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민변 11

제11화 소록도의 기적

나와 민변(11) 제11화 소록도의 기적ㅡ한일 변호사들의 소록도 보상소송을 기록하다ㅡ 이제 시리즈 이 거의 종착역에 다 달았습니다. 제11화 한센인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에 비해 훨씬 깁니다. 자그마치 200자 원고지 80매에 가깝습니다. 사실 이것은 삽시간에 써진 것이 아닙니다. 지난 10년 간 조금씩 정리해 둔 것을 이번에 처음으로 공개하는 것입니다. 이 기록은 제 개인적으로나, 한센인들에게나, 아니 우리들 모두에게나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기록은 저 아니면 누구도 기록할 수 없다는 심정으로 정리했습니다. 독자 여러분, 한센인이 어떤 사람들인지 잘 아시나요? 그것은 차별의 대명사였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차별에서 해방될 수 있을지 이 글을 보면서 잠시 생각해 보지 않겠습니까? 기적생각해..

나와 민변 2016.02.20

제10화 내 친구 메르샴, 내 친구 내툰나잉

나와 민변(10) 제10화 내 친구 메르샴, 내 친구 내툰나잉-난민변호사는 이렇게 탄생했다- 민변, 난민업무를 시작하다1999년 민변 국제연대위원장이 된 이후 몇 년 간 가장 열심히 일한 게 난민분야다. 내가 국제인권법을 공부했다고 해도 처음 이 분야에 손을 댔을 무렵 내가 난민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전혀 없었다. 사실 그 당시 대한민국의 어떤 변호사도 이 분야에 관심을 두진 않았을 것이다. 1999년 어느 날 민변에 한 외국인이 찾아왔다. 명함을 보니 유엔 난민기구(UNHCR, 유엔 난민고등판무관)의 동경 사무소 법무담당관이었다. “박변호사님, 민변이 우리 난민기구와 협력해 한국의 난민신청인을 법률적으로 지원할 수 있을까요?”“유엔 난민기구가 어떻게 해서 저희 같은 민간 법률가단체를 찾아 이런 요청을..

나와 민변 2016.02.19

제9화 새로운 세계, 국제인권법에 도전하다

나와 민변(9) 제9화 새로운 세계, 국제인권법에 도전하다 [이번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보다 깁니다. 저의 본업에 관계된 일을 정리한다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줄이고 줄였습니다만 독자분들이 이런 곳에서 읽기에는 다소 길다는 생각이 듭니다. 양해를 구합니다. 앞으로 이어질 제10화도 국제인권법과 관련된 이야기가 계속될 겁니다.] 1999년 국내에서 첫번째로 발간한 국제인권법 교과서(좌). 2015년 발간한 인권법 교과서(우) 왜 국제인권법을 공부했는가 내가 국제인권법을 공부하고 그와 관련된 일을 하게 된 것은 어떤 연유에서일까? 곰곰이 생각하면 내 성격이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나는 평소 호기심이 많다. '무언가 새로운 세상에서 해보지 않은 일을 하고 싶다.' 이런 생각은 지금도 강한데 젊은 시절엔 그 강..

나와 민변 2016.02.16

제8화 당신이 경찰서에 연행되었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와 민변(8) 제8화 당신이 경찰서에 연행되었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ㅡ당직변호사 제도의 기원에 대하여ㅡ 내가 일본을 처음 간 게 1992년 5월이다. 내 첫 외국여행이기도 했다. 바로 이 사진이 그 때 내 모습이다. 동경대 정문 아카몬에서. 와 젊다! 경찰서에 연행되어 억울한 일 당하지 않으려면...사람이 살다보면 경찰서, 검찰청 한 번 안 가고 살긴 어렵다. 선량한 사람은 해당 안 될 것 같아도 그렇지 않다. 바라진 않겠지만 누구나 갈 수 있다. 그러니 우리가 평소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곳이다. 경찰서, 검찰청에 가면 처음부터 주눅이 든다. 어제까지 검찰청에서 검사로 근무한 변호사도 검찰청사에 들어갈 때는 일약 갑의 기분에서 을의 기분으로 바뀐다고 한다. 게다가 체포되어 유치장 신세까지 져보..

나와 민변 2016.02.13

제7화 감옥의 인권수준이 그 나라의 인권수준이다

나와 민변(7) 제7화 감옥의 인권수준이 그 나라의 인권수준이다 ㅡ손두팔과의 약속을 지키다ㅡ [이 긴 글이 독자들에게 어떤 관심이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평생 나하고는 상관 없는 곳이 감옥일 테니 말입니다. 하지만 그곳도 사람 사는 곳입니다. 사람이 자유를 제한 받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입니다. 정말 죄를 지어서 그 대가를 치르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억울하게 당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후자는 말할 것도 없지만 전자라 해서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권입니다. 어떤 나라의 인권수준을 알려면 감옥에 가보라는 말은 세상사에서 진리입니다.] 1990년대 초 행형제도에 한참 관심을 갖고 동분서주할 때의 내 모습 A와의 만남 내가 감옥에 관심을 갖고..

