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정/단상 27

금요 단상-연구실을 둘러보며-

금요 단상-연구실을 둘러보며-  금요일 아침 일찍 연구실에 나와 다음 주 강의를 준비합니다. 저는 연구실에 있을 때 가장 큰 행복감을 느낍니다. 저는 이곳에서 학문의 자유를 만끽합니다. 누구의 간섭도 없이 온전히 제 의지대로 이곳에서 제 하고 싶은 연구를 합니다. 저는 이 공간의 완벽한 성주입니다. 이 같은 삶을 살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합니다. Gracias a la vida! 강의 준비를 얼추 마치고 잠시 연구실을 둘러보면서 옛 생각에 빠집니다. 제가 어렴풋이 학자의 길을 가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된 때가 대학 4학년 겨울(1984년)입니다. 저는 그때 철이 들고나서 처음으로 긴장을 풀어봅니다. 그해 가을 사법시험 최종 합격 통지를 받았거든요. 이제 한숨 돌릴 수 있다 생각하니 마지막 겨울방학을 무엇인..

한강에 열광하는 이유

한강에 열광하는 이유  한강에 대한 인기가 실로 뜨겁다. 12월 노벨상 시상식이 있으니 적어도 그 때까지 이 열기는 계속되리라 생각한다. 한강이 받는 찬사는 노벨상의 위력이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설명하기 어렵다. 만일 한국의 또 다른 작가가 노벨 문학상의 수상자가 되었다 해도 이 정도의 독자의 반응과 찬사를 받을 수 있을까? 어려웠을 거라 생각한다. 한강은 왜 이다지도 많은 이의 찬사의 대상이 되는가? 당장 세 가지를 들고 싶다. 하나는 그의 공감의 언어가 독자를 일깨우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가 어루만진 현대사의 희생자들에 대해 죄책감을 느낀다. 우리는 그들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우리는 역사의 방조자였다. 한강은 그런 우리에게 조용하게 다가와 말한다. 잠시라도 희생자가 되어 그들이 느낀 ..

새벽단상-몸이 기억한다는 것-

새벽단상-몸이 기억한다는 것- 이런 이야기를 하면 좀 다른 세계에 있는 사람이라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기억이란 머리로 하는 것으로 알지만 몸으로도 합니다. 그것을 직접 경험해 본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들으면 ‘그렇지, 나도 그런 게 있지‘ 라고 말할 겁니다. 제 경우는 한자 쓰기가 그렇습니다. 요즘 세대는 한자를 잘 모릅니다. 법률 용어는 거의 100 프로 가깝게 한자어임에도 정작 그 한자를 모른 채 공부를 합니다. 법학도가 그런 정도니 일반 학생들의 한자 이해력은 바닥 상태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많은 분들이 이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데 저도 그 중의 한 사람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는 강의를 할 때 판서의 절반은 한자로 채웁니다. 어려운 한자를 쓸 때는 한자를 먼저 쓰고 한글을 달아줍니다. 이번 ..

가을 학기를 맞는 단상

가을 학기를 맞는 단상 긴 여름이 지나간다. 지난 여름은 혹독했다. 기상관측 이래 최장 열대야가 지속되었다. 내 기억으로 가장 더웠던 1994년을 능가하는 여름이었다. 그 여름이 가고 있다. 인간이 의식할 수 있는 우주의 최강자는 다름 아닌 시간이다. 시간 앞에서는 어떤 장사도 무력한 존재일 뿐이다. 이번 가을 학기 나는 두 개의 강의를 맡는다. 학부 교양 과목 1개, 대학원 과목 1개. 학부과목 수강생은 현재 100명, 조만간 20명이 더 들어올 것이다. 120명, 로스쿨에서 제공하는 제일 큰 강의다. 학교 전체적으로도 가장 큰 대형 강의 중 하나다. 외국인 학생이 4분의 1쯤 되는데, 강의 방법에 어떤 변화를 주어야 그들의 이해도를 높일 수 있을지 고민이다. 대학원 강의에는 6명이 들어왔다. 조촐한 ..

일요단상-10년의 지혜-

일요단상-10년의 지혜- 나이를 먹어가면서 약간의 지혜를 얻는다면, 그것은 '자제'입니다. 옛날 같으면 크게 게의치 않고 말하고 썼지만 요즘은 머릿속에 따지는 게 많습니다. 그게 좋은지 나쁜지는 사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SNS(페이스북) 공간에 들어온 지 어느새 10년이 지났습니다. 그 사이 이 공간도 변화가 많았고 제 글쓰기에도 적잖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이 공간은 시간이 갈 수록 상업화 되어 가고 있습니다. 페친들의 글보다 광고가 더 많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 공간에서 글 다운 글을 써보고자 노력했습니다. 지난 10년 간 제가 한 일 중에서 이것을 빼고 저를 설명할 수 없을 겁니다. 그렇게 글을 써왔지만 요즘은 진짜 한계상황에 온 것 같습니다. 어떤 글도 크게 세상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는..

