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정/삶의 이야기 25

내 삶에 의미를 부여한 선택들

내 삶에 의미를 부여한 선택들 나는 가끔 생각한다, 내가 살아오면서 선택한 의미 있는 것들을. 60년 이상 살면서 내 의지에 따라 선택한 것이 그리 많지 않다. 그저 시간에 떠밀려 다음 일을 했고, 내 환경에 맞춰 의당 기대되는 일을 한 것이 대부분이다. 물론 의미 있는 선택도 있었다. 그런 선택은 대부분 나를 고독하게 만들었다. 남이 하지 않은 선택이기에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웠고 마음은 불안했다. 하지만 그 선택이 모아져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오랜 기간 고독한 삶을 살았지만 후회는 없다. 선택의 순간에는 크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지나 놓고 보니 큰 것이기도 했다. 잠시 그 선택의 순간을 회고해 본다. 내 삶에 의미를 부여한 선택은 어떤 것들이었을까? 기억나는 첫 번째 선택은 중학교 시절 교문을 들어설 ..

나의 SNS 친구들

생각해 보니 제가 이 SNS를 시작한 지 십수 년이 되어 갑니다. 꽤 시간이 흐른 오늘 이곳에서의 친구 관계를 잠간 생각해 봅니다. 과연 이곳에서의 친구 관계란 무엇일까요. 이곳이 그렇게 오랜 시간을 투자할 만한 공간이 될 수 있을까요. 제겐 이 공간에 5천 명 가까운 친구가 있습니다. 저와 친구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 1천 명이 항상 대기하고 있습니다. 거기에다 1만 5천여 명의 팔로워가 있으니 거의 2만 명 정도의 사람들이 저와 이 공간에서 접촉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런 상황이지만 평상시 글을 올렸을 때 반응을 보면 실망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정확히 계산은 안 해 보았지만 제 글에 반응하는 친구와 팔로워는 극히 제한적입니다. 전체 수로 보면 2프로 정도만 반응하는 것 같습니다. 댓글을 달아 글에 반응하는..

새벽 단상-이제 혼자의 시간을 끝내야 하는가-

새벽 단상-이제 혼자의 시간을 끝내야 하는가- 지난 2월 공직 퇴임 후 오랜만에 혼자의 시간을 가졌다. 봄학기는 3년 만에 수업을 하는지라 좀 부산하게 보냈지만 학기가 끝난 후부터 오늘까지 만 5개월 동안은 적막한 일상을 보냈다. 마침 한 학기 안식년이 주어졌기에 이런 생활이 가능했다. 새벽 4시 전에 일어나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 6시가 되면 간단히 조리해 아침 식사를 하고 집안 정리를 한 다음 오전 글쓰기를 한다. 11시가 되면 점심을 간단히 하고 산책길에 나선다.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집 근처 카페에서 카페라테 한잔을 마신다. 두 시쯤 집에 돌아와 오후 글쓰기에 몰두한다. 4시가 넘으면 아파트 내에 있는 스포츠 시설에서 실내 자전거를 30분쯤 세게 탄 다음 약간의 근육운동을 하고 사우나에 가서 땀..

내게 글쓰기의 열망이 있는가?

저는 지난 10년 이상 대중적 글쓰기를 해왔습니다. 2020년 1월부터 3년 간 공직재직 기간을 제외하곤 꾸준히 글을 썼습니다. 저는 심심하고 시간 남을 때 적당히 글을 써 올리는 스탈의 사람은 아닙니다. 글을 써야 한다는 강한 사명감이 머리와 가슴을 꽉 채울 때 글을 쓰고 그것을 올립니다. 제가 6년 전 오늘(2017. 10. 2) 이에 대해 이런 말을 했습니다. "글을 쓰기 전 쓰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명감에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글을 쓰기 전 머릿속엔 여러 생각이 뒤엉켜 부글부글 끓는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그 생각들이 일렬종대로 머릿속에서 정리된다. 나는 그것을 놓치지 않는다. 때론 그 순간이 지하철을 타고가다 전동차 속에서, 때론 거리를 걷다가 길 한 가운데서 찾아온다. 나는 장소불문 그 생각..

이런 사람을 찾습니다, 이런 사람이 되고자 욕망합니다

이런 사람을 찾습니다, 이런 사람이 되고자 욕망합니다. 저는 지금 외국에 나와 있습니다. 여러 곳을 다니며 심신을 휴양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기상이변으로 폭우와 폭염이 계속되고 있는데 저만 딴 세상에 와 있는 것 같아 미안합니다. 그런 이유로 여행기를 올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글도 때가 맞지 않으면 덕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 때문입니다. 여행기는 기회를 보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여행을 하면서도 틈이 나는대로 한국 소식을 접합니다. 양평고속도로 건을 보니 원희룡 장관의 언행이 도가 지나치더군요. 의혹을 제기할 수 있는 상황에서 그것을 제기했다는 이유로 신경질을 내며 사업추진을 백지화했다가 여론이 좋지 않으니 슬슬 꼬리를 내리는 중이더군요. 이런 무책임한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새만금 잼버리 ..

