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남부 독일을 기록하다(7)
두 사람과의 만남
-노이에 피나코테크-
노이에 피나코테크에 있는 반 고흐의 해바라기(1888)
내가 뮌헨에 간 목적은
알테를 보았으니 이제 노이에를 볼 차례. 노이에 역시 알테와 함께 뮌헨의 미술관 지역 쿤스트아레알(Kunstareal)에 있다. 노이에(new)라고 해서 새 미술관이 아니다. 이 미술관의 건립은 사실 알테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모두 19세기 바이에른의 왕 루드비히 1세 시절에 만들어진 것이다. 루드비히는 하나의 미술관에 모든 시기 작품을 거는 것을 거부했다. 그에겐 당대에 만들어진 명화를 걸어둘 새로운 미술관을 필요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이 New Museum 곧 노이에 피나코테크이다.
노이에 피나코테크 앞에서
사실 내가 뮌헨에 간 목적 중 가장 큰 게 이곳을 가는 것이었다. 그곳에 가서 한 친구를 만나는 것이다. 바로 나의 영원한 친구 빈센트 반 고흐. 그 외에는 사실 안중에 없다. 짧은 시간에 이 세계적 미술관의 수많은 명화를 어떻게 볼 수 있겠는가. 이럴 때는 몇 점이라도 짧지만 확실하게 보는 게 남는 장사다.
그런데 나는 이날 또 한 사람, 이제껏 들어보지 못한 사람을 뜻 밖에 만났다. 칼 로트만. 루드비히 치하의 풍경화가. 빠른 걸음으로 반 고흐의 방으로 옮기는 도중 발을 도저히 뗄 수 없는 방에 당도했다. 벽에 붙어 있는 그림의 모습이 너무나 생경한 것이었다. 자세히 보니 유화가 아니라 프레스코화가 액자에 표구되어 있다. 기이하다! 어떻게 해서 벽화로 있어야 할 그림이 저렇게 액자 속에 있을까? 그것도 한 점이 아니다. 무려 십 수 점이 방 하나를 점령하고 있었다.
칼 로트만의 방
관계자를 찾아 이 그림의 내력을 물어 보았다. 도대체 이 그림의 정체가 무엇이냐고. 그렇게 해서 알게 된 것이 바로 칼 로트만이란 화가다. 내력은 이랬다. 그는 풍경화가로서 그리스를 애호하는 루드비히의 염원에 맞춰 그리스의 과거 폴리스를 하나하나 찾아 그림을 그렸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23점의 그림은 노이에 피나코테코의 벽에 프레스코로 그려졌다. 이건 정조가 보고 싶었던 금강산을 정선이나 김홍도를 보내 그려오게 한 것이나 크게 다를 바 없다.
칼 로트만의 그리스 프레스코화, 코린트(맨 위), 마라톤(중간), 올림피아(맨 아래)
로트만의 이 그림들은 세계 대전 중 수난을 당해 일부는 소실되었지만 노이에의 명물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이젠 루드비히 시절 만들어진 미술관이 완전 철거되고 개축되는 상황을 맞이 했다. 로트만의 그림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의 그림은 정확하게 벽에서 떼어져 액자 속으로 들어갔고 신축된 노이에의 한 방을 차지하게 되었다.(독일 친구들이 이런 일을 잘한다. 실크로드 여행을 하다보면 트루판의 베제클리크 동굴벽화를 보게 되는 데, 지금 거기에 가면 남아 있는 게 거의 없다. 독일 원정대가 모두 떼어갔기 때문이다.)
이 그림을 자세히 보면 우리가 아는 그리스의 여러 지명이 나온다. 마라톤, 코린트, 올림피아, 델로스, 테베...그러나 화려했던 폴리스의 영화는 가버렸다. 19세기의 이들 폴리스는 어느 곳 하나 화려한 곳이 없다. 모두가 먼지 날리는 황량한 대지일 뿐. 인생과 자연의 무상함을 느끼는 그림들이다.
<아를이 보이는 꽃이 핀 과수원>, 1889
나의 친구 빈센트와의 만남
이것을 본 다음 나와 정박사 부부는 걸음을 재촉해 빈센트를 찾아 나섰다. 드디어 인상파 화가들이 보이고 마침내 눈에 익은 그림이 나타났다. 해바라기를 비롯해 4점의 그림이 벽 한 면을 채우고 있다. 역시 많은 관람객들이 해바라기 앞에서 떠날 줄을 모른다.
정박사 부부에게 열정적으로 저 해바라기를 설명했다.
노이에에 있는 고흐의 해바라기는 소위 뮌헨 버전으로 알려진 것으로 그가 1888년 아를에서 그린 것이다. 고흐는 당시 몇 가지 스타일(버전)의 해바라기를 그린 다음 각 스타일을 반복해서 그린다. 노이에의 것은 그 중 세 번째 버전으로 꽃송이는 12개이고 푸른색의 뒷 배경을 가지고 있다(이 버전의 해바라기로 같은 시기 반복한 것이 현재 필라델피아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음). 여하튼 노이에의 것은 현존하는 해바라기 그림 중 런던 내셔널 갤러리의 그것과 함께 고흐 해바라기를 대표하는 것이다.
나는 저 그림을 보면서 많은 생각에 빠졌다. 2014년 가을 저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 감동이 밀려 왔다.
노이에서 볼 수 있는 고흐 그림 4점 중 해바라기 이상 내 눈을 끄는 것은 그 바로 옆에 있는 <아를이 보이는 꽃이 핀 과수원>이다. 1889년 4월 고흐가 아를에 있을 때 아를 교외에 있는 과수원에서 아를을 바라보고 그린 것이다. 나는 이 그림을 그 전 해 7월에 그린 <길이 있는 꽃밭>과 함께 내 책 <빈센트 반 고흐 새벽을 깨우다>에 넣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다시 한 번 그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 그 아름다운 색깔에 현기증이 날 정도다. 나의 능력으로는 이들 그림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제대로 형용할 수가 없다. 이 정도면 고흐는 색의 마술사다. 전자(길이 있는 꽃밭)는 노란색과 붉은 색, 후자는 보라색과 흰색을 주로 사용했는데 내겐 압도적인 아름다움을 선사할 뿐이다.” (개정판 231-234)
오베르의 밀밭(1890)과 직조공(1884)
이곳에서 나는 고흐가 1890년 죽기 직전 오베르에서 그린 풍경화와 1884년 누에넨 시절 그린 직조공 그림을 보았다. 그들 그림 앞에서 나는 고흐가 저 시절 무엇을 고민했는지 그것에 따라 화풍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내가 고흐에 관해 글을 쓴 2014년 가을 하루 종일 고흐만 생각하고, 그의 그림만 보았던 그 시절도 회상했다. 그런 고흐를 이 먼 땅에서 이렇게 재회하다니!
<빈센트 반 고흐 새벽을 깨우다> 개정 증보판, 2018년 6월 31일
이런 재회를 기념하는 <빈센트 반 고흐 새벽을 깨우다> 개정 증보판이 이번 여름 발간되었다. 내가 독일을 향해 서울을 떠나는 7월 2일 책이 나왔다는 전화를 공항에서 받았다. 빈센트 반 고흐의 영전에 내 책 개정 증보판을 바친다.(8편 최종회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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