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정/지혜

눈부신 변화 속에 사는 우리들

박찬운 교수 2018. 10. 12. 14:03

눈부신 변화 속에 사는 우리들


1993년 삼성에서 출시한 그린 컴퓨터


아침에 일어나니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난다. 시답지 않은 이야기일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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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엄청난 변화 속에 산다. 컴퓨터 하나만 예를 들자. 내가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변호사가 될 무렵만 해도 사무실에서 컴퓨터를 구경할 수 없었다. 그 때는 변호사가 육필로 초고를 작성하면 사무원이 그것을 보고 타자를 쳐 문서를 작성하던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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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컴퓨터로 문서작성 하는 것을 눈으로 본 것은 1986년 1월 경 서울민사지방법원 판사실에서였다. 나는 당시 사법연수생으로서 법원 시보를 하고 있었는데, 잠시 배치된 곳이 단독판사실이었다. 두 명의 단독판사가 쓰는 방 귀퉁이에 책상 하나를 받아 숨죽이며 시보생활을 하던 시절이다. 그 방에서 만난 뛰어난 젊은 판사 한 분이 후일 헤이그 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ICTY) 재판관을 지낸 권오곤(O-Gon Kwon )판사(현재 한국법학원장)다. 권판사가 당시 사무실에 개인 컴퓨터를 가지고 있었는데, 솔직히 나로선 그 구체적 용도를 잘 몰랐다. 그저 좀 발전된 전동 타자기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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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대법원에서 사무감사가 나왔는데, 대법관 한 분이 판사실을 순시했다. 박우동 대법관이었다. 박대법관이 우리 방에 들어 와, 권판사 컴퓨터를 보더니, 대뜸 이게 뭐하는 데 사용하는 것이냐고 물었다. 권판사는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시연에 들어갔다. 간단한 판결문 하나를 만들어 보겠다고 하면서, 이미 만들어 놓은 양식에 따라 불과 1-2분 사이에 판결문 하나를 뚝딱 작성하는 것이었다. 박대법관과 따라온 수행원들이 그것을 보면서 얼마나 놀라는지 지금도 그 장면이 눈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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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런 에피소드는 몇 몇 앞서가는 법조인들 사이에서나 볼 수 있는 희귀한 사례였고, 내가 처음 변호사가 되었을 때인 1990년만 해도 사무실은 여전히 타자기 시대였다. 두 해 정도 그렇게 일을 하다가 1992년 경 사무실에 286 컴퓨터가 들어왔다. 컴퓨터를 살 때 평소 이 분야를 잘 아는 선배가 조언을 했다. “자고로 변호사 사무실 컴퓨터는 저장용량이 커야 한다. 좀 무릴 해서라도 하드용량은 큰 것을 사는 게 좋다. 50메가 정도는 돼야 좋네.” 나는 그 선배 말대로 대용량 50메가(!) 짜리 컴퓨터를 구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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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음 나도 타이핑을 직접 하기 시작했지만. 당시는 컴퓨터 운영체제가 도스 시절이라 컴퓨터 사용이 지금처럼 쉽지 않았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컴퓨터를 배울 생각으로 수소문 끝에 전자공학과 학생을 소개 받아 그로부터 과외를 받고 나서야 컴퓨터가 눈에 들어왔다. 그 덕에 1995년경엔 노트북을 사서 혼자 이런 저런 작업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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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면서 이 메일을 처음 배웠다. 유학기간 중엔 넷스케이프를 구동해 인터넷을 시작했지만 속도가 느려서 한국 소식을 제대로 접하긴 어려웠다. 그 때까지도 주된 뉴스는 종이 신문을 통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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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오니 세상이 정말 빨리 돌아가기 시작했다. 컴퓨터는 286에서 386, 486, 586으로, 운영체제는 도스에서 윈도우로 바뀌었고, 속도와 기억용량은 과거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그 이후는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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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 연구실 컴퓨터는 작년에 교체했는데, 기억용량만 2테라바이트다. 1992년 286 컴퓨터의 기억용량과 비교하면 4만 배다. 26년 전엔 상상할 수 없는 변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