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인생/미국남부

미국의 땅끝마을에서 헤밍웨이를 만나다 -미국 최남단 섬 키 웨스트를 가다-

박찬운 교수 2018. 1. 11. 02:15

미국의 땅끝마을에서 헤밍웨이를 만나다

-미국 최남단 섬 키 웨스트를 가다-

 

키 웨스트는 마이애미에서 1번을 타고 끝까지 가면 도착하는 미국 최남단 섬이다.

 

미국이란 곳은 넓습니다. 가도 가도 끝이 없습니다. 텍사스 주 같이 큰 주를 자동차로 달리다 보면 그 광대함에 주눅이 들 정도입니다. 일 개 주가 한반도의 3배나 된다니 그 크기를 짐작하겠지요. 저는 미국 남부 이곳저곳을 지난 두 주 동안 자동차로 누볐습니다. 돌아본 곳을 전부 소개할 수 없어 아쉽습니다만, 오늘은 그 중에서 제 머릿속에 강한 인상을 남긴 한 곳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플로리다 반도의 남단에 위치한 키 웨스트(Key West)란 섬입니다.

 

키 웨스트, 조그만 구능조차 없는 평지다. 사진 위키피디아


며칠 전 플로리다를 북에서 남으로 달려 반도의 남쪽 도시 마이애미에 도착했습니다. 미국 사람의 겨울 휴양지로 알려진 이곳을 아직 가보지 못했거든요. 올핸 북미지역이 극심한 추위로 모든 게 꽁꽁 얼어붙었습니다. 영하 20도 심지어는 30도까지 내려갔습니다. 미국에서 제일 따뜻하다고 하는 플로리다도 그 영향으로 예년보단 춥습니다. 그럼에도 마이애미는 확실히 다릅니다. 제가 도착한 16일 오후 기온이 15도, 그 다음 날은 17-8도 정도였으니까요.

 

키 웨스트의 해변가


마이애미 여행의 절정은 역시 키 웨스트. 과거부터 미국에 가면 꼭 이곳을 가보고 싶었습니다. 여기가 바로 북미대륙 최남단. 우리말로 하면 미국의 땅끝마을, The Southernmost Point가 있는 곳이거든요. 더욱 이 섬은 20세기 미국의 문호 어네스트 헤밍웨이가 10여 년 간 살면서(1931-1939) 바다와 노인의 모티브를 만들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이런 것만 볼 수 있어도 이번 여행의 가치는 있는 게 아닐까요.

 

키 웨스트의 최남단 표시, 이곳에서 쿠바까지 90마일이라고 써 있다. 사진 위키피디아


18일 아침 일찍 마이애미를 떠나 키 웨스트로 향했습니다. 그곳에 가기 위해선 마이애미 도심에서 약 300킬로미터 달려야 합니다. 미국 고속도로의 정상속도로 간다면 이 정도의 거리는 3시간이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지만, 이곳까지 가는 길은 그렇게 달릴 수 없습니다


도심에서 네비게이션이 GPS를 제대로 잡지 못해, 도로상에서 한 30분 헤매다가 간신히 플로리다 1번 도로로 접어 들었습니다. 키 웨스트는 그냥 1번 도로만 타고 남쪽으로 내려가면 되니, 이 때부터는 네비게이션도 필요 없습니다. 그런데 본격적으로 1번에 들어서자 길은 폭이 좁아져 1차선 도로로 바뀝니다. 속력을 낼 수가 없습니다. 제한속도 45마일, 거기에다 앞 차 중 저속으로 달리는 트럭이라도 만나면 시간은 마냥 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최남단 표시 기념물 근처 비치


키 웨스트는 마이애미 앞 바다에 펼쳐진 수 십 개의 섬(군도) 중 하나로 그 최남단에 위치합니다. 1번 도로는 이 섬들을 모두 연육교로 연결해 놓고 있지요. 연육교 중엔 세계 최장 다리라고 하는 '7마일 대교'가 있습니다. 키 웨스트를 가다보면 이 다리를 건너게 됩니다.

 

신기한 것은 키 웨스트를 포함한 이곳 군도의 지형입니다. 우리의 섬 모양과는 전혀 다릅니다. 산호초로 이루어진 섬이라 그런지 해면과의 표고 차를 거의 느낄 수가 없습니다. 그저 바닷물 위로 살짝 드러낸 육지라고나 할까요. 그러니까 거대한 허리케인이 들이닥치면 섬들은 속절없이 물에 잠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허리케인이 상륙하기 전에 경보에 따라 육지로 소개되는 것이 일상이라고 합니다. 바닷가 근처 집들은 1층을 기둥으로만 지탱하는 필로티 공법을 사용했는데, 집이 자주 침수하기 때문에 그렇게 지었을 겁니다.

