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정/단상 19

새벽단상-생기있는 삶을 위하여-

새벽단상-생기있는 삶을 위하여- 내게 있어 나이가 들고 있다는 가장 큰 증거는 욕망의 감소다. 육체적 욕망이야 어쩔 수 없는 것이라 해도 정신적 욕망마저 줄어든다. 평생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호기심의 쇠퇴는 심각한 일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뭔가를 새롭게 안다는 게 즐거움이었다. 독서를 평생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지하철 속에서도 책을 읽었고 심지어 화장실을 갈 때도 책을 지참하지 않은 적이 없을 정도다. 책을 읽다가 흥미로운 새 책을 발견하면 지체 없이 주문하다 보니 주체할 수 없이 책이 쌓여갔다. 그런 내게 변화가 찾아왔다. 지난 몇 년간 새로운 지식을 얻고자 하는 마음이 시나브로 약해졌다. 온갖 매체에선 AI 시대가 본격적으로 도래했음을 알리고 있지만 나와는 크게 관계없는 일로 ..

일요단상-좋은 습관에 대하여-

일요단상 -좋은 습관에 대하여- 매일 아침 출근을 하면서 거울을 보자. 얼굴을 자세히 보아야 한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얼마나 다른지 살펴야 한다. 평상심에서 얼굴을 보면 보이는 게 있다. 선업을 쌓고 있는 사람은 얼굴에 밝음이 드러나지만, 악업을 쌓고 있는 사람은 얼굴에 어두움이 드리운다. 거울을 보면서 조금이라도 어두운 얼굴을 감지하면 자신이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를 살펴라. 하루의 시작점에서 자신을 점검하면 분명 길이 있을 것이다. 머지않아 밝은 얼굴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루 한두 번 잠깐이라도 명상을 하자. 새벽 일찍 일어나 사위가 고요할 때 혹은 저녁 시간 잠자기 전에 잠시 눈을 감아라. 생각에 잠기려 하지 말고 생각을 멈추라. 전기를 끄면 기계가 멈추듯 얽힌 실타래 같은 정신..

새벽 단상-인생의 벽-

일요일 새벽 남들 다 자는 시간에 일어나 조용히 세상을 돌아본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확실한 것은 할 일이 없어진다는 것. 하고 싶어도 할만한 것이 없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한계에 온듯하다. 20대 아니 30대까지는 세상엔 벽이 없었다. 희망이 있었다. 내가 노력하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는 꿈이 있었다. 40대에 벽이 보이기 시작했다. 무언가 해도 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 것이 하나둘 늘어났다. 세상이 온통 안개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50대를 통과해 60대로 들어서니 사방은 난공불락의 벽이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보인다. 사람들은 이것이 인생이고 철드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 벽을 넘지 않고서는 새 세상은 오지 않는다. 이 벽을 깨지 않고서는 희망을 말할 수 없다. 살아 있는 한 ..

일상의 습관에 대한 단상

며칠간 가족 없이 혼자 생활을 했다. 혼자 있으니 마음껏 자유를 누릴 줄 알았다. 나의 규칙적 생활에 잠시라도 변화를 주고 싶었다. 잠을 더 자 몸에 편안함을 주고 싶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러지 못했다. 기상 시간은 오히려 평상시보다 30분이나 빨라졌다. 새벽 3시부터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바람에 평상시보다 더 피곤했다. 다시 침대로 돌아가 잠을 청하기도 했지만 여의치 못했다. 30분도 자지 못하고 다시 책상 앞에 앉는 일이 반복되었다. 왜 나는 혼자만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몸에 밴 습관의 굴레에서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살아가는가? 인간은 습관의 노예다. 습관이란 오랜 기간 같은 일을 반복함에 따라 몸에 새겨진 일종의 자동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이 만들어지면 인간은 그에 좇는 수밖에 없다. 가끔 ..

일요단상-법률가는 조국사태를 어떻게 써야 하는가-

법률가로 훈련된 사람들의 특징은 매사 신중함이다. 그들은 어떤 사안에 대해서도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다. 객관적 증거에 의해 사실관계를 확정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린다(법률가들에겐 이쪽 저쪽 이야기 다 듣고 판단하는 게 기본 중의 기본!). 만일 급한 상황에서 의견을 말할 때라도, 자신의 판단근거가 틀릴 것을 예상하여, (단정적으로 말하지 않고) 단서나 조건을 붙인다. 요즘 이 공간에서 글을 쓰는 법률가들에게선 이런 특징이 잘 안 보인다. 조국 사태와 관련해 적잖은 법률가들이 매우 공격적으로 글을 쓴다. 보수든 진보든 가릴 것 없이, 밑도 끝도 없는 기사 하나를 근거랍시고, 단정적이고 선동적인 글을 써댄다. 도대체 그렇게 단정할 수 있는 합리적 이유가 무엇인가. 찌라시 같은 언론보도 외에 그런 판단을 할 ..

