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장/복지

사립유치원 개원 연기 대란에 대하여 -결코 한유총의 요구에 굴복해선 안 된다-

박찬운 교수 2019. 3. 5. 16:29

사립유치원 개원 연기 대란에 대하여
-결코 한유총의 요구에 굴복해선 안 된다-



오늘은 대한민국 모든 학교가 개학하는 날이다. 그런데 학교 중 하나인 사립유치원 상당수가 개원을 연기하겠다고 해서 많은 학부형들의 애간장을 태우고 있다. 작년부터 시작된 사립유치원 사태가 이제 정점을 치닫는 양상이다. 정부의 태도는 일관되고 완강하다. 한유총이 요구하는 사유재산권에 따른 시설사용료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며 집단폐원도 불용한다는 입장이다. 지금 사태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고 내 입장을 밝힌다.
.

1. 이런 사태까지 오게 된 이유는 우리나라 유아교육의 독특한 역사에서 기인한다. 유치원은 과거 잘 사는 집안의 아이들이 취학 전에 다니는 사설학원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것이 이젠 모든 유아가 (일반적으로) 다니는 보편적 유아교육기관으로 발전하였다. 그 과정에서 유아교육의 무상복지 개념이 도입되었으나, 실태는 국공영 중심의 교육기관으로 자리 잡지 못하고, 사립중심의 유치원 체제가 되고 말았다. 시설은 개인이 만들고(현재 사립유치원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약 80%) 그 운영비는 보조금과 지원금 명목으로 국가예산에서 지원하는 방식이 된 것이다. 이런 구조가 결국 금번 사립유치원 사태를 일으킨 근본적 배경이다. 사립유치원 설립자들은 유치원을 돈 벌려는 교육 사업체로 생각하고 있는 데 반해, 국가는 세금을 주어 운영하는 유치원이 더 이상 돈 버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보는 것이다.
.

2. 역사적 이유로 사립유치원 중심의 유아교육이 되었다고 해도, 이젠 에듀파인이란 회계시스템을 도입해 사립유치원의 운영방법을 근본적으로 바꿀 때다. 현재 유치원은 유아교육법상 학교로 정의되어 있으나, 사립유치원은 투명한 회계처리와는 거리가 먼 요상한 사립학교다. 대부분의 사립유치원 설립자들은 유치원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려고 하기 때문에, 국가에서 주는 공적비용을 쌈짓돈처럼 사용하고 있다. 그 동안 국가는 유치원에 돈을 주면서도 설립자가 그것을 마음대로 쓰는 것을 방치했다. 설립자가 원장이 되고 가족 혹은 친인척을 유치원 관계자로 등재해 급여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돈을 빼가도 말 한마디 못했다. 현 정부는 이런 상황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첫 단계로 에듀파인이란 회계시스템을 사립유치원에 적용시키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사립유치원의 회계처리가 국가와 학부모의 감시망으로 들어와 함부로 돈을 쓰지 못하게 된다.
.

3. 사립유치원 설립자들의 어려움을 경청할 필요가 있는지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만일 사립유치원에 에듀파인 회계시스템이 도입되면 그 설립자들은 과거에 비해 상당한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투명한 회계시스템 속에서 설립자들의 주머니로 들어가는 돈은 확실히 적어질 수밖에 없다. 이 상황에서 돈벌이로 유치원 사업에 뛰어 든 설립자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그 사업을 접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쉽지 않다. 스스로 문을 닫고 싶어도 국가(교육청)가 폐원인가를 해주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자칫 돈을 벌 수도 사업을 접을 수도 없게 되는 진퇴양난의 상황이 되는 것이다. 멋모르고 유치원 사업에 손을 댄 설립자들을 생각하면, 저렇게 투쟁을 하는 것도 일면 이해는 할 수 있다. 그러나 과연 국민들이 그것을 용인할 수 있을까? 과연 그런 어려움이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는 합리적인 이유가 될까?
.

4. 이제 우리의 입장을 정할 때다. 도대체 이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국가가 유치원에 주는 돈은 세금이므로 교육목적에 맞고 투명한 회계 속에서 사용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양보할 수 없는 원칙이다. 국민 세금을 허투루 사용하여 유치원 사업하는 사람들 배를 채우게 할 수는 없다. 만일 유치원으로 돈을 벌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경영에서 손을 떼도록 해야 한다. 
.

문제는 지금 당장 폐원을 원하는 모든 사립유치원에게 폐원인가를 내줄 수가 없다는 점이다. 유치원에 들어가고자 하는 유아와 학부모 입장에선 그야말로 대란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냥 이들을 잡고 있을 순 없다. 정부 공약대로 국공립 유치원 비율을 획기적으로 높이고 그 비율만큼 폐원을 원하는 유치원 설립자들에게 퇴로를 열어주어야 한다. 정부 재정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폐원을 원하는 유치원을 사들여 국공립화하는 것도 방법이다. 교육부는 이를 위한 정교한 세부계획을 빠른 시간 내에 짜야 한다.
.

다소 혼란스럽다고 해도 이번 기회에 유치원 운영을 교육복지의 원칙에 걸맞게 바꾸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 한유총의 요구에 굴복해선 안 된다. 유치원은 결코 돈 버는 사설학원이 되어서는 안 된다.

(2019. 3.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