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인생/영국이야기 34

현대와 과거의 공존

현대와 과거의 공존 우연한 기회에 묘한 사진을 찍었다. 12월 25일 런던 시내는 전철도 버스도 다니지 않았다. 나는 집에만 있기 어려워 점심을 먹고 템즈강을 향해 걸었다. 한 시간 쯤 걸으니 리버풀 근처까지 갔는데... 바로 저 거리를 지나게 되었다. . 순간 앞에 펼쳐진 모습이 기이했다. 주변 건물은 모두 19세기에 건축된 것인데, 저 앞 옥수수 콘 모양의 빌딩은 21세기에 건축된 'Gherkin'이라는 빌딩이다. . 19세기와 21세기의 기이한 만남, 과거와 현대의 묘한 조화 . 한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고 있었다. 그것마저 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 나는 순간적으로 핸드폰을 꺼내 몇 장을 찍었다. 이게 그 중 하나다. # 만일 저 사진 속에, 자전거 타고 가는 사람이 없었다면, 그저 현대와 ..

영국이야기 40 대화재, 런던의 오늘을 만들다

영국이야기 40(최종회)대화재, 런던의 오늘을 만들다 이제 끝내야 할 때가 왔다. 영국이야기 마지막 회다. 내게 영국이야기는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영국에서 잠시 살면서 내가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정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이 글을 써왔다. 이건 어쩜 교수라는 직업에서 오는 약간의 강박관념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냥 놀아서는 안 된다는,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그래서 한 시도 쉬지 말고 써야 한다는 의식이 내게 있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나는 모든 게 귀하다. 내가 살아 있다는 것, 다른 세상에서 무엇인가를 보고 느낀다는 것, 우리가 이렇게 소통하고 있다는 것... 그 모든 게 귀하다. 시인 정현종이 말하는 '모든 게 꽃봉오리'인 것이다. 40회에 걸친 글은 ..

영국이야기39 인간이 만들어낸 위대한 성취

영국이야기 39 인간이 만들어낸 위대한 성취 -5개월간의 런던 공원 관찰 보고기- 런던을 알면 알수록 이 도시에 매료된다. 2천 년 역사의 긴 터널을 통과해 온 이 도시에 이방인인 내가 잠시라도 머물렀다는 것은 기쁨 중의 기쁨이다. 이 도시의 매력은 어디에서 왔을까? 길거리를 지나가는 런던 시민을 잠시 세운 다음 이런 질문을 해보자. “당신은 런던 시민으로서 런던의 무엇이 가장 좋습니까?” 이 질문에 런던러(Londoner)들은 무엇이라 답할까? 런던엔 자랑거리가 넘치니 사람마다 다른 답을 말할 지 모른다. 세계 최고의 박물관과 미술관? 아름답고 당당한 궁전? 고풍스런 건물과 현대식 건물이 조화를 이루는 템즈강변?.... 하지만 내 예상으론 십중팔구 런던을 제대로 아는 런던러라면 답은 정해져 있다. 그건..

영국이야기 38 튜더왕조를 그린 어느 외국인 화가

영국이야기 38튜더왕조를 그린 어느 외국인 화가 내가 이 사람에 대해 한 번 소개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영국에 와서 몇 몇 미술관을 돌고 나서다. 익히 아는 화가였지만, 외국인인 그가 이렇게 많은 영국인 초상화를 그린 줄은 몰랐다. 유럽의 절대왕정에서 궁정화가로 알려진 사람은 여럿 있지만 이 사람만큼 왕과 왕비, 왕자와 공주, 고관대작을 집중적으로 그린 사람은 흔치 않다. 아마도, 이 사람보다 꼭 100년 후에 활동하는 스페인의 궁정화가 벨라스케스 정도가, 이 사람과 비견되는 화가일 것으로 생각한다. 한스 홀바인 자화상(1542). 홀바인이 죽기 직전 그린 자화상이다. 이 사람이 바로 한스 홀바인(Hans Holbein the Younger, 1497-1543)이란 화가다. 홀바인을 제대로 소개하기 ..

영국이야기 37 한국인 디아스포라의 현장, 런던 뉴몰동

영국이야기 37 한국인 디아스포라의 현장, 런던 뉴몰동(New Maldong) 런던의 작은 한국 뉴몰동 런던에서 와서 한국 사람들을 만나보니 죄다 뉴몰동이란 곳을 다녀왔단다. 거기 가면 한국 사람들이 운영하는 음식점, 미장원, 수퍼마켓이 있어 고향의 향수를 달래기에는 그만이라는 것이다. 이런 곳을 런던에 온지 4달이 넘도록 가보질 못하다가 성탄절을 코앞에 두고 며칠 전 드디어 다녀왔다. 마침 이곳에서 사업을 하는 교민 한 분과 점심 약속을 했던지라 겸사겸사 가게 된 것이다. 뉴몰든 역, 런던 워털루 역에서 기차를 타면 20분 만에 이곳 역에 도착한다. 뉴 몰동(New Mal洞)이란 곳은 런던을 가로지르는 템즈 강 남서쪽에 있는 뉴 몰든(New Malden)을 말한다. 런던 워털루 역에서 기차를 타면 20..

영국이야기 36 Old is beautiful!

