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정/고독과 슬픔 30

아버지 사랑합니다

아버지가 하늘 나라로 가신지 5년이 넘었다. 아버지는 2019년 5월 신록이 녹음으로 바뀔 무렵 가족 곁을 떠나 어머니 곁으로 가셨다. 이 글은 불효자가 영전에 바치는 일종의 사부곡(?)이다. 아버지는 89세로 세상과 작별했다. 비록 작고 2년 전에 발생한 암으로 고생을 하다가 가셨으나, 한국 남성 평균수명을 생각하면, 장수하신 것이라 생각한다. 아버지는 한국전쟁 시 국군 장교로 참전한 국가유공자로, 시골 면장을 하다가 70년 대 초 식솔을 거느리고 상경하셨다. 사고무친한 서울에서 이런저런 일을 했지만, 제대로 벌이를 하지 못해 늘 생활고에 시달리셨다. 그런 이유로 슬하에 5남매를 두고서도 제대로 교육을 시키지 못해 평생 가슴에 한을 남기셨다. 그 속에서도 나는 운 좋게 교육을 받았다. 다른 형제의 복을..

나는 어떻게 늙어가고 있는가

우연히 한 페친이 올린 글을 읽다가 낯익은 이름을 발견했다. 그가 최근 책을 냈다는 것이다. 그의 담벼락을 찾아가 보니 바로 내가 아는 그 사람이다. 세월은 흘렀지만 바로 알아 볼 수 있었다. 얼굴은 예전의 그가 아니지만 중후하게 늙어가는 그의 모습에서 잘 살아왔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시인이자 수필가, 걸어 다니는 인문학자가 되어 있었다. 내가 그를 안 것이 조금 있으면 40년이 된다. 젊은 시절 강원도 어느 부대에서 그를 만났다. 제대한 뒤 한두 번 우연히 거리에서 만난 적이 있지만 어쩌다 보니 차 한잔 같이 마시질 못했다. 그저 서로의 행복을 빌어주었을 뿐이다. 오랜 세월이 지난 뒤 페친의 담벼락에서 그의 소식을 들으니 내 무심함에 미안함을 느낀다. 30년 이상의 시간이 이렇..

가을밤의 넋두리-고독한 삶은 운명인가-

가을밤의 넋두리-고독한 삶은 운명인가- 긴 명절을 앞두고 있습니다. 창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제법 차갑습니다. 그렇게 더웠던 염천 지옥의 계절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기후위기가 심각하지만 그래도 아직 시간 앞에 장사가 없다는 말은 여전히 유효한 것 같습니다. 조금 센티한 말을 해야겠습니다. 어쩌다 보니 나이도 먹을 대로 먹었습니다. 과거엔 이 나이가 되면 꽤나 괜찮은 어른이 될 줄 알았습니다. 공부도 남들 하는 만큼 했고, 경험도 크게 부족하지 않으니 경륜과 지혜를 갖춘 선배로서 제법 신나게 살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때가 되었는데도 제 자신은 전혀 그것을 느끼지 못합니다. 헛산 것은 아니지만 많이 부족함을 느낍니다. 한계도 느끼고요. 나이를 먹을수록 고독이란 놈이 저를 더 세게 잡는군요. 집과 연구실..

흔들리는 오후

발걸음이 무겁다. 나는 집을 떠나 강남의 H카페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간다. 딱히 일이 있어서도 누굴 만나기 위해서도 가는 것이 아니다. 주말 점심을 먹고 나면 의례 가는 곳이 거기이기 때문이다. 몸속에 무슨 자동장치가 박혀 있는지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나를 그곳으로 이끈다. 나는 H카페 창가에서 두어 시간 거리를 물끄러미 지켜보다가 집으로 돌아온다. 이것이 내 삶의 중요 부분이다. H카페에 들어서자 홀은 텅 비어 있다. 가끔 이런 때가 있다. 바리스터 O양이 나를 보자 반갑게 인사를 한다. 나는 말 없이 눈인사를 하고 창가에 앉는다. O양은 능숙한 솜씨로 내 전용 카페라테 한 잔을 만든 다음 종을 울린다. “오늘 조금 날씨가 좋지 않네요. 교수님 안색이 좋지 않은데요. 무슨 일이라도 있으세요.” “무슨 ..

