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인생 38

'라스트 세션' 우리 생애 최고의 지적 연극

오랜만에 대학로에 가 연극 한 편을 보았다. 라스트 세션. 미국 극작가 마크 세인트 저메인이 아맨드 M. 니콜라이의 저서 ‘루이스 vs 프로이트’에서 영감을 얻어 쓴 연극으로 2차 세계대전 당시를 배경으로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영문학자 C.S. 루이스가 신의 존재에 대해 논쟁을 벌인다는 상상에 기초한 2인극. 두 지성이 영국이 참전을 선언하는 1939년 9월 3일 런던의 프로이트 서재에서 만난다. 83세의 프로이트, 이제 갓 40의 루이스 40년 이상의 나이 차가 나지만 양보할 수 없는 한판 승부가 벌어진다. 2년 전 초연에는 신구, 남명렬이 프로이트 역을 이석준, 이상윤이 루이스 역을 맡았지만, 이번에는 신구, 오영수가 프로이트 역을, 전박찬, 이상윤이 루이스 역을 맡았다. 나는 최근 ‘오징..

잊힐 수 없는 폭풍의 화가 변시지

잊힐 수 없는 폭풍의 화가 변시지 변시지(1926-2013) 성수동 공장에서 전시가 있다? 40년 이상 이 주변과 인연을 맺어온 나로서는 믿기지가 않는다. 그 황량한 곳의 공장을 개조해 전시장으로 만들었다니 어떤 모습일까? 그곳에서 20세기 대한민국 최고의 화가의 그림을 친견한다고 하니 왠지 미안하다. 내가 보기엔 삼청동 국립현대미술관(서울분관)이나 덕수궁 현대미술관도 이 거장의 그림을 건다는 것이 영광일 텐데, 어인 일로 공장 한 가운데에 그림을 건다는 말인가. 그것도 무슨 연유인지 전시기간이 고작 5일(10.3-10.7). 이건 거장에 대한 예우가 아니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며 전시 마지막 날 부지런히 발걸음을 재촉했다. 성수동 에스 팩토리 도착해 보니 전시공간 주변은 아직도 공장지대이고 여기저기에..

절대적 미에서 마음의 정화를

절대적 미에서 마음의 정화를 국보 제83호 반가사유상 한국 불교미술 최고봉 중 하나는 국보 제83호 반가사유상이다. 나는 같은 반가사유상이면서 국보인 제78호(이것은 내년 전시될 것임) 보다 이것을 훨씬 더 좋아한다. 언제 보아도 보는 이의 마음을 정화시켜 주는 신통력이 있기 때문이다. 일주일 전 용산중앙박물관에 갔을 때 3층 전시장에서 이 불상을 친견했다(나는 용산박물관에 갈 때마다 이 불상을 찾는다) 그런데 한 가지 불만은 이 최고의 국보를 대하는 우리들의 태도다. 외국 같으면 이 정도 국보라면 주변 경계가 매우 삼엄하다. 베를린 이집트 박물관에 있는 네페르티티 상 주변엔 경비원 3-4명이 서성거리며 사진 한 장도 못 찍게 한다. 이곳 용산박물관? 경비원도 없고 사진도 자유롭게 찍을 수 있다. 다른 ..

인문명화산책 16 나는 르네상스인인가? 중세인인가?

인문명화산책 제16화 나는 르네상스인인가? 중세인인가? -'개인의 발견'이 뜻하는 것- 알브레히트 뒤러, , 1500 우리사회는 인간의 존엄성을 아는가? 나는 우리사회를 볼 때마다 '인간 존엄성'이란 그저 구호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한 나라의 헌법은 최고법으로 한 국가 공동체의 최고의 약속이다. 대한민국 헌법도 마찬가지다. 그 헌법엔 국민의 기본권을 규정하면서 그 첫 조항(제10조)으로 이런 조문을 두고 있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이 조항은 모든 헌법상의 기본권 규정의 맏형 노릇을 할뿐만 아니라 헌법해석에서 가장 중요한 원리로 사용되는 규정이다. '우리..

몰카에 대한 기억

금지의 유혹, 몰카에 대한 기억 우리에게 자유가 제한될 때 그 때 우리는 어떤 행동을 취하는가. 그저 말없이 그 제한에 순응하는가, 아니면 어떻게 해서라도 그 제한에 도전하는가. 나는 그 행동이 특별히 범죄적이거나 다른 사람에게 큰 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그 제한에 무조건 순응하는 것은 자유인답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자유가 통제될 때 둘 중 하나를 선택한다. 하나는 순응, 다른 하나는 저항이다. 자유에 대한 통제가 힘과 권위에 의해 비롯되면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포기하고 순응한다. 그러나 의외로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 그들은 통제자의 눈을 피해 그 자유를 누리기도 하고, 때론 그 통제에 몸으로 저항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보자. 누군가(학교)가 머리 기르는 것을 금지했다고 하자. '모든 학생(남..

