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인생/안데스에 서다

희망의 땅 안데스에 서다(19)-50일간의 남미 여행, 그것은 어떤 의미가 있었는가-

박찬운 교수 2024. 2. 2. 19:37

희망의 땅 안데스에 서다(19 최종회)

-50일간의 남미 여행, 그것은 어떤 의미가 있었는가-

 
 

꿈에 그리던 마추픽추에 섰다.

 
 
남미 여행이 끝났다. 긴 여행이었다. 30일간 걸어서 여행을 했고, 20일간 앉아서 여행을 했다. 총 50일간의 여행이다.

걷는 여행도 힘이 들었지만 앉아서 하는 여행도 만만치 않았다. 한 달간의 여행을 17구간으로 나누어 한 회에 한 구간씩 써 내려갔다.

나는 이 과정을 통해 다시 한 번 여행을 했다. 단순히 여행을 복기하는 수준이 아니라 새로운 각도에서 또 한번의 여행을 했다. 현지에서 그냥 스쳐 지나간 것도 여행기를 쓰다 보니 달리 보인 게 많았다.

수업 시간에 대충 이해했던 것이 복습을 통해 진짜 내 것이 되듯 여행도 그렇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리마의 아르마스 광장

 

나스카 라인

 
생각해 보니 20일간의 여행기9단계의 과정을 거쳐 작성되었다.

⓵ 각 회의 집필 대상이 되는 여행 구간특정한다. ⓶그 구간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서 이야깃거리(이야기 소재)를 선정한다. ⓷이야깃거리와 관련된 사진을 골라낸다. ⓸이야깃거리에 관한 자료를 찾아 읽는다(위키피디아, 브리타니카, 인터넷 자료와 정보, 여행 관련 책, 남미 관련 학술서적 등). ⓹집필을 시작한다. ⓺집필이 끝나면 한두 시간 문장수정한다. ⓻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편집한다. ⓼편집 후 비공개로 저장한 다음 몇 시간 동안 수정한다. ⓽최종적으로 글을 공개한다.
 

쿠스코

 

마추픽추
비니쿤카(무지개산)

 
저런 과정을 거치다 보니 한 회분 글을 쓰기 위해 종일 꼼짝하지 않고 책상 앞에 앉아 있어야 했다. 정성이 없으면 도저히 하기 힘든 일이다. 지성무식! 지극한 정성은 쉼이 없다는 자세로 글을 썼다.

물론 내가 원하는 일이고 즐거운 일이기도 하지만 어떨 때는 스스로 만든 감옥에 스스로 들어가 있는 느낌이었다. 글 감옥에 갇힌 어느 보잘것없는 서생. 그것이 나의 자화상이다.
 

라파스의 야경
우유니 소금사막
아타카마 달의 계곡

 
이렇게 해서 나는 19회의 글을 쓰고 이 감옥을 탈출한다. 그러나 탈출하면서도 이번 여행이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를 정리하고 나와야 할 것 같다.

누군가가 나에게 이렇게 묻는다. 당신이 30일 동안 걸어서 여행하고, 20일 동안 앉아서 여행한 남미 여행은 어떤 의미가 있었던 것이오? 이 질문에 이제 답할 시간이다.
 

산티아고 기억과 인권 박물관

 

토레스 델 파이네

 
나는 50일간 성실하게 여행을 했다. 아마도 이렇게 여행을 한 사람은 어디에서든지 찾기 힘들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의 방법으로 여행을 하고자 노력했고, 집으로 돌아 와서는 그것을 정리해 사회화하는 평소 여행 습관을 이번에도 유감없이 발휘했다. 교수가 연구는 안 하고 놀러 다닌다는 말은 이 여행기를 본 사람이라면 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게 성실히 여행했으니 이 여행이 내게 위로와 격려를 줄 것이라고한 약속은 공염불이 되었다는 말인가. 쉼이란 측면에선 위로와 격려는 고사하고 과로사 직전이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스스로를 채찍해 호기심을 충족하는 자학성 즐거움으론 그 어느 때보다 컸으니 그것이 나만의 위로요 격려였다고 생각하자.
 

피츠로이

 

페리토 모레노

 
무엇보다 이 여행을 끝내면서 나는 삶에 감사 한다. 남미 여행은 아무나 할 수 없다. 시간 그리고 체력이 있어야 한다. 다행스럽게 이번에 그 셋이 내게 주어졌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내가 좋아하는 남미의 민중가수 메르세데스 소사는  Gracias a la Vida 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나의 감사의 마음을 그녀가 대신 노래로 불러 주는 것 같다.

생에 감사해, 내게 너무 많은 것을 주었어.
내 지친 발을 이끌어주어
도시와 시골길,
해변과 사막, 산과 들,
그대의 집과 거리 그리고 정원을
나는 걸었네.

Gracias a la vida que me ha dado tanto
me ha dado la risa y me ha dado el llanto,
asi yo distingo dicha de quebranto,
los dos materiales que forman mi canto
y el canto de ustedes que es el mismo canto,
y el canto de todos, que es mi propio canto.
 

우수아이아 세상의 끝 등대

 
이번 여행은 남미를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남미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눈여겨본 것이다. 남미의 원주민들은 유럽인들의 침략으로 수많은 고통을 당했지만 결국 살아남았다.

유럽인들의 침략의 역사는 부정할 수 없지만 그 또한 남미의 중요한 일부가 되었다. 이제 남미는 원주민, 유럽인, 혼혈인 그리고 이민자들이 서로 뗄 수 없는 관계를 이루어 다양성을 추구하는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다만 아직도 식민지 유산은 사회 곳곳에 남아 있어 인종 간의 격차가 크다. 이 격차를 극복하는 것이 남미의 과제이고, 이것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좌우 대립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계속될 것이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마요(5월) 광장

 
남미 각국이 과거 유산과 자연환경을 보호하고 보존하는 남다른 노력을 하고 있는 것에 경의를 표한다. 마추픽추는 과거보다 더 철저히 보호되고 있고, 우유니 사막이나 파타고니아는 아직도 청정 자연으로서의 자태를 간직하고 있다.

이것은 남미 국가들의 특별한 노력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남미 국가의 과거 유산과 환경은 인류의 공통 자산이기 때문에 이들 국가만의 책임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협력하고 책임을 분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특히 남미 여행은 기후 위기가 점점 현실화되고 있다는 것을 알려 준다. 대한민국의 탄소 감축 노력은 우리 뿐만 아니라 남미를 살리는 길이기도 하다.
 

이구아수 폭포

 

리우데자네이루 예수 그리스도상

 
끝으로 남미가 우리의 희망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남미는 아직 활짝 피지 않은 꽃이다. 이 꽃을 피우는 데 우리의 역할이 있다. 개발을 하되 지속가능한 개발이 되도록 한국인의 지혜가 결합되어야 한다. 남미 전역이 자본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남미인들이 품위 있게 살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도록 우리가 협력해야 한다.

이번 여행을 통해 남미인들이 한국과 한국인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았다. 한류의 영향이 크지만 본질적으로 우리의 역동성과 그들의 역동성이 맞기 때문이다. 남미인들을 진정으로 존중하면서 상호협력할 수 있다면 남미에서 우리들은 더 많은 기회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내가 이 여행기의 제목을 ‘희망의 땅 안데스에 서다’라고 쓴 이유이다.(희망의 땅 안데스에 서다 19 최종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