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인생/세상 이곳저곳 9

이룰 수 없는 사랑의 꽃, 상사화, 그 꽃길을 걷다

“거룩한 분노는 종교 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 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변영로/ 논개) 불갑사에 상사화가 만개했다. 전국 최대 상사화 군락지에 들어선 순간 이 시가 떠오른 것은 무슨 연유일까? 상사화의 그 진한 붉은 색깔이 내 망막에 맺힐 때 그 붉음은 어디에 비할 수가 없었다. 순간 양귀비꽃이 생각났고 그 붉음은 논개의 마음으로 연결되었다. 그렇다, 지금 불갑사의 상사화는 양귀비꽃보다 붉고, 논개의 마음 같은 처절함의 절정이다. 상사화(相思花). 꽃의 이름에 상사병의 ‘상사’가 들어가니 심상치 않다. 꽃말 자체가 ‘이룰 수 없는 사랑’이다. 입과 꽃이 서로 만나지 못한다고 해서 그리 붙여졌다고 한다. 정말 자세히 보니..

또 하나의 세상의 중심, 마라케시

마라케시를 가게 된 연유 나는 법률가로 이 작은 땅 대한민국에서 살지만 머릿속은 언제나 세계를 유랑한다. 시간이 나면, 기회가 있으면 배낭을 메고 세계를 누빈다. 그곳에서 다른 문화를 접하고, 피부가 다르고 언어가 다른 사람들을 만나, 나 자신을 확인한다. 잠시 그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금새 그들도 나의 형제요 자매다. 그 속에서 '보편인으로서의 나'를 확인한다. 그런 내가 지난 3년간 어딜 나가보질 못했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공무든 휴가든 대한민국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기회는 오지 않았다. 그저 책상 앞에서 일만 하는 수밖에. 세월이 흐른 다음, 나는 분명 3년 내내 사건 속에 파묻혀 산 코로나 인권위원으로 기억될 가능성이 크다. 지난 20년 간 인권위 역사에서 나처럼 일해 온 인권위원은 없었을 것..

폴란드 브로츠와프를 가다

나는 룬드시절(2012-2013) '스웨덴 일기'라는 것을 썼는데,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매일 밤 자판을 두드렸다. 내가 경험한 것들,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가급적 자세히 정리했다. 이 글도 '스웨덴 일기' 중에 나오는 것이다. 2013년 5월 폴란드 브로츠와프를 다녀와 쓴 글이다. ------ 5월 2일-7일, 5일간 폴란드 브로츠와프(Wroclaw)를 다녀 왔다. 말뫼 공항에서 출발하는 라이언 항공사의 티켓 값이 왕복 270 크로나, 우리나라 돈으로 5만원이 채 안 되는 돈이었다. 5일간 브로츠와프에 머물면서 도시 이곳 저곳을 돌아다녔고 목욕(대중탕)도 두 번이나 했다. 건축사적으로 유명한 백주년 기념관은 세 번이나 다녀왔다. 브로츠와프는 폴란드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이다. 과거 실레지엔의 수도로 지..

울산 반구대 암각화를 방문하다

울산 반구대 암각화를 방문하다 울산을 방문하는 기회가 있으면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있었다. 반구대 암각화. 국보 285호. 선사시대 이곳에 살던 사람들이 강변 암석에 고래와 호랑이 등을 그렸다는 그 신기한 유적 말이다. . 지난 주말 울산지방경찰청에서 강연을 마치고 울산에 사는 지인의 안내를 받아 그곳을 찾았다. . 1971년 동국대 문명대 교수팀에 의해 발견되고 1995년 국보로 지정되었으니, 문화재에 관심 있는 사람으로선, 너무 늦은 답사다. . 이곳은 울산광역시 언양군 대곡리 대곡천 상류. 고래가 그려져 있으니 바다 가까운 계곡이라 생각했는데, 실제는 바다에서 상당히 떨어진 산 속 계곡이다. 1만여 년 전엔 이곳이 지금과는 사뭇 다른 환경이었을 지 모른다. 바닷물이 현재의 계곡 근방까지 오지 않았을..

오대산 물소리와 달빛 속에서 나를 찾다

오대산 물소리와 달빛 속에서 나를 찾다 . 오대산 월정사 이번 방학 이런저런 회의에 불려 다니다 보니 먼 길을 떠날 수가 없다. 삼복더위와 번잡한 일에서 잠시라도 해방되고 싶은데 마땅한 방법이 없다. 시간은 자꾸 가고... 며칠 후부터는 개학 준비도 해야 하는데... 아쉽기 그지없는 2017년 여름이다. . 그런 와중에 다행스럽게도 지난 며칠 서울을 떠나 있었다. 강원도 평창 오대산 월정사에서 며칠을 보내고 왔다. 생각해 보니 절만한 곳이 없다. 적어도 내겐 그렇다. 청정도량에 잠시라도 있다 보면 내 몸과 마음속에 붙어 있는 티끌과 먼지는 청류청풍에 깨끗이 씻겨 감을 느낄 수 있다. . 월정사 초입의 오대산 계곡(상), 월정사 일주문을 통과한 뒤 절로 들어가는 전나무 길 내가 불자인가? 아무리 봐도 그렇..