새벽 고백

새벽 고백 추석 연휴 나흘을 조용히 보냈다. 그저 집에서 영화나 보다가 하루에 한 번 잠간 산책을 했을 뿐이다. 책상 위엔 읽어야 할 책이 쌓여 있지만 어쩐지 이번 연휴엔 손이 가지 않았다. 머릿속엔 안개가 자욱하다. 뭔가 모호하고 정확하지 않다. 강렬한 욕망의 추억을 재현하고 싶지만 이젠 일어날 것 같지 않다. 날씨도 완연 가을 기분이다. 어제 밤엔 선선하다 못해 한기를 느껴 창문을 닫아버렸다. 새벽 3시 경 눈을 떴다. 조금 더 자야 하지만 그냥 일어나고 말았다. 갑자기 한 가지 잊은 게 생각났다. 생각난 김에 하지 않으면 필시 또 잊을 것 같았다. 남성호르몬이 점점 줄고 여성호르몬이 늘어나는 모양이다. 기분은 자주 다운되고 가끔은 울적하기까지 한다. 미래를 향해 달려가기보다는 자꾸 고개를 돌려 과거..

시란 무엇인가

(페북에서 시를 발견하였습니다. 그것을 보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도 한 때는 시인이었다. 그러나 지금 나는 시를 쓰지 않는다. 시는 아무 때나 쓰는 게 아니다. 시는 써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 하고 싶은 말이 머릿속을 꽉 채워 더 이상 말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심정에서 시는 나온다. 수많은 단어가 머릿속을 뱅뱅 돌지만 결국 선택되는 것은 극소수 그 상황을 묘사하는 단 하나의 단어, 그것을 찾아야 한다. 그것을 순간적으로 찾아내 배열하는 자만이 시인이다. 시는 어떤 장르의 글보다 힘이 있다. 그냥 실없이 내 뱉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치열한 언어의 경연장에서 살아남은 승리자들이다. 시를 쓰는 날, 나는 무언가에 충만되어 있다, 사랑으로, 정의감으로. 시는 그것을 표현하는 도구, 시인은 그것을..

아버지의 태극기

아버지 유품을 정리하면서 아버지의 손때 묻은 태극기를 발견하고 집으로 가지고 왔다. 우리 아버지는 태극기를 끔찍하게 여기셨다. 국경일엔 아침 일찍 태극기 게양하는 것을 반세기 이상 한 번도 빠짐없이 몸소 실천하셨다. 이제부터 우리 집 국경일 태극기 게양은 아버지의 태극기로 교체될 것이다. 나는 그것이 아버지의 유지라고 생각한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나만큼 태극기를 사랑한 사람도 드물 것이다. 이 십 수년 전 미국유학 시절 우리 집 거실 벽 한가운데엔 태극기가 붙어 있었다. 한국에서 가지고 간 천 태극기를 그렇게 붙여 두고, 매일같이 태극기를 바라보면서, 대한민국을 잊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당시 내 머릿속엔 태극기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은 김구 선생과 윤봉길 의사가 있었다. 태극기를 끼고 산다고 해서 애..

묘한 시기, 나는 잘 관리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내 인생에서 지금이 가장 묘한 시기인 것 같다. ‘묘하다’는 표현이 다소 우습지만 더 이상 그럴듯한 표현을 찾기 어렵다. 위기인 것도 같고, 난관에 봉착한 것도 같고, 두렵지만 담담하기도 하고... 그런 중에도 뭔가 관리를 하고 있는 것 같고,.. 하나로 표현하기가 어려워 묘하다고 한 것이다. 페북에서 이런 말을 쓰려니 주저하는 바가 많다.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를 1만 명 이상의 페친앞에서 까발리는 것이 과연 적절한 일인가. 그럼에도 나는 글을 쓴다. 이 글쓰기마저 없다면 내가 나를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이해할지 모르지만 내게 있어 글쓰기는 공기요 물이며 한 가닥 지푸라기다. 누구한테 하소연하기 위함이 아니다. 그저 글을 씀으로써 마음을 정화하고 안정시키는 것이다. 혼..

공부란 무엇인가-16살 소년이 터득한 공부 이야기-

과거 이야기 자주 하는 사람, 학창 시절 공부 잘했다고 이야기 하는 사람, 어려운 환경에서도 굴하지 않고 노력했다고 이야기 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을 요즘 세상에선 꼰대라 부른다. 나는 그런 말 안 들으려고 노력하지만 부지불식간에 튀어나오는 말을 막기 어렵다. 젊은 친구들이여, 용서하시라, 이해해 주시라. 그대들도 시간이 지나면, 모름지기 나 같이 옛날 이야기할 때가 올 테니, 너무 지겹다고 말하지 말라. 그럼에도 이런 이야기가 듣기 싫으면 그저 조용히 웃고 지나가시라. 이것은 내가 동시대를 살아온 동년배 친구들과 잠시 추억의 돌담길을 걸으며 나누는 시시한 이야기일 뿐이니. 이삿짐을 정리하다가 추억의 상자를 발견하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시절까지 받았던 성적표와 상장 등이 그대로 보관되어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