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인생/일반 13

북 콘서트 인사말 '기록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

북 콘서트 인사말‘기록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 박찬운입니다. 긴 겨울이 끝났습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춘래불사춘이란 말이 실감났습니다. 봄은 왔는데 봄같지 않았지요. 그런데 오늘은 완연한 봄날입니다. 여러분을 이곳에서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오늘 오신 분 들 중 많은 분들이 오프라인에서 저를 보는 것이 처음이지요? 어떻습니까? 예상했던 대로 인상이 괜찮습니까? (웃음) 우리는 그동안 전기만 꺼지면 신기루처럼 사라질 공간에서 만났습니다. 21세기가 만든 새로운 인연이었습니다. 이 인연은 혈육의 인연, 동창의 인연 등과 같이 우리의 육신이 만나 왔던 인연과는 다른 것입니다. 오로지 우리의 마음으로만 연결된 인연입니다. 몸이 연결되지 않으니 가벼울 수 있다는 단점이 있지만 때론 육신의 만남보다 더 순수..

'배움의 발견'(Educated), 교육이란 무엇인가?

오랜만에 책 한 권을 감동 깊게 읽었다. 타라 웨스트오버(Tara Westover)의 ’배움의 발견‘(Educated, 김희정 옮김). 얼마 전 둘째 딸과 대화 중에 소개받은 책인데, 2018년 출판되어 뉴욕타임지 최고 베스트셀러에 오른 것을 비롯해 40개국 이상으로 번역되어 수백만 부가 팔렸다고 한다. 16세까지 정규교육을 받지 못하고 17세가 되어서야 대입자격시험을 통해 대학에 들어간 뒤, 급기야 케임브리지 역사학 박사가 되었다는 미국 어느 깡촌 출신 여성의 입지전적인 이야기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듣자마자 책을 주문해 지난주부터 새벽 시간을 이용해 읽었는데, 진도를 나가지 못하다가 이번 주말을 이용해, 500쪽이 넘는 책 전체를 비교적 꼼꼼히 읽었다. 타라 웨스트오버. 1986년 생이니 올해 36세,..

궁극의 독서(신간 소개)

나의 7번 째 인문교양도서가 출간되었다. 그동안 읽은 책 중 기억하고 싶은 책을 정리한 것이다. 나는 평소 독서에 대하여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 “인생을 살면서 잘한 일을 꼽으라면 이것밖에는 없습니다. 여행과 함께 독서 말입니다. 여행과 독서는 다른 것 같지만 본질은 같습니다. 이 둘은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과정입니다. 결국 ‘책을 읽는 것’입니다.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고, 여행은 걸어 다니는 독서’입니다. 독서는 책상 앞에서 책을 통해 세상을 배워나가는 여행입니다. 여행은 몸을 움직이면서 독서를 통해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세상이라는 거대한 책을 읽는 것입니다. 제가 젊은 분들에게 권할 수 있는 것은 이 둘뿐입니다.”(서문) 코로나 19로 신음하는 작금의 상황에서 나는 왜 이런 책을 내놓았을..

수정같이 맑은 정신, 박홍규

수정같이 맑은 정신, 박홍규-고독한 독서인 박홍규와 작가 박지원의 대화, 를 읽고- 당신 얼굴에 나타난 것은 / 어떤 권력도 빼앗을 수 없는 것 / 어떤 폭탄도 산산조각으로 부수지 못할 / 수정같이 맑은 정신(조지 오웰이 스페인 시민전쟁의 무명용사를 노래한 시) 나는 보이지 않는 대담의 참여자학기가 끝나 성적처리를 한 다음 잠시 짬을 내 한 권의 책을 읽었다. 젊은 작가 박지원이 영남대 교수를 지내고 이제 부인과 함께 노후의 삶을 보내고 있는 박홍규 교수와 10여 차례 대담을 하고 엮은 라는 책이다.나는 지난 20여 년 동안 꽤 많이 박홍규 교수의 책을 읽었다. 그래 보았자 그가 쓰고 번역한 150여 권 중 3분의 1 정도에 불과하지만 그것들 중 상당수는 내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의 책은 고독한 나의..

눈물겨운 나의 폐강 이야기 ㅎㅎ -<90년생이 온다>를 읽고-

눈물겨운 나의 폐강 이야기 ㅎㅎ-를 읽고- 사실 몇 년 전부터 불안한 조짐이 보였지만 막연한 낙관론을 믿고 그냥그냥 넘겼다. 그러다가 지난 학기부터 사달이 나기 시작했다. 내 학부 교양과목에 학생들이 들어오지 않는 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자유의 인문적 사색’이라고 하는 이 교양과목은 내가 수 년 전 대학본부로부터 정부 지원금을 보조받고 만든, 한 마디로 나의 야심작이며, 우리 학교 명품교양 과목 중 하나다. 그런데 그게 설강 초기부터 고전을 면치 못하더니 급기야 폐강사태까지 간 것이다. 나로선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다른 어떤 과목보다 성의를 다했고, 그것 때문에 없는 시간 쪼개 글을 써, 교양서까지 한 권(자유란 무엇인가)을 출간했는데...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뭔가 내가 학생들의 ..

