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st Essays/깊은 생각, 단순한 삶 21

훌륭한 삶에 대하여ㅡ종교에 관한 나의 고백ㅡ

훌륭한 삶에 대하여 ㅡ종교에 관한 나의 고백ㅡ 대한민국의 제 영역에서 해방 이후 가장 성장세가 두드러진 영역은 어디일까. 두 말 할 것도 없이 종교다. 그 중에서 기독교(개신교 및 천주교)의 성장은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현상이었다. 한밤 중 남산에 올라 하얀 십자가를 세어보라. 마치 한 집 건너 하나씩 십자가가 나타날 것이다. 한국은 이미 동방의 예루살렘이 된지 오래다. 하지만 그런 기독교도 이제 점점 쇠퇴일로에 있다. 교회에 관한 모든 통계가 그것을 말해주는 데, 70-80년대의 고도성장을 끝내고, 이미 90년대에 들어서면서 교회는 더 이상 과거의 성장세를 이어가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도 향후 기독교의 성장에 대해서 비관적인 견해를 내놓고 있다. 뿐만 아니라 종교인에 대한 사회적 신뢰도는 크게..

독서와 나이

독서와 나이 추석 연휴입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집중하던 논문 쓰기를 잠시 중지하고 책상 앞에 쌓아 놓은 책 중 한 권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최근 나온 알렉산더 해밀턴 전기입니다. 책 두께가 제 베개 보다 두껍습니다. 무려 1400쪽. 일주일 전부터 틈틈이 읽고 있는데 끝까지 읽으려면 며칠 더 걸릴 것 같습니다. 저 책을 다 읽으면 미국 초대 재무장관을 지낸 해밀턴뿐만 아니라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 대부분에 대해 새로운 이해를 할 수 있을 겁니다. 미국 건국 초기 역사를 한 손에 쥐게 되는 것이지요, 그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뿌듯합니다. 나이 먹어가면서 실감하는 게 있다면 기억력입니다. 하루가 다르게 기억력 감퇴를 느낍니다. 저 같은 사람은 사실 기억력이 가장 중요한 재산인데 요즘 영 자신이 없습니다. 책..

지성무식

지성무식 (至誠無息)이란 말이 있다. 중용에 나오는 말로 지극한 정성은 쉼이 없다는 말이다. 나는 다른 것은 몰라도 살아가는 태도는 지극히 성실하다. 새벽 일찍 일어나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주말이면 단골 카페에 가서 창가에 앉아 오후의 거리를 바라본다. 이런 삶은 지난 10년 간 쉼이 없었다. 남들이 보면 지극히 재미 없는 삶이다. 가족들도 그리 말한다. 재미 없는 사람...이것은 내 인생의 결점인가 훈장인가? 그런 삶에 큰 목적을 추구하지 않았다. 그저 나의 관성적 습관에 불과할지 모른다. 습관을 벗어나면 불안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목적없이 불안을 피해 안정을 추구하다 보니 자연스레 몸에 밴 것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느 순간이든지 생각을 많이 해왔다. 지금 내 존재에 대해, 내가 살..

내 삶에 감사

살다 보면 슬픈 일이 많이 일어나지만 그래도 감사할 일이 더 많다. 살다 보면 우울한 일도 많지만 잘 생각해 보면 기쁜 일이 더 많다. 지금 시간 새벽 3시 반, 책상 앞에 앉으니 사위는 고요하다. 모두가 새벽의 단잠 속에 빠져들어 간 이 시간에 조용히 내 삶의 감사함을 열거해 본다. 내 주변의 무탈함에 감사하다. 우리 집 아이들도 이제는 커서 내 곁을 떠났다. 둘 다 자신들의 세계 속에서 잘 살아가니 크게 걱정할 일은 없다. 형제들의 삶은 아직도 부족한 것이야 많지만 과거보단 좋아졌다. 이제는 조카들도 커서 밥벌이를 하고 대부분 짝을 만나 결혼을 했으니 걱정거리가 줄었다. 4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자식들의 걱정거리를 많이 가지고 가신 것 같다. 그전까지만 해도 전화기 벨이 울리면 가슴이 철렁했다...

심심한 삶

내 삶은 심심하다. 음식은 짭조름한 것을 좋아하는데 삶은 싱겁기 그지 없다. 심심하다는 것은 단조롭다는 것이다. 오늘 하루가 어제 같고 어제가 오늘 같은 삶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루틴한 삶에 만족한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지금 내겐 이보다 좋은 삶은 없다. 나는 일찍 일어난다. 작년까지만 해도 4시 무렵 기상했는데 어쩐 일인지 최근 들어선 3시쯤 깬다. 조금 더 자야겠다는 생각에 눈을 감아보지만 이미 잠은 저 멀리 도망갔다. 책상 앞에 앉아 메일을 확인하고 글을 쓰거나 독서를 한다. 지난 2월 공직 퇴임 후 이 시간을 이용해 회고록을 썼다. 학교에 돌아 왔으니 학술 논문을 쓰는 것이 본업이라 생각하고 요 며칠은 거기에 온 정신을 쏟아부었다. 6시가 되면 부엌에 나가 빵을 굽고 과일을 깎아 팬에 넣고 볶..