 

키 웨스트의 중앙통이라고 할 수 있는 두발 거리


운 좋게도 평일이라 도로는 크게 막히지 않아 마이애미를 떠난 지 4시간이 안 돼 목적지인 키 웨스트에 도착했습니다. 차 밖으로 나가니 훈풍이 불어옵니다. 기온은 20도가 넘습니다. 긴팔 재킷이 거추장스럽기까지 한 느낌입니다. 이곳을 찾은 관광객은 모두 반팔에 반바지를 입고 다니고 있더군요. 북위 24도 최남단 섬답습니다.

 

차를 섬 중앙도로 격인 두발 가(Duval St.)에 주차하고 우선 찾은 곳은 The Southernmost Point입니다. 빨리 미국의 남쪽 땅끝을 보고 싶었습니다. 두발 가에서 5분 쯤 걸어가니 표지 기념물이 보입니다. 역시 많은 관광객들이 모여 있더군요. 기념사진을 기념물 앞에서 찍기 위해 줄을 섰습니다. 앞 사람이 기념물 앞에 서면 뒷사람이 찍어주는 게 에티켓인 모양입니다. 옆에선 센 파도가 기념물까지 들이 닥칩니다. 자칫 잘못하면 사진 찍다가 바닷물을 뒤집어 쓸 판입니다. 그 바람에 저도 옷을 적시고 말았습니다.

 

최남단 표시 기념물에서 한 장 찰칵!


몇 년 전 포르투갈을 갔을 때 그곳 호카곶이라는 곳을 간 적이 있습니다. 유럽대륙의 최서단이란 곳이지요. 기념비가 서 있는 곳에서 사진을 찍은 게 기억이 납니다. 그곳 낭떠러지에서 바라다 본 대서양! 그 너머에 아메리카가 있겠지요. 이제 몇 년이 지난 오늘, 저는 미국 최남단에서 멀리 카리브해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곧장 배를 몰고 140킬로미터 앞으로 가면 바로 쿠바에 닿습니다. 날이 아주 좋은 날엔 이곳에서 쿠바가 보인다고 하는 데, 하늘에 구름이 끼어서 그런지, 제 눈엔 쿠바가 보이진 않습니다. 그러고 보니 마이에미에 쿠바 사람들이 많은 이유를 알겠습니다. 쿠바 공산화 이후 수많은 쿠바인들이 쪽배에 의존해 플로리다로 향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지리적 이유에서였습니다. 그 수가 얼마나 많은 지 마이애미 공항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엔 리틀 하바나라는 곳이 있을 정도이지요.

 

점심을 먹고 헤밍웨이가 살았던 집을 찾았습니다. 바로 키 웨스트 등대 옆입니다. 등대가 바로 옆인 것을 보면 지금으로부터 90여 년 전엔 이 부근에 헤밍웨이 집 외엔 없었을 것이라 생각이 드는군요. 헤밍웨이는 이 집 2층 침실 발코니에서 카리브해를 매일같이 바라다 보았을 겁니다.

 

헤밍웨이 박물관, 키 웨스트를 찾아오는 관광객의 필수 코스다.


헤밍웨이 집은 2층 집으로 부지가 1천여 평이 넘는, 키 웨스트에선 찾아보기 어려운 대 저택입니다. 그가 이 집을 구입한 1930년 초는 이미 베스트 셀러 작가니까, 이미 그는 부자 반열에 들었을 지 모리지만, 그것보단 두번째 부인이었던 폴린의 재력이 이 집 마련에는 도움이 되었을 겁니다. 


마당엔 헤밍웨이가 집을 산 뒤 공사한 근사한 수영장(길이 25미터)이 있습니다. 키 웨스트에서 지금까지도 가장 큰 개인 수영장이라고 하니, 처음 만들었을 때는 이 지역에서 꽤나 큰 뉴스거리였을 겁니다. 집은 2층집 본채와 부속 별채로 나누어져 있고, 부속 별채 2층엔 헤밍웨이의 작업실이 있습니다.

 

헤밍웨이 집의 수영장과 정원


잘 알다시피 헤밍웨이는 미국 현대사에서 많은 에피소드를 남긴 문호입니다. 그의 문학수준에 대해선 신랄히 비판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부인할 수 없는 것은, 그가 생전에 대중으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 문학가였다는 사실입니다. 얼마나 많은 그의 소설이 영화화 되었습니까? 화가로 치면 피카소에 버금간다고 할까요. 생전에 영화를 누린 예술가나 문학가가 드문데 이 두 사람은 그 면에선 동일하니 말입니다.


