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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돼지국밥 이야기

부산 돼지국밥 이야기부산에서의 2박 3일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가는 기차에 앉았다. 홀로 여행은 결국 사색의 여행이다. 어디를 가는 것도 무엇을 먹는지도 오롯이 나의 선택이다. 기차 창밖으로 스치는 풍경을 보며, 이번 여행에서 내가 선택했던 것들을 조용히 되짚어 본다.이상하게도 돼지국밥이 자꾸 떠오른다. 부산에 내려와 아침 샌드위치를 제외하면 다섯 끼를 먹었는데, 그중 네 끼가 돼지국밥이었다. 홀로여행을 하다 보면 근사한 식당에 들어가기가 머쓱해 간단히 끼니를 해결하는 탓도 있겠지만, 그래도 네 끼나 같은 음식을 먹었다는 건 변명의 여지 없이 내가 그 음식을 좋아한다는 뜻일 것이다.그렇다. 나는 부산의 돼지국밥을 좋아한다. 서민 음식 가운데 이만한 완성도를 지닌 것이 또 있을까 싶다. 부산에서는 몇 걸음만..

홀로 밤을 지내며 -쉼이란-

홀로 밤을 지내며-쉼이란-지난밤 낯선 곳에 와서 홀로 지냈다.영화도 보고 TV도 보고 졸리면 자고 자다가 깨면 컴퓨터를 열어 글을 썼다.사는 것이 아무리 복잡해도결국 별거 없다.주변에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결국 언젠가는 혼자다.홀로 지내는 것 홀로 사는 것그것이 진짜 삶이다.나와 마주 하지 않는 삶은허상이다, 가짜다.가끔 홀로 여행을 통해진짜 삶이 무엇인지 생각한다.쉼이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아니라얽히고설킨 인연의 고리에서 잠시 벗어나는 것이다. 그리하면 나 혼자만 남는다.우주 속 하나의 존재그것이 또렷하게 보일 때비로소 우리는 삶을 조금 이해하게 된다.나는 그것을 쉼이라 부른다.(2026. 2. 4.)[해설]나는 이 산문시를 쓰면서 키에르케고르가 말한 ‘단독자’를 떠올리며 썼다. 그러나 그 의미는 그..

쉼인가, 도피인가

쉼인가, 도피인가ㅡ부산행ㅡ머리가 너무 복잡해무작정 기차를 탔다.도착한 곳, 부산.역전의 돼지국밥집,뜨거운 김 사이로허기를 먼저 내려놓고남포동을 천천히 걸었다.그리고한 카페에 들어섰다.밖은 번화한데이곳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하다.서울에선 좀처럼 만나기 힘든근사한 커피.카페 이름, 네루다.나는 몇 해 전그가 살던칠레 산티아고의 집을일부러 찾았다.오늘은 이곳에서'커피 네루다'를 마시며그를 떠올린다.서울에서 멀어질수록마음도 함께 멀어진다.언젠가부터나는 부산이 좋다.서울과는 다른 공기,다른 속도.마치 일본의 어느 지방 도시처럼조용히 나를 받아주는 느낌.무엇보다나를 아는 사람이아무도 없는 곳.잠시이방인이 되는 이 기분이이상하게도 나는 좋다.이럴 때비로소정신이 풀어진다.아, 이것이 쉼이다.도피라 해도 좋다.삶의 격전지에..

삶의 무게

삶의 무게올해는 결혼 40주년이다. 숫자로 쓰면 그럴듯하지만, 그 시간을 하나하나 되짚어보면 마음이 먼저 숙연해진다. 긴 세월을 아내와 함께 살아왔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나는 좋은 남편은 아니었다. 늘 비슷한 하루, 예측 가능한 생활. 재미없는 사람이라는 말이 어쩌면 가장 정확한 표현일지 모른다.부부여행을 적게 한 것도 아니다. 생각해보면 꽤 많이 다녔다. 그러나 그 여행들이 아내에게 과연 즐거웠을까, 요즘 들어 자주 자문하게 된다. 나는 언제나 진지했고, 지적 호기심이 많았다. 여행지에서도 풍경보다 역사와 맥락을 먼저 보았고, 감탄보다 설명이 앞섰다. 아내는 내 곁에 있었지만, 충분히 함께하지는 못했다.아내를 즐겁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나도 좀 더 가볍고 유쾌한 사람이 되고 ..

추위에 대한 기억

추위에 대한 기억올겨울은 예년에 비해 제법 춥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육십대 중반에 이른 나의 기억 속에서, 이 정도의 추위는 아직 ‘겨울다운 겨울’이라 부르기엔 한참 부족하다. 나이를 먹어가며 분명해진 것이 하나 있다면, 지구온난화라는 말을 나는 통계가 아니라 몸으로 먼저 배워왔다는 사실이다. 기억 속에 각인된 몇 장면의 추위를 더듬어 본다.나는 충남 청양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고, 1973년에 서울로 이사했다. 이사 오기 전, 내가 알던 겨울은 이런 것이었다.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러 마당으로 나가면 우물 펌프는 늘 꽁꽁 얼어 있었다. 나는 부엌에서 뜨거운 물을 한 바가지 떠 와 펌프에 붓고 펌프질을 했다. 그러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물이 솟아났다. 그 물조차 사실은 살을 에는 듯 차가웠지만..

