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정 156

앉아서 읽고, 걸으며 깨닫는다 — 독서와 여행이 만나야 하는 이유

앉아서 읽고, 걸으며 깨닫는다 — 독서와 여행이 만나야 하는 이유 (이제 저는 본격적으로 방학 속으로 들어갑니다. 저를 교수로 이끈 가장 중요한 동기가 방학입니다. 선생을 제외하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삶을 누리지 못하기에 방학 이야기를 할 때마다 사실 조금 미안합니다. 그러나 독자 여러분께서는 저의 이런 삶을 존중하고 격려하신다는 생각에, 용기를 내 방학 중의 경험을 이곳에 풀어 놓습니다. 저의 방학은 대체로 독서와 여행이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독서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전공 서적 읽기, 그것은 논문 쓰기로 이어집니다. 또 하나는 교양서적 읽기, 그것은 교양적 글쓰기로 이어집니다. 여행은 독서와 함께 방학 중 저의 가장 중요한 삶의 한 부분입니다. 여행을 위해서 학기 중 계획을 세웁니..

오후 단상 -1994년의 기억-

오후 단상-1994년의 기억-벌써 31년이 흘렀다. 1994년은 내 삶에 깊이 각인된 해다. 나는 그해 강남으로 이사를 했다. 강남 불패 신화와는 전혀 관계 없는 이사였다. 그저 직장 근처에서 출퇴근을 하기 위함이었으니. 그해 여름은 숨막히게 더웠다. 아마 내가 이제껏 살아오면서 경험한 최악의 여름이었으리라. 해가 저문 밤에도 더위는 좀처럼 물러서지 않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찬물을 끼얹으며 겨우 숨을 돌리곤 했다. 가족을 데리고 시원하다는 호텔로 하룻밤 피신까지 갔지만 룸의 에어컨은 소리만 왱왱거릴 뿐 좀처럼 온도가 내려가지 않았다. 그해 가을. 어느 평범한 아침이었다. 식탁에 앉아 아침을 먹다가, TV 뉴스로 아연실색할만한 소식을 접했다. 내가 매일 같이 건너던 성수대교가 순식간에 끊겨 버리고, 버..

빛처럼 흘러간 내 삶의 길 위에서

빛처럼 흘러간 내 삶의 길 위에서 (일요일 새벽. 책상 앞에 앉아서 제 삶을 반추해 보았습니다. 이제 그런 시기에 접어들었는지 자주 과거를 돌아봅니다. 새로운 기분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자판을 두드려 글을 썼습니다. 나는 어떤 삶을 살아왔는가?)내 삶은 어떤 것이었을까. 문득 문득 이런 질문이 내 안에서 잔물결처럼 일어난다. 나는 일찍이 법률가의 길을 걷기로 마음먹었다. 40년 전, 스물네 살의 젊은 패기로 사법연수원의 문을 두드릴 때, 내 꿈은 청순하면서도 높았다. 그 시절의 나는 꿈꿨다, 훌륭한 법률가가 되는 것, 그것이야말로 내 삶의 의미라고. 진실을 외면하지 않고, 억울한 이의 편에 서며, 결코 권력과 부의 유혹에 내 지식을 팔지 않겠노라고. 그 맹세는 여전히 내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살아 있..

일요단상 -2500년 전의 은혜, 배은망덕의 전쟁-

일요단상-2500년 전의 은혜, 배은망덕의 전쟁- 미국이 이란 핵시설을 폭격했다고 한다. 이란-이스라엘 전쟁이 걷잡을 수 없이 확전되는 것 같다. 21세기에도 이런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에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다. 도무지 비현실적인 전쟁이다.고대 이스라엘 민족이 바빌론 포로에서 해방된 것은 기원전 539년, 페르시아의 아케메네스 왕조 창시자인 고레스(키루스) 대왕의 은혜 덕분이었다. 유대인들은 그를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자”로 부르며 성경에 찬미까지 남겼다. 이란, 곧 페르시아는 유대 민족에게 역사적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던 민족이었다.[이사야서 45장 1절: “여호와께서 그의 기름 부음 받은 고레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그의 오른손을 붙들고 그 앞에 열국을 항복하게 하며왕들의 허리를 풀며..

최종 성적 확정 클릭을 못한다

최종 성적 확정 클릭을 못한다 이번 학기 3과목을 담당했다. 로스쿨 2과목, 학부 교양 1과목. 로스쿨은 주 6시간 수업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좀 바빴다. 대신 2학기는 한가할 것 같다.이제 기말시험 채점을 끝냈다. 성적 입력 절차도 거의 끝냈다. 한 과목은 P/F 과목이고, 모든 학생이 Pass를 했기 때문에, 성적입력을 하자마자 성적 확정을 했다. 그런데 두 과목은 성적 확정을 못하고 있다. 성적을 보고 실망할 학생들이 눈에 어른거리기 때문이다.나는 오래 전부터 채점을 할 때 학생들 이름을 모른 채 한다. 학생들에게 답안지에 이름을 쓰지 말고 학번만 쓰라고 한다. 작년부터 로스쿨 시험은 IBT(노트북을 가지고 와서 인터넷에 연결한 채 답안 작성) 방식으로 보는데, 익명 채점을 원칙으로 한다.내가 이..