헤밍웨이는 62세의 삶을 살다가 자살로 생을 마감합니다. 그의 아버지도 자살을 했고 아들 헤밍웨이까지 그랬으니 우울증은 집안의 내력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헤밍웨이는 누구보다 일생을 화려하고 멋지게(?) 산 사람입니다. 어릴 때부터 부유한 집안의 자식 답게 거침없이 살았고, 나이가 들어선 그 시대 어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온갖 경험을 다하면서 인생을 즐겼습니다


1, 2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고, 신문사 종군기자로서 스페인 내전을 직접 목격했으며, 결혼과 이혼을 거듭하며 4명의 아내와 부부생활을 했습니다. 파리에서 특파원 생활을 했고 쿠바에서도 수년간 살았습니다. 취미가 사냥, 낚시 그리고 복싱이었다고 하니 그가 어떤 사람인지는 알만하지 않습니까.

 

거실에 붙어 있는 헤밍웨이 사진과 초상화

헤밍웨이가 키 웨스트에서 낚시를 즐긴 사진과 당시 사용한 타자기


이런 배경 하에서 우리가 잘 아는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바다와 노인을 썼습니다. 특히 그에게 노벨 문학상(1954년)을 가져다 준 바다와 노인’은 이곳 키 웨스트에서의 바다 낚시가 큰 모티브를 주었을 거라고 합니다


한 여름 이곳의 더위는 상상 외로 참기 힘듭니다. 그럼에도 그는 이곳에서 굵은 땀방울 흘리며 복싱을 즐겼고, 때때로 바다에 나가 작열하는 태양 아래에서 낚시를 했습니다. 이것이 하얀 피부의 사나이가 구릿빛 피부의 사나이가 된 사연입니다. 속살은 어땠는지 모르지만 지극히 남성적(마초적)이었던 헤밍웨이의 모습은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바다와 노인에서 말하는 인간은 패배하기 위해 태어난 것은 아니다라는 말은 이런 경험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요?


헤밍웨이 집은 사후 상속인(네번째 부인)에 의해 이웃집(버니스 딕슨)에 매각되었고, 1968년 미연방 정부에 의해 국립역사기념물(National Historic Landmark)로 지정되었습니다. 운 좋게도 매수인 딕슨은 헤밍웨이의 가재도구 일체를 인수해 사설 박물관으로 꾸몄습니다. 그런 이유로 지금 이 집에 들어서면 헤밍웨이의 두 번째 부인이었던 폴린이 파리에서 구입했던 가구를 볼 수 있습니다.

 

헤밍웨이 침실(상), 별채의 서재(중), 침실 앞 발코니(하)


이곳 헤밍웨이 집엔 여러 마리의 고양이가 돌아다닙니다. 내력을 알아보니 재미있습니다. 헤밍웨이는 생전에 고양이를 좋아했습니다. 현재 이 집에서 살고 있는 고양이는 모두 헤밍웨이가 기르던 고양이의 후손입니다. 얼마 전엔 관광객 중 한 사람이 이 고양이가 제대로 보호되지 못한다고 민원을 제기해, 미 농무성에서 조사관이 나와, 고양이마다 이름표를 붙이게 했다고 합니다. 그런 규제를 참지 못한 박물관 측이 소송을 했지만 결국 졌습니다. 그만큼 이들 고양이는 특별한 대우를 받고 있습니다.

 

정원 펜스 위에 고양이 한 마리가 올라와 재롱을 부리고 있다. 헤밍웨이가 기른 고양이의 후손이다.


하지만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도 있더군요. 이 박물관의 주인인 딕슨가가 박물관 운영을 매우 영리적으로 한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입장료가 성인기준으로 1인당 14불이고 박물관이라면 어디에서도 제공하는 학생 할인도 없습니다. 그런데다 카드 결재도 안하고 오로지 현금만 받습니다. 미국 어딜 가도 이런 곳을 보지 못했는데 매우 실망스럽습니다. 죽은 헤밍웨이가 생전에 보지도 못했을 옆집 사람들을 이런 식으로 대대손손 부자로 만들어 주고 있다니요! 키 웨스트에 오는 수많은 관광객의 제1 코스가 이렇게 관리된다는 게 아쉽습니다. 

 

헤밍웨이 박물관 입구. 입장료가 성인 14불인데 오로지 현금만 받는다. 미국에서 이런 곳은 찾기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키 웨스트는 한 번 올만 한 곳입니다. 신기한 자연환경도 그렇고, 헤밍웨이에 얽힌 이야기만 보고 듣는 것으로도 가치가 있습니다. 작은 섬이니 몇 시간 정도 시간을 내 헤밍웨이가 가보았을 곳(따지고 보면 그의 흔적이 없는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을 하나하나 따라가 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파란만장한 삶을 저 푸른 카리브해에 반사시켜 본다면, 비록 어려운 발걸음이라도, 후회 없는 여행이 될 겁니다.


늦은 밤, 다시 마이애미로 돌아오는 길, 가로등 없는 1번 길을 달렸습니다. 헤밍웨이를 만나고 돌아온다는 뿌듯함으로 제 가슴은 충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