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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의 눈물

소설 아닌 소설(3) 디케의 눈물 대법원 중앙홀에 있는 정의의 여신 디케, 우리의 여신은 어쩐 일인지 칼대신 법전을 들고 있고 감아야 할 눈은 뜨고 있다. 칼이 없으니 정의를 실천할 방법이 없고, 눈을 뜨고 있으니 공평하지도 않다. 1. 3년 전 이맘 때였을 거다. “변호사님, 아니 교수님, 저 강명식입니다. 오늘 소장 넣었습니다. 청구금액이 40억입니다. 이 정도는 돼야 하지 않겠습니까? 좀 기다립시오. 제가 교수님께 한 턱 낼 때가 곧 올 겁니다.” “그래요? 근데 왜 이리 늦었습니까? 좀 빨리 하시지.” “아, 그게 생각보다 꽤 걸리더군요. 변호사 선임하는 데 시간 좀 걸렸죠.” 전화통에서 들리는 그의 말소리는 예전과 달리 나이를 잊을 정도로 힘이 넘쳤다. “변호사님, 제 나이가 올해 80입니다. ..

SNS 소설 2015.09.26

조용히 죽어가는 대한민국 사법부

조용히 죽어가는 대한민국 사법부 이성호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이 국가인권위원장으로 내정되었다고 한다. 다시 한 번 대통령의 현직 법관 사랑이 입증됐다. 물론 당사자야 인권위원장으로 가는 것을 크게 기뻐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이라면 대법관을 원하지, 큰 권력을 행사하는 것도 아니고, 임기 내내 구설수에 휩싸일 수 있는 인권위원장을 선호하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청와대의 내정을 수락했다. 아마도 대법관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현실적 판단 아래 차선의 기회를 선택 했을 것이다. 오늘 내 관심사는 그 피내정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나라의 대통령에게 있다. 대통령은 왜 그리도 법률가, 그 중에서도 현직 판검사를 좋아할까. 대통령은 법률가를 좋아해도 절대로 반골기질의 법률가를 좋아하진..

김무성과 민영익

김무성과 민영익 아침 신문에서 재미있는 사진 한 장을 보았습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미국을 방문해서 한국전 참전용사들을 만나 큰 절을 올렸다고 합니다. 미국인에게 한국식 큰 절이라? 미국인들에게 전례없는 감사의 표시를 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감사의 대상 무엇인지, 그게 감사할 일인지에 대해서는 여기서 왈가불가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여당 대표가 자국민에겐 그런 예를 차리지 않으면서ㅡ 요즘 국민들에게 허리를 굽히고, 아니 머리를 조아리고 사죄할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세월호 문제, 국정원 문제... 이런 것은 아예 염두에 두지 않는 모양이지요?ㅡ외국에 나가 단순히 허리를 굽힌 게 아니라, 아예 머리를 땅에 조아렸다고 하니, 당혹스럽기 그지없군요. 1883년 민영익을 정사로 하는 사절단이 만들어져 미..

스웨덴 재벌가의 평등기여

[기고]스웨덴 재벌가의 평등 기여나는 연구년을 맞아 현재 스웨덴 룬드 소재 라울 발렌베리 인권연구소에서 방문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이 스웨덴을 우리가 가야 할 미래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지난 한 세기 인류는 두 가지 목표를 향해 달려 왔다. 하나는 보편적 자유이고, 또 하나는 보편적 평등이다. 전자에 치우친 나라는 자유민주주의를 채택했고, 후자에 천착한 나라는 사회주의를 실험했다. 어떤 나라도 이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성공시킨 곳은 없다. 하지만 스웨덴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쫓아 왔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현재 스웨덴은 보수연립정당이 의회를 지배한다.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바람이 이곳까지 불어온 결과이다. 그러나 60년 이상 스웨덴의 패러다임을 만들어 온 사회민주주의의 이상은 비록..

칼국수 철학

칼국수 철학 대한민국엔 건설은 있지만 건축은 없다. 하루가 다르게 건물은 하늘을 채우고 있지만 거기에서 어떤 문화와 철학을 읽을 수 있는가. 모든 건물이 천편일률적으로 기능만 앞세우지 미적 요소나 자연과의 조화, 역사적 맥락이나 문화적 요소를 담진 못하고 있다. 서울을 대표하는 소위 랜드마크 건물도 그것을 만든 건설회사는 알지 모르지만 그것을 설계한 건축가는 모른다. 삼성동 코엑스 빌딩은 누가 설계를 했는가, 도곡동의 거대 거주 공간 타워팰리스는 누구의 작품인가. 나만 모르는가? 아마 나의 페친들도 모를 것이다. 알 수가 없다. 한 마디 더 하자. 이 나라는 건축가나 건축 장인들을 너무나 홀대한다. 수년간 복원에 힘써 마침내 조선궁궐의 위용을 갖춘 경북궁을 세상에 선보일 때도 이를 총지휘한 대목장의 이름..

