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인생/미국남부

여행이란 무엇인가

박찬운 교수 2018. 1. 14. 05:02

 

여행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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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사스 주 오스틴에 있는 주 의회 건물 앞에서


긴 여행을 마치고 어제 밤 도착했습니다. 오스틴-달라스-서울, 장장 20시간의 여정이었습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곤히 잠에 들었습니다. 이제 깨어보니 예나 지금이나 같은 새벽 4. 벌떡 침상을 박차고 일어나 책상 앞에 앉았습니다.


여행은 내게 무엇이었던가. 제가 쓴 글 <자유인이 되는 길> 중 한 부분이 생각 나 찾아 옮겨 봅니다. 저는 이 글에서 운동해서 건강한 몸을 만들고, 독서해서 건강한 정신을 만든 다음, 마지막으로 여행을 함으로써 자유인이 되자고 말했습니다.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고, 여행은 걸어 다니는 독서다.’ 세상과 자연은 어쩜 거대한 책이다. 그 책을 읽는 게 여행이다. 이것은 독서를 통해 머리에 입력된 것을 현실 속에서 내 눈으로, 내 가슴으로 직접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여행을 많이 하면 할수록 앉아서 했던 독서는 내 살과 피가 된다. 여행을 하라는 것은 현실을 직시하라는 말이기도 하다. 독서가 아무리 중요해도 삶 그 자체를 놓치면 공허하다. 현실과 이상을 일치시키려는 노력이 바로 여행이란 움직이는 독서다.

도시에 사는 사람이라면 우선 집을 나가 동네를 돌아다녀라, 도시 이곳저곳을 돌아보라, 의외로 새롭게 발견하는 것이 많을 것이다. 국내여행을 떠나라, 대한민국이 비록 좁은 땅이지만 당신이 가본 데가 도대체 몇 곳이나 되는가. 대한민국도 보면 볼수록, 가면 갈수록 새로운 곳이 많다. 기회가 되면 세계로 나가보라. 넓은 세계로 나가 보편적 존재로서의 나를 경험하라. ‘란 존재와 다른 세계에서 만나는 는 결코 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지구라는 공간에 사는 형제요 자매다.


텍사스 주 의회 건물 하원 전체회의 방에서


이번 미국 여행도 이 말을 실행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여행은 걸어 다니는 독서! 낯선 세상에 간다는 것은 처음 보는 거대한 책을 보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내 눈에 들어 온 그 큰 책의 어느 부분에서 감동을 느낄 지는 전적으로 독자인 제 책임입니다. 자명한 사실은 앉아서 읽는 독서를 많이 하면 할수록 많은 것이 눈에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눈으로 본다고 해서 자연스레 마음속의 감동으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본 것을 읽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여행 전 준비로서의 독서에 의해 좌우됩니다.


텍사스 주립대학에서


제 여행은 기상천외한 볼거리를 찾아다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자동차로 대지를 질주하는 것만으로도, 거리를 걷는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마음속은 감동으로 넘칩니다. 자연의 오묘한 아름다움도 좋지만 저는 사람들이 수십 년, 수백 년 동안 정성들여 만든 도시를 보는 게 좋습니다. 그 속에 있다 보면 사람들의 불굴의 의지와 용기 그리고 땀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실과 이상의 일치! 여행은 그저 보는 것에서 감동을 느끼는 것 이상이어야 합니다. 미국이 아무리 잘 살다한들 그것이 제게 무엇입니까, 미국의 자연환경이 아무리 좋다한들 그것이 제게 무엇입니까, 어차피 제가 살 곳은 그곳이 아니고 여기가 아닙니까. 여행을 하면서 삶의 현실을 보는 것, 우리의 현실을 비교해 보는 것, 그래서 무언가 우리의 삶을 조금이라도 낫도록 생각해 보는 것... 이런 것이 없는 여행은 순간적인 삶의 도락입니다. 그런 여행은 길게 남지 않습니다. 도락을 넘는 여행, 그것이야말로 우리에게 진정한 기쁨을 줍니다.


오스틴 시내를 흐르는 콜로라도 강가에서


보편적 존재로서의 나! 여행을 하면 할수록 대한민국에 사는 특수한 를 넘어 보편적인 를 느낍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을 보면 볼수록 나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오기 전날 텍사스의 어느 식당에 갔더니 저녁을 먹는 여러 가족들을 보았습니다. 한 가족을 보니 할아버지 할머니 아들 딸 내외 그리고 손주들이 모여 그 중 한 사람(얼굴을 보니 며느리?)의 생일을 축하해 주고 있더군요. 보기만 해도 흐뭇한 장면이었습니다. 그것을 바라보면서 보편적인 제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지구 가족의 한 일원이라는 생각마저 들더군요.


이제 또 현실로 돌아왔습니다. 많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읽어야 하고 써야 하고 참석해 발언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지난 몇 주가 제게 준 선물로 인해 그것들을 감당해 낼 수 있을 겁니다. 이제 또 앞으로 나아 갑니다. 본격적으로 출발하는 2018년의 아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