검찰개혁의 길 위에서 ― 고독과 양심 ―

검찰개혁의 길 위에서― 고독과 양심 ―이것은 고독한 결단일까. 나는 그렇다고 본다. 분명히 말하자면, 이 문제에 대해서 나는 이런 선택을 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검찰개혁 과정에서 다수의 민변 동료들이 주장하는 보완수사 폐지를 그대로 따르거나, 아니 그럴 필요도 없이 입이라도 닫고 있었다면, 굳이 불편한 자리에 설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나는 무난한 선배로, 관계의 마찰도 없이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그럼에도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그리고 집요하게 보완수사의 존속을 주장한다. 왜일까. 이것은 인간관계의 유불리를 따질 문제가 아니라, 결국 내 양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내가 배운 형사법 지식을 토대로 수사 현실을 바라보면, 아무리 생각해도 보완수사 폐지는 답이 아니다. 보완수..

검찰개혁 자문위원장, 정말 어려운 자리다

검찰개혁 자문위원장, 정말 어려운 자리다 어제 검찰개혁의 핵심 쟁점인 보완수사권 문제를 놓고 자문위원회가 열렸다. 장장 네 시간에 걸친 회의였다. 중간에 허락된 휴식은 고작 5분. 회의 내내 긴장감이 팽팽하게 유지됐고, 말 한마디 한마디가 무게를 가졌다. 회의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밤 11시가 훌쩍 넘었다. 나는 평소 밤 10시 이전에 잠자리에 드는 사람이다. 이렇게 늦게 귀가하면 머리는 오히려 더 또렷해지고, 쉽게 잠이 들지 않는다. 결국 한때 끊었던 신경안정제를 다시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약효는 기대만큼 나타나지 않았다. 자는 둥 마는 둥, 머릿속에는 회의장에서 오갔던 말들과 장면들이 계속 떠올랐다. 그렇게 너댓 시간을 뒤척이다가 결국 일어나,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이것이 요즘 나의 ..

AI 시대의 글쓰기

AI 시대의 글쓰기나는 AI 시대에 들어서면서 글쓰기가 분명히 ‘이전’과 ‘이후’로 나뉘었다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글을 잘 쓰는 사람만이 글을 쓸 수 있었다. 문장을 다루는 기술, 어휘의 축적, 구조화 능력이 글쓰기의 진입장벽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AI와의 대화를 통해 글쓰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충분히 잘 쓸 수 있는 시대에 우리는 이미 들어섰다.하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전제가 하나 있다. AI의 도움을 받아 글을 쓰더라도, 그 글의 논지와 요점, 그리고 무엇보다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라는 취지는 분명히 글을 쓰는 사람 자신의 것이어야 한다는 점이다.그것마저 AI에게 맡겨버린다면, 그 글의 주체는 사람이 아니라 AI가 된다. 그런 글은 기술적으로는 그럴듯할지 모르지만, 진정한 의미에서의 ‘..

리알토와 플로리안 사이에서

리알토와 플로리안 사이에서 오늘 우연히 오래된 앨범을 뒤지다가 사진 몇 장이 눈에 들어왔다. 시간은 조용히 접혀 있었고, 사진은 그 속에서 느닷없이 나를 불러냈다. 나는 추억을 간직하고, 때로는 그것을 공기처럼 숨 쉬며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그제야 다시 떠올렸다.기억은 2012년 초 베로나에서 시작되었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야기로 남은 도시. 사랑과 비극이 겹쳐진 그곳에서 나는 비련의 두 사람을 잠시 떠올린 뒤 기차에 올랐다. 베로나에서 베니스로 가는 그 짧은 이동 시간, 창밖을 스쳐 가던 풍경보다 머릿속에 더 많은 장면들이 먼저 움직이고 있었다.산타 루치아 역에 도착하자 도시는 길이 아니라 물로 나를 맞았다. 배를 타고 대운하를 따라 미끄러지듯 흘러가 마침내 베니스의 중심 산마르코 광장으로 들..

내 인생 낭만의 팔할은 명동에서 만들어졌다

내 인생 낭만의 팔할은 명동에서 만들어졌다 오늘 오랜만에 명동으로 나간다. 친구의 아들이 명동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오래전부터 마음에 담아 두었던 자리다. 꼭 축하해주고 싶었다. 그 친구와는 사십 년 지기다. 생각은 늘 달랐다. 나는 흔히 말하는 진보였고, 그는 보수였다. 그럼에도 우리는 오랫동안 만났다. 가벼운 농담에서부터 무거운 세상의 이야기까지, 큰 거리감 없이 시간을 나눌 수 있었다. 그 관계를 지탱해 준 것은 결국 인간에 대한 신뢰였다.하지만 지난 십여년 간, 우리 사회의 정치적 균열은 나와 그 사이의 관계까지 깊숙이 파고들었다. 나는 그의 행보에 실망했고, 그 역시 나의 선택에 실망했을 것이다. 한동안 나는 이것이 한국에서 지식인으로 살아가는 한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 여겼다. 그러나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