기억이 내 자존심이었다

기억이 내 자존심이었다 나는 기억력으로 살아온 사람이다. 대학 시절, 강의실에서 나는 거의 메모를 하지 않았다.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 강의가 끝나면 조용히 자리에 앉아 그것을 하나하나 되살려냈다. 그렇게 복기한 내용을 정리해 노트에 옮겼다. 친구들은 놀라워했고, 나는 그게 자랑스러웠다. 생각해 보니 기억력이 내 자존심이었다.강의를 하고, 글을 쓰고, 사람들과 나눈 말과 논점을 또렷이 기억하는 일. 메모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는 건, 나의 뇌가 얼마나 정직하고 튼튼한지를 보여주는 증거였다. 기억은 나를 이루는 방식이었고, 그 자체가 나의 신뢰였고 자부심이었다. 하지만 요즘, 그 자존심에 심각하게 금이 가고 있다. 잠을 잘 이루지 못한 지 오래다. 눈을 감아도 잠이 오지 않는 날이 있는가 하면, 잠이..

백년손님이 온다

백년손님이 온다 오늘 우리 집에 백년손님이 온다. 작은 딸이 결혼하고 신혼여행을 마친 뒤, 사위와 함께 처음으로 친정을 찾는다. 사위라고 해야겠지만, 마음속에서는 이미 아들 하나 더 얻은 기분이다. 큰딸에 이어 작은딸까지 시집을 가니, 어느새 아들이 둘이다. 괜스레 긴장이 된다. 평소 집안에서 입던 반바지를 벗고, 긴바지를 꺼내 입었다. 거실 여기 저기를 정리하고 청소기를 돌린다. 아들 같은 사위이지만 좋은 인상을 주고 싶은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아내는 아침부터 부엌에서 분주하다. 평소엔 보지 못한 음식이 만들어지고 있다. 김이 오르는 주방은, 마치 잔칫집처럼 들뜬 기운으로 가득하다. 현관문이 열리면, 딸과 함께 낯선 듯 익숙한 청년이 들어설 것이다. 기쁜데, 문득 가슴 한켠이 짠해진다. 어린애라고만..

귀차니즘이 나를 지배한다

귀차니즘이 나를 지배한다 주변에 80이 훨씬 넘은 나이에도 여러 모임에 곧잘 참석하는 선배 변호사님이 몇 분 계신다. 그 분들 중 한 두분은 얼마 전 우리 딸 결혼식에도 오셔서 끝까지 자리를 지키셨다. 이 자리에서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요즘 나는 그분들을 연구 중이다. 그분들이 존경스럽다, 아니 부럽다. 어떻게 하면 나보다 20세나 많은 연세에도 사람들을 그렇게 열심히 찾고 같이 즐길 수 있을까. 그 비결이 무엇일까.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엔 이런 말에 익숙치 않은 분들이 있을 것이다. 아니 그게 뭐 대수냐고? 사람이 사람을 찾고 함께 즐기는 것이야 당연한 게 아니냐고 반문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은, 미안하지만, 자신이 아직 젊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말에, ..

빈 둥지의 오후

빈 둥지의 오후 두 딸이 떠났다. 오늘 아침 작은 아이는 신혼여행을 떠났다. 오후가 되자 동생 결혼식 참석 차 왔던 큰 아이는 사위와 함께 일터인 미국으로 떠났다. 며칠 전 아니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집안은 딸과 엄마의 수다 소리로 시끌벅적했다. 가끔 번짓수를 잘못 찾은 나의 썰렁한 말 한마디가 분위기를 깨긴 했어도 그것은 그냥 내 평범한 일상이었다. 갑자기 집안이 휑한 게 기분이 묘하다. 묵은 체증이 뚫린 듯 시원하기도 하지만 아쉬운 마음에 가슴이 아려온다. 어제 식장에서 어떤 친구는 이제 아이들에게서 졸업하니 얼마나 좋으냐고 덕담을 했다. 웃으면서 정말 그렇다고 맞장구를 쳤지만 마음 한구석은 이미 고독감이 밀려오고 있었다. 첫 아이를 낳고 37년이 지나니 내게도 이런 날이 왔다. 좋은 아빠가 되..

디지털 시대의 우정의 지혜

디지털 시대의 우정의 지혜-SNS는 끊임없는 자기성찰을 요구한다- SNS를 하면서 제일 어려운 것 중 하나가 친구 관계가 금이 가는 것을 느낄 때입니다. 오프라인에서 한번도 본 일이 없고 볼 일도 없는 친구가 쓴 글이라면 그냥 넘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언제든 볼 수 있는 친구의 글에서 상처를 받는 경우는 다릅니다. 그의 글이 내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음으로써 과거의 그는 이제 다른 사람으로 변해갑니다. 그렇게 되면 오프라인에서 연락이 뜸해지고 심정적 거리감은 지속적으로 강해집니다. 결국 친구를 잃게 되는 것이지요. 소통의 도구 SNS가 만들어내는 작은 비극입니다.이제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입니다. 이 공간에는 날이 번득이는 글들이 넘칩니다. 저도 그런 글을 쓰는 한 사람일 겁니다. 잘못하다가는 친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