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인생/남부독일 여행기

2018 남부 독일을 기록하다(6) 진품명품을 찾아 뮌헨으로(1) -알테 피나코테크-

박찬운 교수 2018. 7. 16. 09:26

2018 남부 독일을 기록하다(6)


진품명품을 찾아 뮌헨으로(1)

-알테 피나코테크에서 뒤러의 자화상을 만나다-


 


뒤러의 자화상(알테 피나코테크)



뮌헨이 작은 아테네가 된 이유


바이에른의 수도 뮌헨엔 볼 게 많다. 주마간산 격으로 본다고 해도 하루 이틀로 가능한 게 아니다. 그러나 이번 여행에서 내가 뮌헨에 온전히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은 오로지 하루이 짧은 시간 내에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서울을 떠나기 전부터 결정한 것은 보고 싶은 미술작품 몇 점을 보는 것이었다옛날부터 뮌헨에 가면 꼭 보고 싶은 진품명품이 몇 개가 있었다그것을 보러 가자!

 

뮌헨을 대표하는 미술관은 역시 피나코테크다. 이것은 그리스어로 미술관이란 뜻피나코네크를 처음 만든 이도 그 유명한 바이에른의 왕 루드비히 1세다. 그가 얼마나 그리스를 좋아하는 지는 이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다유럽 사람들이 좀 뭔가 있어 보일 때는, 우리 한자에 해당하는 라틴어를 쓰는 데, 이 사람은 라틴()엔 눈길도 주지 않고, 마냥 그리스를 좋아했다. 그는 독일이 그리스의 진정한 후예라고 생각했다. 그런 이유로 루드비히 치하의 바이에른 특히 뮌헨엔 고대 그리스를 연상시키는 많은 공공 건축물이 들어선다


 


루드비히 1세의 차남으로 그리스의 왕이 된 오토(노이에 피나코테크에서 촬영)



그가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독일이 수많은 제후국으로 분열된 채로 천 년 이상 살아왔기 때문에 그 하나하나를 그리스 식 폴리스로 여겼는지 모른다또한 이 시기 바이에른이 신생 독립국인 그리스와 특별한 관계에 있었다는 것도 주목해야 한다즉 그리스가 오스만 터키로부터 독립하는 과정에서 루드비히의 둘째 아들 오토가 그리스 왕이 되었다는 사실이다이런 상황에서 뮌헨은 그리스를아테네는 뮌헨을 닮는 매우 흥미로운 상황이 만들어졌다.


 


글립토테크 근처의 그리스의 문, 루드비히 1세가 얼마나 고대 그리스에 열광했는지를 알 수 있는 건축물 중 하나다.



여하튼 지금 뮌헨엔 루드비히 1세 때 만든 알테 피나코테크 이외에도  그 이름을 따라 만들어진 노이에 피나코네크 와 모던 피나코테크가 있다알테는 18세기 이전의 회화를노이에는 19세기의 회화를모던은 20세기 이후 회화를 전시한다나는 이 중에서 알테와 노이에를 선택해 오전에 관람하고, 오후엔 그리스 로마 조각상을 모아 높은 글립토테크(이것도 그리스어로 조각을 뜻하는 글립토에서 나왔음)를 찾았다. 이 관람은 현지에서 만난 정선균 박사 내외와 함께 했다. 내가 1일 가이드로 자청한 것이다. 오늘 이 글에선 우선 알테 피나코테크를 다뤄 본다.




 뒤러의 자화상 앞에서 나는 정박사 내외에게 뒤러의 이 그림에 대한 내 글을 읽어주었다.



알테 피나코테크의 제1의 명화뒤러의 자화상


알테 1번방에서 나를 맞아준 이는 알베르히트 뒤러다그의 대표작인 '자화상'과 '4명의 사도'가 방 중앙에서 관람객을 맞는다이 사람이 독일 사람들에게 얼마나 각별한 지는 제4화 독일 민족주의의 전당 발할라를 소개하면서 그의 흉상이 그곳에 모셔져 있다는 데에서 알 수 있다그는 독일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뛰어난 그림 실력을 가진데다 그것을 판화로 제작할 수 있는 기술까지 가진 예술가였다.

