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인생/문학

법률가가 문학을 가까이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하여

박찬운 교수 2015. 9. 26. 21:41

법률가가 문학을 가까이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하여



지난 한 달 동안 <레 미제라블>과 <카라마조프가 형제들> 완역본을 읽었습니다. 즐겁기도 했지만 순간순간 고통도 경험한 장정이었습니다. 아직도 저는 소설 속에 있습니다. 등장인물들이 저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 같습니다.


"나는 이 바쁜 와중에 왜 이런 책들을 읽었을까?"


어제 밤 문득 이런 생각을 하다가 새로 배달된 책 한 권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마사 누스바움의 <시적정의>.


이 책은 얼마 전 저의 동학이자 페친인 채형복 교수님(경북대 로스쿨 국제법 교수이자 시인)이 소개로 알게 되었습니다.


누스바움은 현존하는 미국 최고의 철학자라고 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분입니다. 이분은 정의와 인권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철학자입니다. 그런 이유로 저의 강의에도 곧잘 언급되는 분입니다.


제가 보기엔 누스바움은, <정의론>을 쓴 존 롤스 이후, 가장 영향력 있게 정의론을 설파하는 철학자입니다. 그녀는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아마르티아 센의 철학적 동반자로서 그와 함께 GDP 개념을 뛰어넘는, 인간의 행복을 중시하는 ‘역량이론’을 창시한 인물로도 유명합니다. 진정한 사회정의는 인간이 스스로의 역량을 발휘하여 자유를 누릴 때 가능하다는 그의 이론은 저의 인권관에 크게 영향을 끼치기도 했습니다.


누스바움이 쓴 <시적정의>를 읽으면서 법률가들이 문학을 가까이 해야 하는 이유를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그 이유를 이 책 맨 끝에서 힘주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그대로 소개하는 것이 오늘 저의 임무입니다.


“휘트만이 보여주듯, ‘시적 정의’는 꽤 많은 비문학적 장치들—전문적인 법률지식, 법의 역사와 판례에 대한 이해, 적합한 법적 공평성에 대한 세심한 주의 등—을 필요로 한다. 재판관은 이 모든 것을 고려하는 훌륭한 재판관이어야 한다. 하지만 충분히 이성적이기 위해 재판관들은 공상과 공감에 또한 능해야 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기술적인 능력뿐만 아니라, 휴머니티를 위한 능력까지도 배워야 한다. 이 능력 없이는, 그늘의 공평성은 우둔해질 것이고 그들의 정의는 맹목적이 될 것이다. 이 능력 없이는, 자신들의 정의를 통해 말할 수 있기를 추구했던 ” 오랫동안 말이 없던“ 목소리를 들은 침묵 속에 갇힐 것이며, 민주적 심판의 ”태양“은 그만큼 장막에 가려질 것이다. 이 능력 없이는, ”끝없는 노예 세대들“이 우리 주변에서 고통 속에서 살아갈 것이며, 자유를 향한 희망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법률가들에겐 이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공상, 공감 그리고 휴머니티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그것을 어떻게 함양해야 할까요. 누스바움은 그게 문학이라고 말합니다. 법률가인 제가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소설과 시를 읽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것이 지난 한 달 동안 소설을 읽은 결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