나와 민변 2016.02.12

제6화 스승 열전

나와 민변 (6) 제6화 스승 열전ㅡ내게 가르침을 준 분들에 대한 헌사ㅡ 민변 변호사로서 나는 무엇을 했는가 나는 민변 변호사로서 만 14년을 활동하다가 2005년 공직으로 진출했다. 그리고 변호사로 복귀하지 않고 대학으로 가 오늘에 이르렀다. 14년 간 민변 변호사로 일하면서 나는 새 길을 개척했고 그 길을 묵묵히 걸어왔다. 90년대 초에는 시국사건이 터질 때마다, 나는 다른 민변 동료들과 함께 양심수 변호를 했지만, 시간이 가면서 연구하는 변호사로 자리매김했다. 민변의 여러 직책 중 내가 처음 맡았던 것도 연구간사였다. 민변 변호사로 일하면서 내가 연구하고 일정한 성과를 낸 것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 중요한 것만 정리하면 대략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향후 ‘나와 민변’ 시리즈는 아래 내용을 구체..

나와 민변 2016.02.10

제5화 젊은 날의 초상

나와 민변(5) 제5화 젊은 날의 초상ㅡ기개 넘치는 변호사의 탄생ㅡ 서른 살 무렵의 필자. 거칠 것이 없는 시절이었다. 나이 서른, 열정 변호사로 탄생하다변호사 초년 시절, 민변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기억 남는 게 많지만 우선 이야기하고 싶은 게 변호사의 용기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변호사는 약간의 능력과 약간의 용기만 있다면 폼나는 사람? 소영웅 정도는 될 수 있는 직업이다. 잘 돌아보라. 변호사 중 영웅적 활동을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팽목항에서 세월호 유족들과 동고동락한 B 변호사, 재심사건으로 억울하게 감옥에 간 수형자의 한을 풀어주고 있는 P 변호사.... 이들이 그렇게 영웅적 활동을 할 수 있는 그 동력이 무엇일까? 변호사로서의 능력과 용기가 아니겠는가. 나도 ..

나와 민변 2016.02.08

제4화 민변 변호사가 되다

나와 민변(4) 제4화 민변 변호사가 되다ㅡ보람과 번민의 시절ㅡ 고용변호사로 출발하다1990년 2월 말 부로 군문을 나왔다. 이제 내게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저 법정이란 무대에 나는 어떤 변호사로 이름 석 자를 올려야 할까? 제대 몇 달 전에 우연히 서초동에서 개업 변호사로 있는 대학선배 김00변호사를 찾았다. 식사를 같이 하면서 제대 후 진로를 이야기하다가 변호사 한 분을 소개 받았다. 법원 앞 정곡빌딩에 사무실을 둔 박00변호사였다. 이야기는 쉽게 진행되어 제대와 동시에 그 사무실에 출근하기로 하였다. 고용변호사로 취직한 것이다. 1990년 서울 서초동 법원 앞 정곡빌딩에서 고용변호사로 일하던 시절 필자 당시 변호사들의 처우는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요즘 변호사들을 생각하면 미안한 생각이 들지만 ..

나와 민변 2016.02.07

제3화 내 인생의 방향을 설정한 곳 대한민국 군대, 그 두번 째 이야기(2)ㅡ나는 누구를 대변해야 하는가ㅡ

나와 민변(3) 제3화 내 인생의 방향을 설정한 곳 대한민국 군대, 그 두번 째 이야기(2)ㅡ나는 누구를 대변해야 하는가ㅡ 군대는 새로운 도량 군대는 내게 치욕을 안겨다 주었고 어렴풋하게나마 차별이 무엇인지알려준 곳이었지만 내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값진 도량이기도 했다. 그 시절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존재할 수 없다. 특히 교양을 갖춘 법률가의 삶은 바랄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지금 법학 이외의 분야에서 이름 석 자를 내걸고 대중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초는 바로 군대시절 다져진 것이었다. 정훈장교로서의 삶은 내게 세상을 보는 눈과 내가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할지를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내가 만일 법무관으로 군 생활을 했다면 내 인생은 협소한 경험의 틀을 벗지 못하고 살았을 것이다. 대학 ..

나와 민변 2016.02.06

제2화 내 인생의 방향을 설정한 곳 대한민국 군대이야기(1)

나와 민변(2) 제2화 내 인생의 방향을 결정한 곳 대한민국 군대, 그 첫번 째 이야기(1) ㅡ내 생애 최대의 치욕을 경험하다ㅡ 군문에 들어가다 1987년 3월 7일 경북 영천 제3사관학교에 입소했다. 나는 당시 결혼한 지 5개월 밖에 안 된 신혼이었기에 군 입대는 큰 부담이었다. 그래도 대한민국에서 남자로 태어났으니 이 문을 안 들어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당시 3사관학교 교장 김진영(육사17기)은 하나회의 핵심이자 12.12 쿠데타의 주역 중 한 사람으로 후일 육군참모총장까지 올라간 인물이었다. 김진영은 모든 후보생들에게 3기라는 것을 강조했다. 3기란 행군, 사격, 태권도를 말하는 것인데, 행군은 4박 5일간 완전군장을 하고 영천 일대 200킬로미터를 걸어야 했고, 사격은 3사 교정에서 8킬로미터 ..

나와 민변 2016.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