 



알테 피나코테크 1번방의 또 다른 뒤러 작품, <4명의 사도>



나는 그가 그린 초상화 중 1500년에 그린 그의 자화상을 특히 좋아한다일견하여 매우 도전적인 작품으로 미술사적 주목을 받은 작품이다이 그림은 내가 판단하기엔 모나리자 보다 낫다. 그는 고급진 옷을 입고 형형한 눈빛으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자신만만한 태도다미술사적으로 보아 이 시기 예수를 제외하곤 일반 사람을 이런 식으로 그린 초상화가 없다이것이 미술사가들이 관심을 갖고 이 초상화를 보는 이유다


나는 이에 대해 언젠가 이곳 인문명화산책' 코너에서 뒤러의 이 초상화를 다룬 적이 있다. 그 글을 찾아 이 자화상 앞에서 정선균 박사 내외에게 읽어주었다그 부분은 이렇다.


한 금발의 젊은이가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정면의 초상화미술사를 공부한 사람들이라면 쉽게 알 수 있겠지만 이 시기(16세기이런 정면상의 초상화는 매우 이례적이다일반적으로 정면화는 보통 사람의 초상화에선 거의 볼 수 없다정면 상을 볼 수 있다면 예수나 성모 마리아의 초상화에서나 가끔 볼 수 있을 뿐이다.

 

보통의 초상화란 어떤 것일까잘 생각해 보라동 시대의 작가 레오나드로 다빈치의 <모나리자>다빈치는 모나리자의 정면 상을 그리지 않았다자연스럽게 45도 각도로 앉아 있는 모나리자를 그린 것이다.

 

정면을 바라다 보는 뒤러는 비싼 모피 코트를 입었다위엄있고 기품있는 옷이다황금빛 금발은 어깨 아래까지 늘어뜨렸다거기에다 눈동자는 형형하다배경은 어둡고그만큼 얼굴은 빛난다자신만만한 표정이다.

 

이 자화상이 보는 이에게 무언가 강한 충격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그렇다고 해서그것만으론 뒤러의 자의식을 쉽게 판단하기 어렵다그렇다이 자화상을 볼 때한 그림을 더 보아야 한다그래야만 그의 의도가 무엇인지 확연히 알 수 있다.

 

아래 그림을 보라한스 멤링의 <세상의 구원자>라는 초상화다멤링은 뒤러보단 한 세대 앞 선 독일 화가인데이 그림은 그가 그린 예수의 초상화다이 초상화와 뒤러의 위 자화상을 비교해 보자대번에 뭔가 알 수 있지 않은가뒤러의 자화상는 이 초상화를 모방한 것이 아닌가!

 

그렇다뒤러는 멤링의 예수 초상화를 토대로 자신의 자화상을 그린 것이다뒤러는 예수와 같이 정면을 응시한다배경도 예수 초상화와 같이 검은색이다다만 손짓은 조금 다르다이것은 아마도 전부 같게 그리면 예수 상으로 오인 받을 것 같아 그랬을 것이다.”



한스 멤링, <세상의 구원자>, 1478


 


알테 피나코테크의 한 방에서 선생님으로부터 명화 수업을 받는 초등학교 학생들. 나는 이런 장면을 보면 우리나라 같은 또래의 학생들을 생각한다. 어릴 때부터 이런 수업을 무시로 받는 아이들의 미래의 모습, 나는 그것을 고대한다.



셀 수 없는 명화의 전당알테 피나코테크


알테에서 두 번째로 나를 즐겁게 해 준 것은 역시 과거 인문명화산책에서 다루었던 스페인 화가 무리요의 포도와 멜론을 먹는 두 소년’(1650)이다나는 벨라스케스도 좋아하지만 서민의 삶을 그린 무리요를 특별히 좋아한다그는 다수의 서민 그 중에서도 가난에 힘들어 하는 여인이나 어린 아이들을 그렸다.