백제관음상과 밀로의 비너스가 만나다

백제관음상과 밀로의 비너스가 만나다 일본 호류사의 루브르 박물관의 일요일 밤이다. 이 밤이 가면 분주한 한 주가 시작된다. 글을 쓰면서 사진첩을 뒤적이다 여러 해 전 찍은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자세히 보니 찍은 날이 2006년 7월 15일, 꼬박 10년 전 사진이다. 일본 나라 호류사의 사진이다. 생각해보니 이 사진을 찍는 데 약간의 에피소드가 있었다. 이 불상이 모셔진 호류사 백제관음당은 사진촬영이 엄격히 금지된 곳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 삼엄한 경비를 뚫고 이 사진을 찍었다. 당일 내가 이 사진 하나를 찍는 데 얼마나 가슴이 두근거렸는지 모른다. 백제관음당 최고의 보물인 이 불상 근처엔 항시 경비원들이 어슬렁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불상 주변에서 기다리면서 경비의 헛점을 찾았다. 경비원이 움..

인문명화산책 15 캄비세스 왕이 대한민국에 온다면...

인문명화산책 15 캄비세스 왕이 대한민국에 온다면... 제라드 다비드, , 1498년, 목판에 유화, 브뤼헤 시립미술관 소장 사법살인으로 기록된 오판의 사법사며칠 전 법조 선배이신 한승헌 변호사님이 쓰신 를 읽으면서 이 대목에서 한참 눈을 감고 생각했다. “권력의 이익과 눈치에 부응하여 신성한 재판을 그르친 사법부는 그 부끄러운 과오를 통렬히 참회해야 마땅하다. 나아가 이 나라의 사법부가 위정자 내지 사회지배세력의 입김에 휘둘려 민주사법의 본질을 소홀히 하는 그 어떤 오류도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책머리에) 해방 이후 우리 사법부엔 과가 많다. 정의의 관념에 비추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판결이 선고되었다. 조작사건으로 판명되었지만 박정희 정권 하에서 일어났던 인혁당 사건에선 대법원 확정판결이 있고나..

인문명화산책 14 역사의 진실을 가릴 순 없습니다

인문명화산책 14 역사의 진실을 가릴 순 없습니다-테오도로 제리코의 ‘메두사의 뗏목’- 테오도르 제리코, '메두사호의 뗏목' 1819년, 루브르 박물관 소장 데자뷔(déjà vu)라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 심리학적 용어가 언젠가부터 심심치 않게 지상(紙上)에서 보인다. 굳이 번역하면 기시감(己視感)이란 뜻이니, 처음 보는 것 같지만 어디선가 이미 본 것처럼 느끼는 정신현상을 말한다. 이 말이 일상용어가 된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들의 뇌리 속에 남는 유사한 대형사건이 우리사회에서 반복해 일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작년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림공부를 좀 한 사람들이라면 데자뷔를 경험했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저 사건 어디서 본 듯한데... 그게 무엇일까” 미술사에서 세월호의 데자뷔? 그게 무엇일까?오늘..

인문명화산책 13 ‘그림 읽는 법’에 관하여

인문명화산책 13‘그림 읽는 법’에 대하여-건우가 묻고 박교수가 답하다- 명색이 법률가라는 사람이 법률이야기를 하지 않은 지 오랩니다.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것 같습니다. 저 사람 뭐하는 사람이냐고요. 그래서 오늘은 제 본업과 관련된 글을 하나 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법’이야기입니다. 무슨 법이냐고요? ‘그림 읽는 법’입니다. ...허허! 좀 썰렁했습니까? 오늘 이야기는 좀 색다르게 하고 싶네요. 법 이야기란 게 대개 재미가 없잖습니까. 그래서 여러분이 그림 볼 때 도움이 될 수 있는 그림독법에 대해 제 제자와 이야기하듯 써보겠습니다. 제 사랑하는 제자 건우를 소개하지요. 건우는 학부생으로 예술에 조예가 깊은 친구입니다. 이제부터 건우가 묻고 박교수가 답하겠습니다. 그림감상은 화가와 대화하는 것건우: 선..

인문명화산책 12 인간의 본능을 그린 화가, 그가 만든 20 세기

인문명화산책 12 인간의 본능을 그린 화가, 그가 만든 20 세기-구스타프 클림트 이야기- 구스타프 클림트, '키스', 1907-08, 클림트의 대표작이다. 직사각형 문양은 남자의 정자, 타원형과 꽃 문양은 여자의 생식력 상징한다. 두 남녀는 완전히 밀착되어 거의 융합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지난 20여 년간 꽤 많이 유럽 이곳저곳을 돌아보았다. 스웨덴에선 1년간 체류하면서 그곳 사회를 속속 보려고 노력했다. 그 관찰 속에서 우리와 그들의 중요한 차이를 발견하였는데 그 중 가장 인상 깊은 것은 ‘인간 본능’에 관한 것이었다. 인간본능을 보는 시각과 그것을 다루는 방법은 우리와 그들 사이에선 거의 한 세기 정도의 차이가 있음을 느꼈다. 오늘 내가 이야기하는 인간본능이란 인간의 성적 욕구에 관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