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인생/기타 13

'라스트 세션' 우리 생애 최고의 지적 연극

오랜만에 대학로에 가 연극 한 편을 보았다. 라스트 세션. 미국 극작가 마크 세인트 저메인이 아맨드 M. 니콜라이의 저서 ‘루이스 vs 프로이트’에서 영감을 얻어 쓴 연극으로 2차 세계대전 당시를 배경으로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영문학자 C.S. 루이스가 신의 존재에 대해 논쟁을 벌인다는 상상에 기초한 2인극. 두 지성이 영국이 참전을 선언하는 1939년 9월 3일 런던의 프로이트 서재에서 만난다. 83세의 프로이트, 이제 갓 40의 루이스 40년 이상의 나이 차가 나지만 양보할 수 없는 한판 승부가 벌어진다. 2년 전 초연에는 신구, 남명렬이 프로이트 역을 이석준, 이상윤이 루이스 역을 맡았지만, 이번에는 신구, 오영수가 프로이트 역을, 전박찬, 이상윤이 루이스 역을 맡았다. 나는 최근 ‘오징..

잊힐 수 없는 폭풍의 화가 변시지

잊힐 수 없는 폭풍의 화가 변시지 변시지(1926-2013) 성수동 공장에서 전시가 있다? 40년 이상 이 주변과 인연을 맺어온 나로서는 믿기지가 않는다. 그 황량한 곳의 공장을 개조해 전시장으로 만들었다니 어떤 모습일까? 그곳에서 20세기 대한민국 최고의 화가의 그림을 친견한다고 하니 왠지 미안하다. 내가 보기엔 삼청동 국립현대미술관(서울분관)이나 덕수궁 현대미술관도 이 거장의 그림을 건다는 것이 영광일 텐데, 어인 일로 공장 한 가운데에 그림을 건다는 말인가. 그것도 무슨 연유인지 전시기간이 고작 5일(10.3-10.7). 이건 거장에 대한 예우가 아니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며 전시 마지막 날 부지런히 발걸음을 재촉했다. 성수동 에스 팩토리 도착해 보니 전시공간 주변은 아직도 공장지대이고 여기저기에..

절대적 미에서 마음의 정화를

절대적 미에서 마음의 정화를 국보 제83호 반가사유상 한국 불교미술 최고봉 중 하나는 국보 제83호 반가사유상이다. 나는 같은 반가사유상이면서 국보인 제78호(이것은 내년 전시될 것임) 보다 이것을 훨씬 더 좋아한다. 언제 보아도 보는 이의 마음을 정화시켜 주는 신통력이 있기 때문이다. 일주일 전 용산중앙박물관에 갔을 때 3층 전시장에서 이 불상을 친견했다(나는 용산박물관에 갈 때마다 이 불상을 찾는다) 그런데 한 가지 불만은 이 최고의 국보를 대하는 우리들의 태도다. 외국 같으면 이 정도 국보라면 주변 경계가 매우 삼엄하다. 베를린 이집트 박물관에 있는 네페르티티 상 주변엔 경비원 3-4명이 서성거리며 사진 한 장도 못 찍게 한다. 이곳 용산박물관? 경비원도 없고 사진도 자유롭게 찍을 수 있다. 다른 ..

몰카에 대한 기억

금지의 유혹, 몰카에 대한 기억 우리에게 자유가 제한될 때 그 때 우리는 어떤 행동을 취하는가. 그저 말없이 그 제한에 순응하는가, 아니면 어떻게 해서라도 그 제한에 도전하는가. 나는 그 행동이 특별히 범죄적이거나 다른 사람에게 큰 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그 제한에 무조건 순응하는 것은 자유인답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자유가 통제될 때 둘 중 하나를 선택한다. 하나는 순응, 다른 하나는 저항이다. 자유에 대한 통제가 힘과 권위에 의해 비롯되면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포기하고 순응한다. 그러나 의외로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 그들은 통제자의 눈을 피해 그 자유를 누리기도 하고, 때론 그 통제에 몸으로 저항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보자. 누군가(학교)가 머리 기르는 것을 금지했다고 하자. '모든 학생(남..

백제관음상과 밀로의 비너스가 만나다

백제관음상과 밀로의 비너스가 만나다 일본 호류사의 루브르 박물관의 일요일 밤이다. 이 밤이 가면 분주한 한 주가 시작된다. 글을 쓰면서 사진첩을 뒤적이다 여러 해 전 찍은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자세히 보니 찍은 날이 2006년 7월 15일, 꼬박 10년 전 사진이다. 일본 나라 호류사의 사진이다. 생각해보니 이 사진을 찍는 데 약간의 에피소드가 있었다. 이 불상이 모셔진 호류사 백제관음당은 사진촬영이 엄격히 금지된 곳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 삼엄한 경비를 뚫고 이 사진을 찍었다. 당일 내가 이 사진 하나를 찍는 데 얼마나 가슴이 두근거렸는지 모른다. 백제관음당 최고의 보물인 이 불상 근처엔 항시 경비원들이 어슬렁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불상 주변에서 기다리면서 경비의 헛점을 찾았다. 경비원이 움..

