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37

나의 나태함을 날려 버린 <나이애드의 다섯 번째 파도>

나의 나태함을 날려 버린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어느 것 하나 마음에 드는 게 없다. 나라 거덜 날 것 같아 하루라도 빨리 물러나길 바랐던 이명박과 박근혜 시절이 그리울 정도다. 공정과 상식을 표방한 정권이지만 애당초부터 그것을 바랄 순 없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착잡하고 머리 속엔 좌절, 절망, 포기 같은 부정적 단어만 맴돈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결코 포기할 수 없다고 자기 최면을 걸자, 결코 여기서 멈추지 말고 한 발이라도 앞으로 나아가자. 사람이 하는 일이니 분명 우리가 바꿀 수 있다. 영화 한 편이 나의 나태함에 경종을 울린다. 성실하게 산다고 자부했지만 이 영화를 보니 한참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들어 몸이 예전과 같아 나도 이제 늙은 모양이라고 스스로 ..

영화이야기 2023.11.17

법률가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영웅이 될 수 있을까, <레인메이커 The Rainmaker>

법률가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영웅이 될 수 있을까. 내가 그 일을 상당기간 해왔기에 말하지만 그런 법률가가 나오긴 매우 어렵다. 법률가는 기본적으로 보수적이고 돈과 권력을 추종하는 성향이 강하다. 법률가는 주로 돈 있는 사람, 권력 있는 사람 편에 서서 그들의 이익을 위해 법률기술을 발휘한다. 그렇게 해서 어떤 법률가는 권력가가 주는 조그만 권력에 도취하고, 또 어떤 법률가는 부자가 주는 부스러기 돈에 미소를 짓는다. 그러나 가끔은 예외가 있는 법. 법이란 세상을 경영하는 수단이고 도구이니 누군가가 이것을 잘만 쓴다면 세상을 조금은 바꿀 수도 있다. 법률가가 많으면 세상은 좋아지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단연 미국사회가 답을 준다. 세상에 미국만큼 법률가 많은 곳은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변호사 수는 현..

영화이야기 2022.10.10

<무엇이 강간인가? 드라마 ‘Anatomy of a Scandal’을 보고‘>

지난 주말 영화 몇 편을 보았다. 그중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Anatomy of a Scandal. 영국 드라마인데 비동의 간음 강간죄(non-consensual rape)를 소재로 한 6부작 드라마다. 2022년에 나온 따끈따근한 최신 드라마. 영드답게(영화제목에 사용한 anatomy라는 단어 그대로) 묘사와 연기가 세밀하다. 영국 수상을 절친으로 둔 화이트하우스는 옥스퍼드 출신의 장래가 촉망되는 정치인이다. 미남이고 능력자인 이 남자는 좋은 가정에서 태어나 이제껏 실패라는 것을 모르고 산 인간이다. 그가 한 사건으로 정치적 위기에 몰렸다. 부하 직원(올리비아 리튼)을 강간했다는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된 것이다. 강간하기 전 이들은 몇 달간 불륜관계에 있었다. 그는 강간을 완강히 부인한다. 비록 불륜은 ..

영화이야기 2022.04.25

‘언더커버’ 두 영화 이야기, <무간도>, <디파티드>

언더커버(undercover). 영영 사전을 찾아 해석하면 ‘자신의 신분을 속이고 몰래 어느 조직에 들어가 스파이 노릇을 하는 사람’을 뜻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하게 볼 수 없지만 미국과 같이 조직범죄가 기승을 부리는 나라에선 왕왕 사용되는 수사기법이다. 경찰관이 마피아에 잠입해 보스의 신임을 얻은 다음 정보를 빼내 보스를 비롯해 조직을 일망타진할 때 쓰는 기법이다. 그런데 언더커버는 꼭 수사기관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때론 범죄조직도 수사기관에 스파이를 보낼 수 있다. 전과 경력이 없는 젊은 조직원을 경찰관으로 만들어 정보를 캐내 조직보호와 더 큰 범죄를 위해 이용하는 것이다. 언더커버는 영화의 주요 소재로 사용된다. 이를 소재로 한 작품들은 범죄영화의 한 장르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영화..

영화이야기 2022.01.08

두 영웅 이야기, '다키스트 아워', '핵소고지'

최근 넷플릭스를 통해 본 두 개의 영화가 머리에 남아 있다. 잊기 전에 잠시 정리해 보자. 실화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는 언제나 감동적이기에 이런 영화는 내 영화 버킷리스트의 맨 꼭대기에 위치한다. 며칠 전 본 두 개의 영화가 바로 그것들인데 모두 따로 정리해 놓을 만한 것들이다. 그런데 보고나니 이 두 영화는 함께 정리해 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둘은 다르지만 어쩐지 강력하게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둘 다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다. 하나는 다키스트 아워(Darkest Hour). 2018년 개봉된 조 라이트가 메가폰을 쥐고 게리 올드만이 주인공인 전시내각 총리 윈스턴 처칠을 맡아 열연한 영화다. 또 하나는 핵소고지(Hacksaw Ridge). 2017년 개봉되었고 할리웃 배우 맬 깁..

