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정/포효

스승은 항상 경모의 대상인가

박찬운 교수 2015. 9. 26. 21:08

스승은 항상 경모의 대상인가


승효상 선생은 대한민국 최고의 건축가이다. 그의 인문적 정신은 기능주의에 함몰된 다른 건축가들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문필가로서의 능력도 탁월하다. 그의 글들은 마치 예술적인 건축물을 보는 듯 탄탄하면서도 아름답다.


하지만 나로서는 유감스런 점도 많다. 특히 그의 스승에 대한 경모는 내 맘을 불편하게 만든다.


그의 스승은 한국 최고의 건축가라 불린 김수근.

그가 남긴 건축물은 척박한 대한민국 현대건축사 속에서도, 하나의 자존심이라고 했다지만, 나는 그렇게 평가하지 않는다.


오늘 승효상 선생은 경향 칼럼을 통해 자신의 스승에 대해 최고의 헌사를 썼다. 스승은 암울한 시대의 거장이었으며 선각자였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자신의 스승을 알아주지 않는 이 시대를 원망했다. 스승이 설계한 라마다 르네상스가 철거될 운명에 처했음을 이야기하면서, 이 시대를 반문화적이며 몰염치하다고 한탄했다.


김수근이 한국의 건축가 중에선 매우 큰 족적을 남긴 뛰어난 인물임은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남긴 건축물 모두가 과연 시대를 뛰어 넘는 명작인지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 역시 그렇다.


박종철이 고문을 받으며 사망한 남영동 대공분실. 그것은 김수근의 작품이다. 지금도 그 부근을 가보면 확인할 수 있는 데 고문이 자행되던 방들의 창문은 고문 전용실답게 의외로 작다. 김수근은 애초부터 이런 용도인줄 알았을까? 많은 사람들은 알았다고 본다. 만일 그렇다면, 그는 고문을 하는 폭압정권에 그의 비상한 재주를 팔아버린 사람이다.


서초동 법원청사. 그것도 김수근의 작품이다. 나는 변호사로 일하면서 매일같이 이 청사를 들락날락하면서 입에 욕을 달고 다녔다. 세상에서 가장 비민주적인 건물이라면서. 야산 비탈진 곳에 20층 넘는 쌍둥이 건물이 서초동 일대를 굽어보고 있다. 압도적인 광경이다. 건물 내부는 미로 같다. 지금은 설치되었지만 애초 법정동은 엘리베이터도 설치되지 않았다. 판사들은 자신들의 집무실에서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지만 민원인들은 5층까지 비지땀을 흘리며 걸어 올라가야만 했다. 이 건물은 대한민국 권위주의의 상징이다.


세운상가. 그것 역시 김수근의 작품이다. 승효상 선생은 오늘 칼럼에서 이 건물이 세계의 유수한 건축가들의 열망을 실현한 메가스트럭처라고 찬양했지만 내게는 서울 도심을 파괴한 시멘트 콘크리트 흉물에 불과하다. 서울의 역사성과 자연을 고려했다면 과연 그런 건물이 서울 도심에 들어올 수 있었을까.


스승을 경모하는 것은 제자의 도리다. 하지만 스승의 모든 것이 경모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스승에게 부족했던 것, 스승이 비판받는 것, 그것도 인정하는 것이 큰 제자의 도리라 생각한다. 청출어람이라 하지 않았는가. 승효상이 김수근을 능가하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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