여행하는 인간, '호모 비안스'(Homo Vians)

여행하는 인간, '호모 비안스'(Homo Vians) 누구나 여행을 동경할 것이다. 미지의 세계로 나가 낯선 풍경, 낯선 사람, 낯선 문화를 경험해보고 싶은 것은 하나의 본능이다. 우리들의 조상의 조상이 저 아프리카 골짜기를 떠나, 세계 각처로 흩어져 나갔을 때 갖게 된 유전자가, 분명 우리 몸속 깊숙히 각인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의외로 각박해 지금 살고 있는 이곳을 쉽게 떠나지 못한다. 교통이 발전하고 물질적 풍요를 누리면서, 많은 사람들이 세계 각처로 여행을 떠나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평생 이 나라 국경을 넘지 못하는 사람들이 부지기 수다. 이 글을 보는 분들 중에서도 상당수는 거기에 해당할 지 모른다. 여행을 많이 못하는 분들에겐 죄송스럽지만, 개인적으론 다행스럽..

장 자크 루소의 집을 찾다

장 자크 루소의 집을 찾다 오늘 오랜만에 집에 일찍 들어오니 할 일이 없다. 컴퓨터를 켜 몇 년 전 찍은 사진을 본다. 눈에 들어오는 사진 몇 장! 이 사진을 페친들에게 소개 좀 해야겠다. 나는 어딜가도 호기심이 많다. 남들 안간 곳을 찾아가는 습벽(!)이 있다. 그래서 알게 모르게 추억이 많다. 나만의 비밀이다. 꼭꼭 숨겨 놓았다가 죽기 전엔 풀어 놓고 가야 하는데 그럴 수 있을 지 모르겠다. ㅎㅎ 2012년 10월 제네바에 갔다. 제네바 유럽 유엔본부에선 인권회의가 많이 열린다. 나는 NGO 대표로 지난 20년간 여러 차례 그곳에 가서 인권활동을 해왔다. 그 해도 그런 이유로 한국의 인권운동가 몇 명과 함께 그곳을 방문했다. 2006년에 유엔인권이사회가 만들어진 이후 유엔 회원국은 정기적으로 인권상황..

추억의 사진

정확히 10년 전 소록도를 들어가기 위해 녹동항에서 찍은 것이다. 지금 보니 10년 전의 내가 지금보다는 역시 젊구나! ㅠㅠ. 이 사진은 나로서는 역사적인 사진이다. 당시 나는 일본 변호사들로부터 일본에서 소록도 보상소송을 하자는 제의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한 번 빠지면 헤어나오지 못할 것 같은 부담감으로 차일피일 승락을 미루고 있었다. 그러다가 2004년 5월 5일 후쿠오카 방송국에서 소록도를 취재하는 데 동행해달라는 일본인 친구 모토무라씨의 부탁을 받고 호기심차 따라 나서게 되었다. 이 사진은 바로 그날 찍은 것이다. 이 소록도 방문 이후 나는 일본 변호사와 함께 소록도 소송을 하기로 결심했다. 서울로 올라오는 기차 안에서 대한변협에 보고서를 썼다(나는 당시 대한변협 인권위 부위원장이었다). 대한변..

임청각, 법흥사지 7층 전탑에서 일제의 만행을 보다

임청각, 법흥사지 7층 전탑에서 일제의 만행을 보다 105년 전 오늘 대한제국은 일본에 강제 병합되었다. .... 아주 오랜만의 안동여행이었다. 21년만이다. 일본 대학 교수들과 서울에서 연구모임을 갖고 1박 2일 코스로 안동을 다녀왔다. 일본 교수들이 한국 유교에 관심을 갖고 있어 ‘대한민국 정신문화의 수도’(이 말은 안동에 들어서면서 본 문구다) 안동을 찾은 것이다. 일본교수들이 보고 싶어 하는 곳은 도산서원과 하회마을이었다.나는 어쩌다 이 여행의 안내자 역할을 맡게 되었다. 어제 아침, 일행이 아직 잠이 들어 있을 시각, 호텔을 나와 택시를 탔다. 내가 이번 여행을 통해 진짜 보고 싶은 게 있었기 때문이다. 일행과 함께 가긴 어렵다는 생각에 아침밥을 먹기 전에 그곳을 찾았다. 임청각과 법흥사지 7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