 


무리요, <포도와 멜론을 먹는 두 소년>, 1660


알테에 있는 이 그림은 무리요의 그런 그림 중 하나로 파리 루브르에 있는 ‘(이를 잡는어린 거지와 함께 스페인 사람들의 고통스런 가난을 느낄 수 있는 그림이다필시 이들이 먹는 포도와 멜론은 어딘가에서 훔쳐온 것일 거다평상 시 먹고 싶었지만 먹어 보지 못한 이 과일들을 두 소년이 서로를 바라보면서 먹는다. “야 이거 정말 맛있다형아 우리도 이런 것 매일 먹고 싶다?” 하는 소리가 내 귀에 울린다.

 



루벤스의 강간 당하는 루시푸스의 딸



알테의 전시실은 그 길이가 백 미터도 넘는다가운데 복도에서 보면 1번 방 쪽 벽면은 뒤러의 그림(4명의 사도)이 있고 다른 한 쪽 끝 벽면엔 이 그림이 있다한 쪽은 성스러운 그림이고 이 그림은 세속에 물든 그림이다프랑스 화가 부셰가 그린 퐁파두르의 초상화다루이 공식적인 정부였던 그 여자 말이다부와 권력을 지난 세속적인 여인을 부셰는 어떻게 그렸을까.

 

자세히 보면 피부는 백옥처럼 곱다푸른색의 비단 드레스엔 작약 꽃을 섬세하게 그려 넣었다재미있는 것은 무식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아서인지 손엔 책이 들려 있다그것도 상당히 많이 읽었다는 표시인지 책의 상태가 좋지 않다더욱 그녀의 주변을 보면 여러 권의 책이 널려 있다.


 



부셰의 <퐁파두르 초상화>(위), <옷을 벗을 젊은 여인>(아래)



퐁파두르 옆엔 부셰의 또 하나의 대표작 옷을 벗은 젊은 여인이 있다도록으로만 볼 때는 몰랐는데 원화를 보니 상당히 젊은 여인이다내 눈엔 열 대여섯을 넘지 않는다당시 돈 있고 권력 있는 작자들의 관심사가 바로 저런 것이었다는 말인가저런 어린 아이에게서 성적 관능을 느꼈다는 말인가나는 그림을 보면서도 마음이 못내 편치 못했다.


 


레오나드로 다빈치의 <성모자상>



피터 브루겔의 <코케인의 땅>



렘브란트의 자화상



알테에서 볼 수 있는 그림들 중엔 명작 중의 명작이 그 외에도 여럿 있다아마 그 중에서 제1은 다빈치의 성모자일 것이다모나리자를 잘 본 사람이라면 전시실에서 이 그림을 보는 순간 작가 이름을 보지 않고서도 아하는 비명을 지를 것이다뭔가 모나리자를 닮아 있기 때문이다특히 성모자의 원경을 보면 모나리자의 그것과 매우 흡사하다.

 

루벤스의 작품이 방 하나를 가득 채우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강간 당하는 루시푸스 딸은 특별하다. 여인의 포동포동한 살이 캔버스를 뚫고 나올 것만 같다. 사람들이 약을 먹었는지 널부러져 누어 있다. 역시 피터 브루겔의 알쏭달쏭한 그림 코케인의 땅도 볼만하다고통스런 삶에 대한 심각한 풍자다. 또한 렘브란트의 젊은 시절 자화상도 놓쳐서는 안 된다.


 


베르메르의 <편지를 읽는 푸른 옷을 입은 여인>


이 날 행운도 따라 주었다.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에서 명화 한 점이 이곳에 와서 전시 중이었는데, 그게 바로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베르메르의 편지를 읽는 푸른 옷을 입은 여인이었다그가 남긴 그림의 총수가 40여 점이 되지 않으니 서구의 어느 미술관엘 가도 그의 그림 한 점만 있으면 관람객으로 북적인다. 그런 그림을 이렇게 쉽게 만날 수 있다니 운수 좋은 날임이 분명하다. (제7편으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