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정/포효

송년회에서의 애국가 제창? 좋습니까?

박찬운 교수 2015. 12. 9. 06:00


 송년회에서의 애국가 제창? 좋습니까?


송년회 철이 되었다. 나도 두어 주 전부터 저녁이 되면 송년회에 다녀오는 일이 잦다. 원래 술 마시고 흥청대는 걸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니, 잠간 얼굴 보이고 친한 동창 만나 약간 담소 나누다가, 자리를 뜨는 게 다반사다.


이 송년회를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인데, 한 가지 이해할 수 없는 게 있다. 송년회 자리에서 애국가 부르고,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고... 어제 송년회에선 급기야 호국영령들에 대한 묵념까지 했다. 왜들 이러는가. 가장 사적인 자리에서 왜 국가(國家)를 불러들이는가. 사진 잘 찍어 청와대에 보내 무슨 애국 동창회상이라도 받으려고 하는지... 어제 동창회에선 한순간 왕짜증 폭발 직전까지 갔다.


한국 사람들이 아무리 배워도 개인과 국가의 관계를 잘 구별하지 않는 것 같다. 모든 상황에서 나란 존재는 국가의 부품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 아닌가. 사실 이런 것을 물어보면 잘 대답도 못한다. 무슨 큰 이유가 있는 게 아니다. 그저 그게 관행이 아니냐고 말하는 게 전부다.


맞다. 동창회에서 애국가 부르고 국기에 대한 맹세하는 게 큰 고민해서 만들어 놓은 절차가 아니다. 남들 하니 나도 하는 것일 뿐이다. 하지만 이런 무의식 중의 습관이 무서운 거다. 우린 별생각 없이 이런 일을 하지만 사실 국가주의라는 이슬비에 옷을 적시는 중이다. 시간이 가면 우리 옷은 흠뻑 젖어 말릴 수도 없는 상황이 될 것이다.


국가는 개인을 위해 존재한다. 국가를 위해 개인이 존재하는 게 아니다. 개인은 가급적 자신의 영역을 지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우리 삶에서 국가를 내 몰기는 불가능하지만 할 수만 있다면 그것을 내몰아야 한다. 그래서 개인의 영역을 최대로 확장시켜 그 개인이 가지고 있는 천부의 자유를 누려야 한다. 그렇지 않고 매사에 국가를 부르짖으면 그게 바로 애국이란 이름으로 우린 국가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당신은 이불 속까지 국가를 끌어들일 참인가.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조르바가 한 말을 기억하는가. 그는 이런 현상을 이렇게 일갈했다.

“조국 같은 게 있는 한 인간은 짐승, 그것도 앞뒤 헤아릴 줄 모르는 짐승신세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국가를 내 자신에서 완전히 배제하면 그게 아나키스트고, 국가를 내 자신의 완전한 주인으로 섬기면 그게 전체주의 국가주의자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아나키스트도, 전체주의 국가주의자도 되어서는 안 된다. 그 양극단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나는 개인의 행복은 이 양극단의 중간에서 약간 왼쪽으로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데에서 온다고 믿는다. 국가란 괴물 앞에서 가슴 속에 아나키스트의 불가능의 꿈을 안고 다른 사람과 연대하며 정의로운 삶을 살아가는 게 바로 행복의 지름길이다.


<시민불복종>을 쓴 미국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이 말 하나를 기억하자.

“우리는 먼저 인간이어야 하고, 그 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