2천 년 시공을 뛰어 넘은 예술감각

2천 년 시공을 뛰어 넘은 예술감각 (Dancing Jugglers), BC 100년경, 서한시대, 위난성 장촨 리쟈산 출토, 높이 12센티미터, 1956년 출토 저 사진 상의 청동 조각품이 언제 적 작품일까요? 편견을 갖지 말고 말해 보십시오. 낡고 빛이 바랬기 때문에 막연히 옛날 것인가 할지 모릅니다. 그런데 만일 저 청동상의 금도금이 떨어져 나가지 않고 고스란히 남아 있어 번쩍번쩍 광채를 발하고 있다고 해도 그렇게 생각할 겁니까? 아마도 그 때는 근현대의 어느 최고수준의 조각가가 만든 걸작 예술품이라고 말하지 않을까요?놀라지 마십시오. 저게 지금으로부터 대충 2,000여 년 전 중국 서한시대의 청동 조각상입니다. 제가 저 조각상을 처음 본 것은 제 페친인 심재훈 교수(단국대 사학과)가 번역한 리쉐친..

사진으로 읽는 인문학--근대의 합리적 이성이 위치한 곳?

사진으로 읽는 인문학--근대의 합리적 이성이 위치한 곳?--학문하는 자여, 종교에 함몰되지 말지니라, 정치에 함몰되지 말지니라 나는 1년 동안 스웨덴에서 연구년을 보냈다. 가족 없이 혼자서 말이다.작년 5월의 일이다. 스톡홀름에서 세미나가 있어 참석했다가 오는 길에 웁살라 대학을 들렀다. 웁살라 대학 박물관, 과거엔 학교 본관이었다. 맨 꼭대기 쿠폴라가 보인다. 이 대학은 1477년 설립된 스칸디나비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으로서 그 학문적 수준은 이미 오래 전에 세계적 대학의 반열에 들어갔다고 평가되는 곳이다. 그런 이유로 내가 스웨덴에서 체류하는 동안 한번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생물 분류법으로 잘 알려진 식물학의 대가 칼 린네가 지금으로부터 250여 년 전 바로 이곳에서 교수로 일했다. 이곳을 방..

대충주의, 결코 한국인의 DNA가 아니다

상가에서 귀한 분을 만났다. 이성낙 선생. 이 분은 독일에서 공부하여 의학박사가 되었고, 이후 귀국하여 한국의 유명 의과대학의 교수로 일하다가 가천의대 총장으로 은퇴하신 우리나라 최고의 피부과 의사 중 한 분이다.그런데 내겐 피부과 의사로서가 아니라 우리 고미술과 관련하여 각인된 분이다. 나는 이분을 오주석이 쓴 를 읽다가 알게 되었다.오주석이 조선 후기 초상화 과 이 사실 두 사람이 아닌 한 사람 이채를 그린 초상화라고 말할 때, 그것을 피부과적으로 감정한 분이 바로 이성낙 선생이다.백문이불여일견! 초상화 「전 이재초상」과 「이채초상」을 보자. 둘 다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면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전 이재초상」은 조선 숙종 때의 학자인 이재의 초상화로 알려진 작품이다.그렇지만 그림 어디에도 이재의 초상..

우리는 아직 야생에 산다

우리는 아직 야생에 산다진화론을 철저하게 믿는 사람들은 시간이 가면 인간이 진화하는 것으로 안다. 그렇다면 인간이 진화하는 데는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까? 인간이 가진 감정, 특히 예술적 감정도 몇 천 년 시간이 가면 진화적 관점에서 상당히 달라질까?과연 그럴까?몇 년 전 아테네 국립고고학박물관에 갔을 때의 일이다.거기 제1관의 문을 열자마자 나타난 4천여 년 전의 조각품. 우리가 크레타 문명이라고 말하는 에게해 섬에서 발견된 조각품이 전시되어 있었다.그 조각품들을 보는 순간 나는 경악을 했다.내가 4천년 전의 조각품 전시실에 간 것이 아니라, 혹시 20세기 추상조각 전시실에 들어온 것은 아닌가?세부적인 표사를 생략한 채 사람들의 모습을 조각한 작품들, 그것은 그 당시 사람들의 미적감각이 이미 추상적 수준..

추억의 사진-칼레의 시민

오늘 사진은 로댕의 이다.일본 동경 우에노 공원에 있는 국립서양미술관 입구에서 찍은 것이다.로댕, 누구나 아는 프랑스가 나은 최고의 조각가다. 로댕의 대표작 두 개만 들라면 하나가 , 또 하나가 일 것이다.칼레는 도버해협 근처의 프랑스 도시다. 칼레는 14세기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백년 전쟁이 일어났을 때 영국의 공격을 받았다. 당시 영국은 단기간 내로 칼레를 함락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아무리 공격을 해도 이 조그만 도시는 무너지지 않고 집요하게 항거했다. 결국 이 도시는 함락되었지만 영국왕의 분노는 극에 달해 시민을 다 죽이기로 했다. 다만 시민을 대신하여 죽겠다는 사람 6인만 나타나면 도시를 살린다고 했다.그때 이 도시의 변호사 등 명망가들이 목에 밧줄을 감고 죽기를 자원한다. 그래서 칼레는 파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