독서와 나이

독서와 나이 추석 연휴입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집중하던 논문 쓰기를 잠시 중지하고 책상 앞에 쌓아 놓은 책 중 한 권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최근 나온 알렉산더 해밀턴 전기입니다. 책 두께가 제 베개 보다 두껍습니다. 무려 1400쪽. 일주일 전부터 틈틈이 읽고 있는데 끝까지 읽으려면 며칠 더 걸릴 것 같습니다. 저 책을 다 읽으면 미국 초대 재무장관을 지낸 해밀턴뿐만 아니라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 대부분에 대해 새로운 이해를 할 수 있을 겁니다. 미국 건국 초기 역사를 한 손에 쥐게 되는 것이지요, 그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뿌듯합니다. 나이 먹어가면서 실감하는 게 있다면 기억력입니다. 하루가 다르게 기억력 감퇴를 느낍니다. 저 같은 사람은 사실 기억력이 가장 중요한 재산인데 요즘 영 자신이 없습니다. 책..

글은 넘치고 행동은 과소한 시대 -'서준식의 생각'을 넘기면서-

글은 넘치고 행동은 과소한 시대-'서준식의 생각'을 넘기면서- 갑자기 서준식이 생각난다. 그는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분명 이 땅의 어느 곳에서 변화무쌍한 대한민국을 바라보면서 깊은 시름을 하고 있을 텐데, 소식을 모르고 산지 십 수 년이 넘었다. 서준식? 이젠 많은 사람들 머릿속에서 희미한 기억으로만 남아 있을지도 모를 인권운동가. 그러나 내 기억 속엔 언제나 진실하고 신념에 가득 찬 사람으로, 입이 아닌 근육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절절히 보여준 사람으로 남아 있다. 잊혀져가는 그를 끌어내기 위해 이젠 그보다 더 유명해진 두 형제를 먼저 소개하자. 서준식의 형 서승. 한국에서 오랜 세월 동생 준식과 함께 비전향 장기수로 감옥 생활을 했다. 1990년 출옥해 일본으로 돌아가, 교토의 명문 ..

뒤 늦은 독후감 -손정목의 <서울도시계획이야기> 전 5권을 읽고-

뒤 늦은 독후감-손정목의 전 5권을 읽고- 너무나 늦게 읽은 책주말을 온전히 독서에 투자했다. 손정목(1928-2016) 선생의 전 5권. 우연히 알게 된 책인데, 읽으면서 줄곧 이런 엄청난 책을 어찌해서 이렇게 늦게 읽었는지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책이 나온 지 어느새 14년. 출판사는 나와도 특별히 관계가 깊은 도서출판 한울이다(나는 한울에서 지난 20년 동안 전공서만 5권 이상을 출판했다). 나는 유럽 도시 어딜 가도 그 도시의 역사를 알기 원한다. 작년 런던에서 반년을 지낼 때는 시내 이곳저곳을 발로 더듬으며 그곳의 역사를 알아보았고 그것을 글로 정리하기도 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정작 우리 것은 잘 알지 못한다. 은연 중 문화적 사대주의가 내 삶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부끄러운 일이다...

법률가는 무엇으로 사는가

[어머, 이런책이] 법률가는 무엇으로 사는가 -박찬운 지음 (스마트북스)를 읽고변호사 최용성 왜 ‘경계인’이라는 화두를 꺼내 든 것일까? 적어도 내가 아는 박찬운 교수는 결코 경계에 서서 살아온 사람이 아니다. 그는 변호사로서, 인권운동가로서, 인권법학자로서, 무엇보다 지성인으로서 누구보다 부조리한 현실에 맞서 이해관계가 아니라 가치에 맞게 경계를 넘어 선택하며 치열하게 살아온 사람이다. 사색만 하거나 아니면 행동만 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그런 그가 왜 갑자기 ‘경계인’을 자신의 책 제목으로 내걸었을까? 참으로 수수께끼가 아닐 수 없다. 책 머리말에 그 이유가 나오기는 한다. 그는 자신의 위치를 투사/연구자, 주류/비주류, 이상주의자/현실주의자라는 경계로 범주화하고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확실히 어..

<경계인을 넘어서>을 내면서

을 내면서 저의 다섯 번째 인문서 (스마트북스)가 나왔습니다. 이 책은 지난 2년간 이 공간에서 페친 여러분과의 교감 속에 써내려간 글들이 기초가 되었습니다. 저는 이 기간 많은 글을 썼습니다. 대충 세어보니 200자 원고지 기준 6천 장 정도입니다. 제가 평소에 하고 싶었던 말이 정말 많았던 모양입니다. 저는 이 책에서 나와 우리 그리고 대한민국에 대한 평소 생각을 거침없이 썼습니다. 그것은 저의 세상에 대한 소망인 자유, 평등, 정의 그리고 사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저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삶을 살고 싶습니다. 이런 삶이 우리 모두의 삶이 되었으면 하는 강한 바람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사랑하며 연대하는 삶, 그것이 저의 꿈입니다. 어떻게 사는 게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사는 길일까요. 곰곰이 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