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st Essays/용기있는 삶

내가 세상에 말하고 써야 하는 이유

박찬운 교수 2018. 10. 30. 16:11

내가 세상에 말하고 써야 하는 이유



2018년 6월 사법농단 규탄대회를 변호사회관 앞에서 했다. 그 때 나는 마이크를 잡고 사법농단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강력히 요구했다.

 


저는 이 공간에서 지난 몇 년 간 셀 수 없는 글을 써왔습니다. 무슨 생각으로 저는 그렇게 썼을까요. 그 이유가 궁금하지 않습니까.

제 글을 가끔 보시는 분들은 저를 매우 고상한 세계에서 사는 인물쯤으로 알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게 바로 제가 항상 두려워하는 인물평입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그것을 부인했지만 오늘 다시 그 말부터 해야겠습니다. 

저는 그리 고상한 사람이 되지 못합니다. 저 역시 흠이 많습니다. 정의감도 용기도 어디 내세울 정도가 아닙니다. 도덕적으로만 사는 사람도 아닙니다. 항상 일탈을 꿈꾸며 그것을 즐겨보려고 내심 안달하는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저는 젊은 날의 꿈과 이상을 간직하며 살기를 열망합니다. 그것들을 그대로 이룰 수는 없지만 최선을 다해 제 할 바를 찾고 싶습니다. 저는 오늘 한국사회를 보면서 절망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 사회는 더 이상 나빠질 수 없는 상황까지 왔습니다. 이 상황을 바꾸지 않으면 젊은이들의 미래는 없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데 미력이라도 보태는 게 제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는 그래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합니다. “나도 젊은 때 그렇게 살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살 수 없다,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어, 그게 현실이니.” 그러나 저는 그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아니 말해서는 안 됩니다. 

생각하면, 저는 행운아입니다. 가진 것 없는 집안에서 태어났기에 소싯적이야 어려움을 적잖게 겪었지만 다행히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20대 초반에 고시에 합격한 뒤론 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그 덕에 제 뜻과 그리 어긋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었고, 누구보다 자유로운 선택을 하면서 살아 왔습니다. 하고 싶은 말을 했고, 내키지 않는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누구 앞에서도 기가 죽지 않았습니다.

변호사의 길을 걸어감에 있어서도, 지금 생각하면, 복이 많았습니다. 민변의 훌륭한 선후배 동료를 만나 처음부터 해서는 안 될 일과 해야 할 일을 구별할 줄 알았습니다. 돈보다는 명예를 택해야 한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습니다. 그렇게 살면서도 먹고 사는 데는 큰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비록 큰돈을 벌지는 못했습니다만.

이 말을 듣는 분들은 의아하게 생각하겠지만 소위 잘나가는 법률가에 대해 말해 보지요. 저는 그들에 대해 부러운 것도 없고, 가끔 그들은 운 없는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형로펌의 변호사가 된 분들도 그들 중 하나입니다(일반화 시킨다고 로펌 변호사님들 오해하진 마십시오. 글을 쓰다보면 이 정도의 말은 자연스레 나오는 법입니다). 돈이야 저보다 몇 배를 더 버는 변호사일지 모르지만 그분 들 상당수는 젊은 날의 꿈을 소리 없이 버려야 했습니다. 재벌을 옹호하는 법률가가 되었고 검찰청 들어가는 재벌 회장님 옆에 서서 쪽을 파는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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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이 없는 변호사들은 또 있습니다. 전관출신으로 떼돈을 버는 변호사입니다(전관 출신 변호사가 다 그렇다는 게 아닙니다. ‘떼돈’에 강조점을 두었습니다). 그들에게 정의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저 꿈이 있다면 당사자로부터 한 건 당 수억 원 아니 수십억을 뜯어내는 것이 아닐까요. 할 수만 있다면 김기춘, 우병우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겠지요.

제 경험으로 말하건대, 변호사들에겐 어떤 출발을 하느냐가 인생을 결정합니다. 어떤 이는 젊은 날의 꿈을 간직하면서 그것을 계속 확장하는가 하는 반면, 어떤 이는 그 반대의 길을 걷습니다. 

바람직하긴, 변호사는 자기가 선택할 수 있는 사건을 담당해야 합니다.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변호사만큼 폼 나는 직업이 없습니다. 자기 소신을 지켜가며, 억울한 사람을 돕고,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면, 그것만큼 보람 있는 직업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현실은 녹녹치 않습니다.

사무실을 유지하기 어려운 변호사들이 부지기수인데, 그들에게 돈과 권력이라는 유혹이 따를 때, 어느 누가 쉽게 그것을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 길에 한 번 발을 딛는 순간 그 길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젊은 날의 꿈, 젊은 날의 이상은 어느 순간부터 서서히 퇴색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언젠가부터는 자기 자신을 변호하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정당했다고요. 그렇게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요.

자기 합리화는 인간의 본능입니다. 인지부조화 상태에서 오래 살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우병우는 우병우의 논리가, 김기춘은 김기춘의 논리가, 홍만표는 홍만표의 논리가 있는 법이지요. 재벌을 옹호하는 변호사도 그 나름의 논리는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젊은 날의 이상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인간형의 법률가가 탄생하는 것입니다.

저에겐 또 하나의 행운이 있었습니다. 12년 전 대학으로 옮겨 교수가 된 게 그것입니다. 지금 같으면 저에게 교수 자리는 찾아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저는 변호사들이 대학교수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할 즈음 막차를 탔습니다(과거엔 변호사들이 법대교수를 무시한 적이 많습니다. 고시에 합격하지 못해 대학교수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변호사들이 많았습니다.). 

 

기본적으로 교수는 연구와 강의만 제대로 하면 신분이 보장되기에(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요), 저는 그 때부터 더 자유로워졌습니다. 세상의 흐름을 관찰하고 분석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된 것이지요. 매년 두 번의 방학과 6년마다 1년간의 연구년이란 제도를 교수는 누립니다(물론 모든 교수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 때 저는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넓은 세상을 보며 사색하고 글을 씁니다. 이게 교수가 아니고서야, 어찌 가능하겠습니까.

제가 누리는 자유는 제 능력의 산물이 아닌 것을 너무도 잘 알기에, 저는 말해야 하고, 써야 합니다. 그게 저에게 주어진 의무입니다. 하늘이 준 선물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염치없는 놈은 되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껏 제가 이 공간을 비롯해 이러저러한 곳에서 나름 무엇인가를 써 온 것은 젊은 날의 꿈과 이상을 버릴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누가 보아도 양에 차지 않는 미미한 일이었습니다. 여건이 되었음에도 말하지 못했고,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 것이 많습니다. 나서야 하고 앞장서야 할 상황에서도 동지의 등 뒤에 숨었습니다.

이제 저도 나이를 먹었습니다. 누가 봐도 적지 않은 나이라고 할 수 있는 시기에 진입했습니다. 몇 년 지나면 앞으로 나서고싶어도, 힘이 없어 그렇게 할 수 없을지 모릅니다. 제가 무엇을 해야 할까요. 좀 더 쓰고 좀 더 말해야 하지 않겠습니까.(2016. 12. 18 처음 쓰고, 2018. 10. 30. 고쳐쓰고, 2019. 5. 9. 다시 고쳐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