영국이야기 36 Old is Beautiful!-도시 건축으로 보는 선진국- 런던 거리를 활보하다보면 고색창연한 건물들이 많다. 궁전, 교회 같은 건물은 보통 수세기의 역사를 갖고 있는 게 보통이다. 일반 건물도 100년은 기본이고, 웬만하면 150년-200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런던시내의 리모델링 공사현장, 신축공사장인 줄 알고 가보았더니 건물 전체를 리모델링하고 있었다. 촘촘한 비계를 보면 이들의 공사방법이 얼마나 꼼꼼한 지를 알 수 있다. 좁은 공간에서 공사를 하기 때문에 현장 사무실도 저 비계 위에 설치되어 있다. 런던 시내 건물들은 대체로 그런 정도의 나이를 먹었지만, 보수에 보수를 거듭하고 있어, 앞으로도 얼마를 더 생존할지 가늠하기 어렵다. 내가 지난 몇 달 동안 런던 시내 이곳저곳을 누볐..

영국이야기 35 몰타 공방전, 그 격전의 현장을 가다

영국이야기 35 몰타공방전, 그 격전의 현장을 가다 몰타의 수도 발레타 몰타여행을 하기까지, 나의 여행은 답사여행이다 아주 오래 전부터 여행을 하고 싶은 데가 있었다. 몰타! 지중해 한 가운데 있는 섬나라다. 유럽에 자주 오고 한 동안 살아도 보았지만 쉽게 가질 못했다. 몇 년 전 스웨덴에 있을 때는 틈만 있으면 항공편을 알아보았지만 경유를 하는데다 경비도 만만치 않아 포기하고 말았다. 그 뒤 몇 년이 흘러 나는 다시 유럽에 왔고 그것도 유럽 내에서 항공편이 가장 좋다는 런던에서 살고 있다. 몰타 가는 직항편도 있고 예약만 적시에 하면 왕복 항공료가 10만원도 채 안 된다. 이 기회를 놓치면 후일 큰 후회를 할 것은 자명한 사실. 그래서 지난 여름 런던에 오자마자 표를 물색했고 일찌감치 표를 샀다. 그리..

영국이야기 34 자유의 공기를 마시고 사는 예술인들, 그들이 살린 거리

영국이야기 34 자유의 공기가 살린 거리-브리크 레인 거리를 거닐다- 브리크 레인의 그라피티 런던은 갈만한 곳이 참 많은 도시다. 도시가 생긴지 2천 년이 넘었고, 17세기 이후 200년 이상 세계 최강국이자 산업혁명을 일으킨 나라의 수도답게, 그 역사의 흔적은 여기저기에 남아 있다. 내겐 천금 같은 기회라 생각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부지런히 역사의 현장을 찾고 있으나, 귀국 전까지 몇 곳이나 가볼지 모르겠다. 오늘 이야기는 내가 사는 버러(Borough)인 Tower Hamlets의 한 거리에 관한 것이다. 그런데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이 버러라는 말 나아가 런던의 행정구역을 설명해야겠다. 런던을 처음 찾는 사람들은 시내 이곳저곳에서 시티 혹은 버러(borough)라는 표지를 발견할 때마다 그 의미..

영국이야기 33 런던대학 청강생 리포트 -샬롯 교수의 한국미술사 강의를 듣고-

영국이야기 33 런던대학 청강생 리포트-샬롯 교수의 한국미술사 강의를 듣고- 런던에 와서 경험하는 게 많지만 그 중에서도 대학교수로서 제일 인상 깊은 것은 아무래도 이곳 대학 강의다. 나는 지난 9월 말부터 런던대학 SOAS의 한국미술사 강의를 듣고 있다. 이 강의는 내가 런던에 오기 전 읽은 인하대 김영 교수(한문학, 10년 전 SOAS에서 방문학자로 있었음)의 책 '김영 교수의 영국문화기행'을 통해서 알게 되었는데, 그 책을 통해 판단하건대, 강의 내용, 강좌운영 모두 흥미로웠다.* 그래서 학교에 오자마자 이 강좌의 담당교수인 샬롯 홀릭 교수(현재 런던대학 SOAS 한국학연구소장)를 찾아가 한 학기 동안 청강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녀는 활짝 웃는 모습으로 단번에 말하길 Welcome! *영국에 오..

영국이야기 32 튜빙겐 대학에서 촛불혁명을 이야기하다

영국이야기 32 튜빙겐 대학에서 촛불혁명을 이야기하다 튜빙겐 구도심 한 가운데를 흐르는 네카르 강에서 본 튜빙겐 이틀 일정(11월 22일-24일)으로 독일 튜빙겐(독일 발음으론 튜빙엔) 대학을 다녀왔다. 튜빙겐 대학! 500년 이상의 역사(1477년 개교)를 지닌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 중 하나이자 신학, 의학, 인문학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학이다. 이 대학을 방문한 것은 그 대학 한국학과에서 특별강연을 해달라는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9월 페이스북 친구인 한국학과 안종철 교수로부터 메신저를 받았다. 영국에 있는 동안 튜빙겐을 방문해서 독일 학생들에게 특강을 해줄 수 있느냐고. 나는 크게 고민하지 않고 바로 "Sure!"라고 답신을 보냈다. 내가 튜빙겐을 방문하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