Best Essays 2015.09.26

타클라마칸 실크로드 기행(1)

타클라마칸 실크로드 기행(1)돌아올 수 없는 사막, 타클라마칸 곰곰이 생각하면 내겐 두 개의 유전자가 있다. 하나는 방랑의 유전자다. 나는 번잡한 세상일을 하는 상황에서도 머릿속에선 끊임없이 일상을 탈출하고자 하는 본능적 욕구가 있다. 떠나고 싶다, 이 현실에서 말이다. 또 다른 하나는 호기심의 유전자다. 나는 무엇이든 알고 싶다. 특히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강하다. 나와 다른 세계에서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들의 오늘이 있게 한 결정적 원인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을 알고 싶다. 나는 왜 사막으로 갔을까. 이 혹독한 여름, 평균 40도가 넘는 열사의 땅에 가서 나는 무엇을 구하려했을까. 그래, 나는 방랑하고 싶었다. 나는 사막을 종횡무진하며 내 방랑의 욕구를 채우고 싶었다. 그래..

타클라마칸 실크로드 기행(2)

타클라마칸 실크로드 기행(2)타클라마칸 오아시스의 제왕, 보스덩 호수아마도 때는 서기 628년 뜨거운 모래바람이 불기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트루판 근처 고창왕국을 어렵게 떠난 당승 현장은ㅡ고창국의 왕 국문태는 현장을 왕사로 삼으려고 갖은 노력을 다했지만 그의 서역행을 막진 못했다. 대신 현장은 공부를 다 끝내고 당으로 귀국할 때 그곳에 들려 3년간 가르침을 주기로 약속한다. 국문태는 현장에게 몇 명의 수행승과 많은 재물을 딸려 그의 서역행을 돕는다ㅡ 에 맺힌 땀을 연신 가사로 훔치며 천산산맥을 넘고 있었다. 목이 탄다, 시원한 물을 들이 키고 한 바탕 냉수욕이라도 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다. 하지만 어쩌라, 이 황량한 땅에서 그런 물이 어디에 있겠는가. 눈치를 챘는지 수행승 하나가 현장에게 물병을 건넨다..

타클라마칸 실크로드 기행(3)

타클라마칸 실크로드 기행(3)천하절경 천산신비대협곡 여행 3일째, 우린 서역북로의 중심 오아시스 쿠차에 도착했다. 이곳은 한나라 시절 타클라마칸에 있었던 36국 중 최대의 왕국 구자국이 있었던 곳이다. 또한 여기는 당나라 시절 안서도호부의 본거지로서 고선지 장군이 서역출병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현장은 이곳에서 2개월을 머물었고, 100년 뒤(727년) 혜초도 인도에서 당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곳을 들렀다고 왕오천축국전에 기록했다. 나는 쿠차로 들어오면서 묘한 생각에 빠졌다. 신라인 혜초와 고구려 유민 고선지가 혹시나 이곳에서 만나지는 않았을까? 두 사람에 대한 사료를 분석하면 혜초가 이곳에 머무는 동안 고선지도 여기에 있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아마도 그때쯤이면 고선지는 안서도후부의 초급장교이었을 것..

타클라마칸 실크로드 기행(4)

타클라마칸 실크로드 기행(4)타클라마칸 불교 예술의 백미, 키질석굴에 서다 네 번째 실크로드 기행문을 쓰기에 앞서 몇 년 전 쓴 글이 생각나 그것을 옮겨본다. “문명여행의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하여 ... 말한다면, 그것은 내게 사회적 행위로서의 의미가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여행 전후로 자료를 찾고, 여행 중에는 기록하고, 여행 후에는 정리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이 습관은 사실 꽤나 피곤한 일이다. 나도 가끔은 그저 놀고 싶은 때가 많다. 그런데도 나는 이 작업을 끊임없이 해왔다. 왜일까? 나로서는 이런 태도가 하나의 사회적 책무라 생각한다. 거창하게 이야기하면 맹자의 여민동락의 생활실천이다. 문명여행을 함에 있어 한국의 지식인이 감당해야 하는 하나의 책무는 이것을 그저 유희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

타클라마칸 실크로드 기행(5)

타클라마칸 실크로드 기행(5)세계에서 제일 긴 사막 길을 달리다 사막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다. 무턱대고 타클라마칸에 들어간다? 그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일이다. 사막은 인간에겐 경원의 대상이지만, 그럼에도, 그것은 절대미가 있다.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가 없어도, 사막 자체가 발광하는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있다. 나의 실크로드 기행의 꿈은 한 분의 선배 법조인과의 만남에서 비롯되었다. 최영도 변호사님이다. 최변호사님은 민변 회장과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한 원로 법조인이신데, 내 변호사 초년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큰 영향을 끼치신 분이다. 이분은 법조계에서는 알아주는 인문주의자로서, 음악, 미술, 문명기행 등에 일가를 이루었으며, 이미 몇 권의 관련 저서까지 내셨다. 또한 일찍이 우리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