오후 단상-나의 독락당에서-

오후 단상-나의 독락당에서- 이제 성적 처리도 다했으니 방학이 시작되었다. 캠퍼스 여기저기에서 왁자지껄하던 학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교수들도 어딜 갔는지 연구실 방문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나만이 적막강산 절간에 버려진 느낌이다. 나는 이 고요함이 좋다. 누구로부터도 방해받지 않는 이 공간에서 상상의 나래를 펴며 자판을 두드리는 내 모습이 좋다. 이 순간만큼은 돈도 싫고 권력도 싫다. 나의 이 절대적 자유를 그 무엇이 만들어 줄 수 있겠는가. 나는 5-6평의 이 공간에서 절대적으로 군림하는 군주다. 오늘 점심 시간은 멀리 산책을 했다. 뙤약볕을 맞으며 한 시간 이상 걸어 얼마 전 알아 놓은 맛집 하나를 찾아갔다. 장안평에 있는 조그만 노포 국숫집이다. 고기국수로 유명한 이 국숫집은 그 흔한 인터넷 ..

일요단상-이 시대를 사는 법-

일요단상-이 시대를 사는 법- 우리는 잠시라도 정신줄을 놓으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비정한 시대에 산다. 독한 마음을 갖지 않고서는 살 수가 없다. 그렇다면 이 시대를 사는 최선의 방법이 무엇일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것 밖에는 없는 것 같다.이 시대에 살기 위해서는 나만의 정체성을 갖고 묵묵히 걸어가야 한다. 매일 같이 외쳐야 한다. 나는 다르다, 나는 누구와도 다르다! 그것 없이는 타인의 종이 되거나 AI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아무리 노력해도 소수의 뛰어난 능력, AI의 기계적 능력을 따라잡을 수 없다. 우리 삶이 그것들을 이기기 위한 것이라면 게임은 시작도 하기 전에 끝난 것이다. 피땀 흘려 노력하면서도 자신의 무능함에 실망하고 결국 지쳐 포기하게 될 것이다. 가여운 삶이다. 나는 그런..

일요 단상-잠에 대하여-

일요 단상-잠에 대하여-   지금 시간 새벽 4시. 30분 전 일어나 차를 한잔하고 책상 앞에 앉았습니다. 머리가 맑습니다. 지난밤 6시간 이상 숙면을 취했습니다. 마음이 차분하고 몸에 생기가 흐릅니다. 오늘은 무슨 일이든 잘할 것 같습니다. 저는 평생 제 몸과 정신을 관찰하면서 ‘몸과 정신의 관계’를 살펴 왔습니다. 이 관찰을 통해 얻은 결론은 몸은 정신의 기초라는 자명한 원리입니다. 몸과 정신은 분리될 수 없습니다. 몸이 부실하면 정신도 부실합니다. 몸이 단단하면 정신도 단단합니다. 몸과 정신이 이어지는 데 잠의 역할이 큽니다. 잠은 몸이 정신으로 이어질 때 사용하는 통로입니다. 잠은 몸과 정신의 상태를 알려주는 알람이기도 합니다. 잠을 잘 자면 몸과 마음이 생기를 회복합니다. 잠을 못 자면 몸도 마..

새벽단상-생기있는 삶을 위하여-

새벽단상-생기있는 삶을 위하여- 내게 있어 나이가 들고 있다는 가장 큰 증거는 욕망의 감소다. 육체적 욕망이야 어쩔 수 없는 것이라 해도 정신적 욕망마저 줄어든다. 평생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호기심의 쇠퇴는 심각한 일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뭔가를 새롭게 안다는 게 즐거움이었다. 독서를 평생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지하철 속에서도 책을 읽었고 심지어 화장실을 갈 때도 책을 지참하지 않은 적이 없을 정도다. 책을 읽다가 흥미로운 새 책을 발견하면 지체 없이 주문하다 보니 주체할 수 없이 책이 쌓여갔다. 그런 내게 변화가 찾아왔다. 지난 몇 년간 새로운 지식을 얻고자 하는 마음이 시나브로 약해졌다. 온갖 매체에선 AI 시대가 본격적으로 도래했음을 알리고 있지만 나와는 크게 관계없는 일로 ..

일요단상-좋은 습관에 대하여-

일요단상 -좋은 습관에 대하여- 매일 아침 출근을 하면서 거울을 보자. 얼굴을 자세히 보아야 한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얼마나 다른지 살펴야 한다. 평상심에서 얼굴을 보면 보이는 게 있다. 선업을 쌓고 있는 사람은 얼굴에 밝음이 드러나지만, 악업을 쌓고 있는 사람은 얼굴에 어두움이 드리운다. 거울을 보면서 조금이라도 어두운 얼굴을 감지하면 자신이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를 살펴라. 하루의 시작점에서 자신을 점검하면 분명 길이 있을 것이다. 머지않아 밝은 얼굴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루 한두 번 잠깐이라도 명상을 하자. 새벽 일찍 일어나 사위가 고요할 때 혹은 저녁 시간 잠자기 전에 잠시 눈을 감아라. 생각에 잠기려 하지 말고 생각을 멈추라. 전기를 끄면 기계가 멈추듯 얽힌 실타래 같은 정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