내 인생 8할이 결정된 곳

사근동, 내 인생 8할이 결정된 곳이다. 1973년 초등학교 5학년 때 이곳에 왔으니 올해로 만 50년이 된다. 이 기간 중 내가 이곳을 떠나 있었던 것은 1994년부터 2006년까지 10년 조금 넘은 기간이었을 뿐이다. 나는 이곳에서 학교 교육을 마쳤고, 사법시험을 합격해 법률가가 되었다. 결혼한 뒤 3-4년을 이 동네에서 살면서 딸 둘을 낳았다. 30여 년 전 강남으로 이사를 갔지만 교수가 되어 모교 한양대로 오는 바람에 나는 다시 이곳 사람이 되었다. 일과 중 자연스럽게 내 발걸음은 이곳으로 향한다.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커피 한잔을 마신다. 연구실로 돌아오는 길에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본다. 이것이 내 삶의 루틴이다. 요즘엔 제자들을 이곳으로 안내해 밥을 사주면서 때때로 옛날 이야기를 해준다. (물..

글쓰기의 어려움

이곳에 글쓰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글다운 글이 아니라면 굳이 올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도 일종의 강박관념이다. 누군가는 그런 내게, 그저 가볍게 생각하고, 가볍게 글을 써, 가볍게 올리면 되지 무슨 그렇게 고민을 하느냐고 한마디 할 것 같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생각해왔던 글을 쓰고 싶다. 오랜 기간 이곳에 들어와 남의 글을 보아왔다. 글 중에는 나를 피곤하게 하는 글도 많았다. 일부러 작정하고 사람들을 끌어모으려는 글. 허구한 날 세상과 사람을 재단하는 글. 과도하게 자신의 일상을 보여주는 글. 이런 글들은 가끔 보면 흥미가 가지만 매일 본다고 생각하면 감당하기 힘들다. 내 글은 어떤 것일까. 혹시나 선생티 내는 글로 또 다른 피곤 거리를 주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이 나면..

내가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

하루에도 몇 번씩 이곳(페북)에 들어와 남의 글을 읽는 게 몇 년이나 되었는가. 족히 10여 년은 된 듯하다. 이렇게까지 이곳에 들어올 계획도, 생각도 없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가끔 이곳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나도 뭔가를 남기기 위해선 더 늦기 전에 그것을 찾아 집중해야 하는데 언제까지 이곳을 들락날락할 것인가. 그런데도 나는 아직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무엇인가 나를 떠나지 못하게 하는 마력이 있기 때문이다. 아마 그 마력은 특별한 사람들을 보는 재미일지 모른다. 그들로부터 순간순간 어떤 도전을 받기 때문이다. 부러우면 진다고 하지만 어느 날부터인지 그런 마음보다는 존경심이 생겼다. 삼인행필유아사(三人行 必有我師)라 하지 않았는가. 이곳을 돌아보면 도처에 스승이 있다. 잘만 ..

스승에 대한 기억

나는 어젯밤 글에서 요즘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은 나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질지 궁금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과거 내 학창 시절 선생님들은 내게는 넘사벽이었다고 말했다. 그분들은 나와는 완전 딴 세상에 사는 분들이었다. 그럼에도 그분들이 나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오늘은 찬찬히 한 분 한 분 선생님들에 대한 기억을 소환해 내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잠시 생각해 본다. 그분들은 내게 어떤 존재이었을까? (아래 나이는 내가 교수님들을 처음 만났을 때 연세이다.) A 교수님(헌법). 50대 초반.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돈 걱정 없이 살아오셨다고 들었음. 교수님 중 가장 재산이 많은 분으로 자타가 공인. 독일 유학파인데 강의 시간에 무슨 말씀을 하신 것은 기억나지 않지만 항상 칠판에 독일어를..

정성(精誠)이란

출근을 하면서 캠퍼스의 벚꽃을 감상했습니다. 지난 주말 꽃망울을 터트리더니 오늘 드디어 절정입니다. 3일 연속 사진을 찍어 보니 그 차이가 확연합니다. 오늘 찍은 사진을 올립니다. 저는 매일 출근을 하면서 일부로 학교에서 먼 역(왕십리역)에서 내려 연구실까지 걸어옵니다. 저희 학교는 옛날 청계천 변의 야산을 깎아 만들어졌기 때문에 경사가 심합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불평하지만 저에겐 다리 근육을 키우는 데 딱 좋습니다. ㅎㅎ(긍정적 마인드!) 아마 저희 학교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이나 교직원들은 몇 년 캠퍼스를 다니다 보면 단단한 다리를 얻을 겁니다. 저는 경사진 곳을 걷기 위해 차를 가지고 다니지 않습니다. 학교로 돌아와 한번도 자동차를 타지 않고 이렇게 출근하니 연구실에 오면 근육의 팽팽함을 느낍니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