스스로에게 주는 위로

3년 공직 생활의 후유증이 꽤 크다. 환갑 넘기고 진갑을 목전에 두니 나이의 무게감도 무시할 수 없다. 겉보기엔 학교 생활에 빨리 적응하는 것 같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못하다. 알게 모르게 무기력증, 우울, 고독이 수시로 찾아온다. 별일 아니려니 생각하고 일부러 잊으려 했으나 그럴 일이 아닌 것 같다. 상태가 어떤지 나 스스로를 관찰해 본다. 무엇보다 사람 만나기가 싫다. 이 증상은 공직으로 가기 전 이미 생겼다. 그것은 아마 교수라는 직업이 준 선물 아닌 선물이었다. 일을 함에 있어 특별히 사람을 만날 일이 없으니 그저 연구실에서 혼자 있는 것에 만족했다. 공직 생활 중에는 공무상 어쩔 수 없이 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그런 중에도 사적 모임은 거의 안 했다. 사적인 모임은 대체로 저녁 시간대에 이루..

이 어두운 터널을 박차고

https://youtu.be/vir4EHc9qtU 새벽에 일어나 창문을 여니 시원한 바람 한 줄기가 내 피부에 닿는다. 사위는 고요한데 어쩐지 마음이 울쩍하다. 책장을 넘겨도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글을 쓰기 위해 자판을 두드려봐도 글다운 글이 나오지 않는다. 썼다 지웠다가를 반복하다가 유튜브에 들어가니 노래 한 곡이 보인다. 언젠가 정태춘이 바리톤 박정섭과 열린음악회에서 부른 '이 어두운 터널을 박차고' . 이 노래를 듣는 동안 눈가에 눈물이 고인다. 세상은 이렇게 고되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은 이렇게 아픈데, 내 삶의 우울함은 하나의 사치다. 이들과 함께 어두운 터널을 박차고 나가 무엇인가 의미 있는 일을 해야지. 내가 결코 저 육중한 쇳덩이일 수는 없지. 오늘도 내게 주어진 일..

찻잔 속 미풍

언제나 주말 오후 되면 강남 어느 카페 창가에 앉아 진한 카페라테 한잔 앞에 두고 창밖 내다보니 분주히 걸어가는 사람 쏜살같이 내달리는 자동차 쏟아지는 햇빛 눈부셔 잠시 눈감았더니 꿈인지 생시인지 청바지 장발 청년 수줍은 여인 손잡고 걸어가네 저 모습 어제같은데 어느새 사십여년 훌쩍 마음 속 낭만 여전히 바람되어 불어오나 한물간 사람 탄식에 묻혀 찻잔 속 미풍이 되다 (2023. 4. 2.)

환갑을 맞는 새벽단상

할많하않. 하고 싶은 말은 쌓여 있지만 하지 않는다. 이런 자세로 지난 2년 반을 지내왔다. 그 사이 정권이 교체되었다. 공직에 있는 사람이 대중들에게 정치적 상황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생각에 말과 글을 자제해 왔다. 아쉬운 것은 많지만 후회는 없다. 바쁘게 보냈다. 인생에서 이렇게 분주하게 보낸 적이 없다. 거의 매일 자료를 읽고 또 읽었다. 좀 더 완벽한 결정문을 만들기 위해 사무처 초안을 다듬고 또 다듬고 때론 그 정도로는 안 된다 싶을 때는 아예 새로 쓰기 위해 자판을 두드렸다. 일주일이면 3-4회 회의실에서 몇 시간씩 마라톤 회의를 진행했다. 사건을 처리하는 소위원회는 4시간이 기본이고 때론 5시간, 아니 그 이상을 넘기기도 한다. 회의가 아무리 길어져도 중간에 쉬는 ..

아버지 사랑합니다

오늘은 5. 18. 광주민주항쟁 41주년 기념일이다. 개인적으론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2주기가 되는 날이다. 이 글은 아버지 기일을 맞아 그 영전에 바치는 일종의 사부곡(?)이다.아버지는 89세로 세상과 작별했다. 비록 작고 2년 전에 발생한 암으로 고생을 하다가 가셨으나, 한국 남성 평균수명을 생각하면, 장수하신 것이라 생각한다. 아버지는 한국전쟁 시 국군 장교로 참전한 국가유공자로, 젊은 시절엔 시골 면장을 했고, 70년 대 초 상경한 이후엔 이런저런 일을 했지만, 제대로 벌이를 하지 못해 늘 생활고에 시달리셨다. 그런 이유로 슬하에 5남매를 두고서도 제대로 교육을 시키지 못해 평생 가슴에 한을 남기셨다. 그 속에서도 나는 운 좋게 교육을 받았다. 다른 형제의 복을 빼앗았는지, 변호사, 교수, 박사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