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인생/법률 6

인권법 제3개정판

나의 전공서인 인권법 제3개정판이 출판되었다. 여기에 서문을 게시한다. ------ 인권법 제3개정판 서문 대한민국 인권법 30년 역사를 회고하며 인권법 제2개정판을 낸 지 8년이 지났다. 교과서란 성격을 갖고 출판했으니 이미 한참 전에 제3개정판이 나왔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독자들에게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변명을 하자면 개정판을 낼 짬을 내지 못했다. 그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고, 특별히 지난 3년(2020년 1월~2023년 2월)간은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차관급)으로 일하면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공무 외에 연구를 한다거나 글을 쓴다는 것이 사치스러울 정도였다. 이제 학교로 돌아와 책상 앞에 앉으니 비로소 내 본업으로 귀환했음을 느낀다. 마음을 가다듬고 연구자로서 할 일을 해야 할 때..

원님재판, 그것이 조선시대 재판의 실상이었을까?

며칠 동안 퇴근하면 만사 제치고 책을 읽었다. 숭실대 민사소송법 교수 임상혁이 쓴 와 . 법학자가 조선 중기 노비소송을 분석하면서 당시 법과 사회를 연구한 책이다. 아마 기존 사학자들이 이 책을 본다면 상당한 충격을 받을 것이다. 사학자들도 역사를 연구하면서 매우 사회적 파장이 큰 소송의 존재를 알았다면 어떻게든 그 의미를 역사로서 기술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수준은 사실관계와 그 파장 정도를 알리는 것에 국한되지 않을까. 그 소송의 내용을 현대의 법학으로 재해석하고 의미를 파악한다면 그 사건의 이해는 한층 깊어질 것이지만 그것은 법학 전문가가 아니라면 불가능하다. 현대법학으로 무장하고 역사를 추적해 사료를 발견해 해독할 수 있는 사람이 그런 역사적 기술의 적격자인데... 그 사람이 누구일까? 과문한 탓..

대한민국 법률가 역사에 정의는 있었는가 -김두식의 <법률가들>을 읽고-

대한민국 법률가 역사에 정의는 있었는가 -김두식의 을 읽고- 김두식, 또 하나의 문제작을 낳다와우! 이런 책이 나오다니.... 신간 소개기사를 보자마자 주문을 넣었더니 저녁 늦게 책이 도착했다. 첫 페이지를 읽는 순간 이 책의 진가를 단번에 알아 볼 수 있었다. 만시지탄! 어찌하여 이런 책이 오늘에야 나왔던가. 이 나라의 법률가들의 뿌리를 이해하는데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라면 두 말 할 것 없이 시간을 투자할만한 책이다. 2018년 겨울 문턱에 들어서면서 나온 문제작, 김두식 교수의 (창비)이다. 김두식은 이제 이 시대가 낳은 빼어난 문장가 중 하나라고 부를만하다. 그는 을 비롯해 몇 권의 책을 통해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오른 법률가 작가다. 특히 전작 은 특권의식으로 가득 찬 대한민국 법률가들을 이해하..

가인 김병로

가인 김병로는 누구인가-한인섭 를 읽고- 며칠 짬을 내 책 한 권을 읽었다. 아주 샅샅히 읽었다. 한인섭 교수가 쓴 . 900여 쪽에 가까운 대작이다. 저자가 오랜 기간 천착해 온 일제 강점기와 그 이후의 사법사(인권변호) 연구의 결정판이다. 방대한 내용을 주로 1차 자료에 의존하면서 독자적인 해석론으로 서술했다. 식민 시대의 항일운동, 그 중에서 가인 김병로를 포함한 애국지사의 활동에 대해서, 일반적 역사학적 관점에서 연구한 책은 적지 않지만, 그 운동과 인물을 오로지 ‘법’이란 앵글을 통해 분석한 법사학적 저술은 만나기 힘들다. 그런 의미에서 는 1910년대부터 1960년대 초까지를 다룬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사법사다. 3-4일 시간을 내 아주 철저히 읽었다. 마치 고시 공부하듯이. 개인적인 이야기를 ..

‘영혼의 운명’을 건 어느 변호사의 미국 대법원 판례 번역작업

‘영혼의 운명’을 건 어느 변호사의 미국 대법원 판례 번역작업 학문하는 자세에 관해서 말할 때 막스 베버의 말을 자주 인용합니다. 그는 이라는 소책자에서 학자가 갖추어야 할 내적 자질에 대해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일단 눈가리개를 하고서, 어느 고대 필사본의 한 구절을 옳게 판독해 내는 것에 자기 영혼의 운명이 달려 있다는 생각에 침잠할 능력이 없는 사람은 아예 학문을 단념하십시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우리가 학문의 체험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결코 자기 내면에서 경험하지 못할 것입니다.”(막스 베버(전성우 옮김), , 34쪽) 저는 이 구절을 읽으면서 전율합니다. 나는 과연 어떤 문제에 ‘내 영혼의 운명’을 걸면서 침잠해 본 적이 있었는가. 그 문제를 풀지 않으면 내 인생은 없다는 각오로 ..

블루 드레스

[관대한 복수! 남아공의 한 재판관... 그리고 대한민국의 재판관] 세상엔 수많은 책이 있지만 우린 그것을 다 읽지 못한다. 그 책들 중에서 꼭 읽어야 할 책을 읽는다는 것은 행운이다. 그것이 우리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기 때문이다.일요일 아침, 아무도 깨지 않을 시간에, 나는 조용히 일어나 독서를 한다. 얼마 전 사놓은 책 . 이 책은 나의 페친인 채형복 교수(경북대 로스쿨 국제법)가 얼마 전 포스팅한 것이었다. (나는 믿을만한 친구가 좋은 책을 소개하면 메모했다가 책을 사는 버릇이 있다.) 이 책은 남아공 출신으로 인종차별정책(아파르트헤이트)이 기승을 부릴 때 반인종차별주의의 투사로 살았고, 넬슨 만델라가 집권하자 초대 헌법재판관이 된 알비 삭스라는 재판관이 들려주는 남아공, 그 중에서도 헌법재판에 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