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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 단상 -놀지 못한 인생-

박찬운 교수 2018. 5. 24. 15:14

캠퍼스 단상
-놀지 못한 인생-

 

 

 

지하철에서 나와 연구실로 오는 중 사방을 살펴보니 올해 축제는 유난히 화려합니다. 오늘 캠퍼스는 하루 종일 학생들 행사로 시끌벅적 할 것 같습니다. 밤엔 유명 연예인도 불러 한 바탕 놀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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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수업 시간엔 이런 덕담을 했습니다. “이제 축제 기간이지. 긴장 풀고 마음껏 놀아 봐라. 얼마나 좋은 시절이니, 꽃다운 청춘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단다. 친구들과 밤을 새워 술도 마시고 노래도 부르고 춤을 춰라. 내 수업만 아니라면 수업 빼먹어도 누가 뭐라 하겠니.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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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이렇게 했지만 마음 한 켠이 조금 아려옵니다. 나는 이 나이가 되도록 저렇게 놀아본 적이 있는가. 생각해 보니 한 게 없습니다. 연구실로 들어오는 발걸음이 가볍지만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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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페친 들이 즐기는 골프를 대한민국 땅에서 쳐본 적이 없습니다. 20년 전 미국에서 잠시 있을 때, 대여섯 번 대학 구내에 있는 9홀 골프장에 가서, 마치 장작 패듯 클럽을 휘둘러 본 적이 있을 뿐입니다. 골프 안치는 이유에 대해선, 언젠가 이곳에 ‘내가 골프를 안치는 이유에 대하여’라고 거창한 변명을 해 본 적이 있지만, 그게 얼마나 공감을 받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이렇다 하는 사람들은 골프장에서 대사를 도모한다고 하던데... 아마 제가 큰일을 하지 못한다면 혹시 그런 사교성이 없어서가 아닐까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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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작이나 카드놀이를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제 정도 연배의 법률가들 사이에선 젊은 시절 아주 흔한 오락이 마작이나 포커 놀이였습니다. 동기생들은 연수원 시절 혹은 군 장교 시절 이런 놀이를 무시로 즐겼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데에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동기생들은 이런 모임을 통해 끈끈한 정을 나누고 미래를 도모했을 텐데... 나는 그 시간 무엇을 했는지 이젠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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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클럽, 요즘 젊은 사람들은 클럽이라고 하겠군요. 그런 곳에 출입해 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물론 20대 시절엔 몇 차례 이태원 나이트클럽에 가서, 스테이지에 올라가 통나무 같은 몸을 억지로 놀려, 주변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한 적이야 있지요. 그렇지만 그것도 이내 재미를 느끼지 못해 그만 두고 말았습니다. 뭐 제가 수도사처럼 살고자 결심했던 것도 아닌데... 주변머리 없는 사람이라고 말해도 꼼짝없이 그렇다고 자백할 수밖에 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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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런 것들 하지 못한 대신 남들이 하지 못한(않는) 일들을 해온 것은 사실입니다. 골프대신 많이 걸었고, 마작이나 카드놀이 대신 여기저기를 떠돌아 다녔고, 유흥을 즐기는 대신 혼자 침잠하는 생활을 즐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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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캠퍼스의 화려한 축제를 보니, 팔팔한 청춘들의 함성을 들으니, 약간 우울하고 쓸쓸합니다. 아, 이생에선 하지 못하는 게 많구나! 다음 생이 주어진다면, 그 때 골프도 치고, 마작도 하고, 나이트에도 가서 몸을 흔들어볼까? 꿈도 아닌 꿈을 꾸며 연구실로 들어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