새벽의 작은 결심

또 한 해의 마지막에 섰습니다. 매년 이때가 되면 한 해를 돌아보고 새해를 맞는 결심을 했지만 언젠가부터 그저 조용히 보내는 것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그런 저를 돌아보면서 마지막 날 새벽 잠시 생각에 잠깁니다. 올해 저는 환갑을 넘겼습니다. 육십갑자 한 바퀴를 돌고 새로운 육십갑자를 향해 발을 내딛는 해였습니다. 이제 머리는 반백이 아니라 올백이 되었고 어딜 가나 영감님 소리를 듣습니다. 가끔 다리가 아프면 지하철에서 노약자석에 앉는 것도 크게 부담스럽지 않습니다. 3년 임기의 인권위원이란 공직도 이제 마지막을 향해 달려갑니다. 제 인생에서 일로 인해 몇 번 몰입한 시기가 있었는데, 아마 지난 3년이 그런 시기의 하나로 기억될 것입니다. 제 능력의 한계가 있었지만 일에 대해선 큰 여한이 없습니다. 그만큼..

이순(耳順)의 의미

이제 제 나이 이순이 되는 게 48시간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이순(耳順)이란 세상의 어떤 소리를 들어도 크게 놀라지 않는 경지를 말합니다. 얼마나 경천동지할 일들이 많습니까. 얼마나 목불인견의 일들이 많습니까. 그런 것들을 보고 듣는다 해도 이제 판단력이 크게 흐려지지 않는 시기에 접어들었다는 것이지요. 이 나이가 되면 과연 그럴까요? 곰곰이 생각해 보니, 60이 된다고 저절로 귀가 순해질 것 같지 않습니다. 그 보다는 이 나이는 좀 더 경계하며 살아가야 할 시기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이제 60이 되었으니 조그만 일에 흥분하지 말고 세상사를 있는 그대로 보아야겠습니다. 그런 눈을 갖도록 자제력을 터득해야겠습니다. 그렇지 못하면 화가 미칠 수 있는 경계의 나이, 그게 이순입니다. 5년 전 나..

한 해의 마지막... 나이 듦에 대하여

이제 올해가 72시간도 남지 않았다. 그 시간이 지나가면 또 한 살을 먹는다. 50대의 마지막 해에 들어서는 것이다. 올해는 어느 해보다 특별하다. 아버지와 형의 잇 달은 죽음, 큰 아이의 결혼... 슬픔과 기쁨이 교차하는 해였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경험하는 통과의례치곤 강렬하기 그지없다. 과거엔 나이 먹는 게 좋았다. 떡국 한 사발에 나이 한 살이라는 말에 한 살 더 먹으려고 떡 국 두 사발을 먹었던 시절도 있었다. 나는 나이 삼십 이전에 변호사 활동을 시작했기 때문에 직업 속성상 사십 중반 때까진 나이 콤플렉스가 있었다(변호사는 나이가 어리면 의뢰인들로부터 신뢰를 받기 어렵다). 무슨 자리에 가도, 무슨 직을 맡아도, 가장 나이 어린 사람 축에 속했으니.... 나이 많은 사람들을 상대할 땐 무시당하지..

행복에 대하여-평온한 삶, 그것이 행복이다-

행복이란 무엇일까요. 저는 모르겠습니다. 삶의 만족도가 행복과 직결된다면, 행복의 정의 대신 행복의 조건은 말할 수 있겠지요. ‘이러이러한 조건일 때 사람들은 행복할 것이다’라고요. 오늘 하루 종일 그 생각을 했습니다. 내겐 그 행복의 조건이 무엇일까? 저녁을 맞이해 이런 결론에 도달합니다. ‘삶의 평온이 깨어지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지금 제가 가장 바라는 행복의 조건입니다. 공기나 물이 얼마나 중요한 지는 그것이 없을 때 바로 느끼듯 삶의 평온도 마찬가지입니다. 삶의 평온이란 평상시엔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이 어쩜 그 평온 속에 산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그 평온이 깨지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깨달게 되는 것이지요. 한동안 지속되었던 제 삶의 평..

법률가 앞에 놓인 두 가지, 욕망과 정의

법률가 앞에 놓인 두 가지, 욕망과 정의 우리는 욕망과 정의 어느 지점에서 살고 있다. 욕망을 배제하며 정의만을 추구할 수도 없고, 정의를 배제한 채 욕망만을 추구할 수도 없다. 두 가치 사이의 적절한 위치를 찾기 위해 고민하는 것이 매일 매일 삶의 현장에서 만나는 우리들의 실존이다. 법률가들은? 그들도 똑 같을까? . 김두식 교수가 쓴 이란 책에 이법회(以法會) 이야기가 나온다. 1945년 8월 15일 조선변호사시험을 보기 위해 200여 명의 청년들이 시험장에 모였다. 그런데... 그날 시험장엔 시험 감독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하고 조선이 해방이 되는 날인데 어떤 관헌들이 일을 할 수 있겠는가. . 이 상황에서 절반이 넘는 수험생들(이 사람들이 이법회 회원들임)이 대표를 뽑아 시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