영화이야기 2021.11.14

대학사회의 성희롱 해결책-날리우드 영화 <나는 고발한다>-

몇 년 전부터 넷플릭스를 통해 많은 영화를 본다. 이제까지 본 영화의 수가 헤아릴 수 없다. 아쉬운 것은 기억력이 날로 떨어져 며칠 전 본 영화도 머리에 남는 것이 별로 없다는 점. 이런 이유로 내게 특별한 감동을 준 영화는 관람이 끝나면 바로 기록하고 정리하는 버릇이 생겼다. 기록을 남기면 후일 그 영화를 기억해 낼 수 있다. 기억력이 떨어졌다 해도 아직 그 정도 능력은 있기 때문이다. 이 글도 그런 일환에서 쓰는 것이다. 날리우드(Nollywood)라는 말이 있다. 나이지리아 영화 산업을 일컫는 말이다. 넷플릭스에 날리우드 작품이 몇 작품이 있지만 아직껏 거기까지 섭렵하진 못했다. 오늘 드디어 날리우드 작품 하나를 보았다. (Citation, 2020). 다소 긴 시간(2시간 30분)이었지만 관람 내..

영화이야기 2021.05.09

가족이란 무엇인가-‘힐빌리의 노래‘를 보고-

나이 들어 젊은 후배들 앞에서 자신의 옛날이야기는 가급적 하지 않는 게 좋다. “내가 젊은 시절에는 저렇지 않았어. 요즘 애들 너무 의지가 약해...” 이런 식의 이야기는 조금도 공감을 일으키지 못하는 꼰대의 이야기일 뿐이다. 이점을 나도 항상 염두에 두고 살지만, 어떤 식으로든지 과거의 나를 소환해 오늘을 사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욕망이 순간순간 일어난다. 이것이 내 본능인지 내 인간성의 한계인지.... 인간은 자신이 경험한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고 그것을 벗어나긴 매우 어렵다는데, 내게도 그것은 정확히 적용되는 것 같다. 미국은 풍요의 나라이지만 그게 모든 이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고기를 많이 먹는다는 미국인 중에도 스테이크 한 번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자라난 사람들이 많다. 옛날 고깃국에..

영화이야기 2021.05.08

진심으로 사과하기, 그 중요성을 알려준 영화 <Aftermath>

태평양 전쟁 중 일본군은 위안부라는 이름으로 조선을 비롯해 여러 나라의 젊은 여성을 성노예화 했다. 그런 행위가 국제범죄라는 것이 백일하에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여전히 책임회피에 열을 올리고 있다. 과거 몇 차례 일본 정부의 유감 표명이 있었지만 피해자들이 이를 진지한 사과로 받아들일 순 없다. 더욱 최근의 태도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고 있어 피해자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고 있는 상황이다. 생존해 있는 피해자 할머니의 수가 기십 명에 불과하고 그분들의 여명이 얼마 남지 않은 이 때, 할머니들에게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일까? 돈 몇 푼일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것은 아니다. 진심의 사과가 필요하다. 할머니들은 눈을 감기 전에 일본정부로부터 그 진심의 사과를 듣기 위해 오늘도 거리에서 일본정부와 싸우는..

영화이야기 2021.03.14

아가페 사랑이란? 영화 <새벽의 약속>

현대 프랑스 문학사에서 로맹가리(1914-1980)만큼 극적인 삶을 산 인물도 드물 것이다. 유대계로 태어나 홀어머니 미나와 두 개의 세계대전을 겪으며 힘겹게 어린 시절을 보냈다. 미나는 모스크바의 무명 여배우로 어떤 남자를 열렬히 사랑해 아들을 낳았지만 남자는 모자를 버렸다. 20세기 초 아무 배경 없는 가난한 여인과 사생아 앞에 놓인 삶이란 안보아도 비디오. 그렇지만 이들 모자는 그저 가난과 각박한 삶으로 인생을 끝내지 않는다. 미나와 로맹가리는 리투아니아의 빌뉴스(당시는 러시아 도시)와 바르샤바를 거쳐 꿈에 그리던 프랑스 니스에 정착한다. 미나는 그 어려움 속에서도 아들의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아들은 언젠가는 최고의 인물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니나는 유럽을 떠돌면서도 프랑스를 사랑했고 프랑..

영화이야기 2021.03.11

두 번 보아도 괜찮은 전쟁영화, <Enemy At the Gate>

성격 탓인지 한 영화를 두 번 보는 일은 좀처럼 없다. 가끔 그런 영화를 만난다면 뭔가 특별히 끌리는 요소가 많기 때문이다. 나로선 Enemy At the Gate(2001, 감독 장 자크 아노)가 그런 영화다. 전쟁영화로서의 리얼리티, 흥미로운 스토리 라인, 눈을 고정시키는 명장면... 어느 모로 보나 꽤 괜찮은 영화다. 연휴에 전쟁영화 한 편 보고 싶다는 사람들이 있다면 나는 서슴없이 이 영화를 추천한다. 영화는 한 소설을 기초로 만들어졌다. 윌리엄 크래이그의 소설 Enemy at the Gate: The Battle for Stalingrad. 2차 대전 중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영웅적 공을 세운 바실리 자에체프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다. 바실리는 스탈린그라드 전투에 참전한 소련의 병사였고 이 전투..

영화이야기 2021.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