를 끼고 펼쳐지는 숲 속 한 가운데로 들어간다. 수십 년 혹은 수백 년이 된 거목들이 즐비하다. 숲속엔 보행에 편한 길이 거미줄처럼 조성되어 있고 곳곳에 쉼터가 있다. 나는 이곳에 들어가 몇 킬로미터를 걸었다. 한 시간 동안 걷는 동안 단 한 사람, 개를 끌고 나와 산책을 하는 어느 여인을 만났을 뿐이다. 이런 게 진짜 삼림욕이다. 갑자기 아무 것도 입지 않고 산보하는 꿈을 꾼다. , 그래서 이곳에 자연주의자들이 많은 모양이다. 순간 옷을 훌훌 벗어던지고 마냥 걷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어찌할까?(3편으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