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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먼저 인간이고, 그 다음이 국민이다

박찬운 교수 2017. 12. 10. 08:27

우리는 먼저 인간이고, 그 다음이 국민이다
ㅡ세계인권선언기념일에 부쳐ㅡ


 

 

오늘이 세계인권선언기념일이다. 지금으로부터 69년 전 오늘 신생 국제연합은 창립 3주년을 맞이해 역사상 가장 의미있는 선언을 한다. 모든 인류는 존엄한 존재이며 그에 걸맞는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정식명칭은 인권에 관한 보편선언(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 곧 인권은 세계 어디에서도 보편적으로 존중되어야 한다는 선언이다.

 

오늘 그 의미를 되새기며 한마디한다. 인권사회를 위한 전제로서 우리가 정립해야 할 '나와 국가와의 관계'에 관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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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회 철이 되었다. 요즘 저녁이 되면 송년회에 다녀오는 일이 잦다. 원래 술 마시고 흥청대는 것을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니, 잠간 얼굴 보이고 오랜만에 친구 만나 약간 담소 나누다가, 자리를 뜨는 게 다반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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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송년회를 가다보면 묘한 것을 경험한다. 규모가 큰 송년회 자리에선 1부 의식이 있는데, 거기에선 애국가를 부르고,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는 경우가 있다. 얼마 전엔 호국영령들에 대한 묵념까지 하는 행사도 목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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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들 이러는가. 공적 자리라고 볼 수 없는 송년회에 왜 국가(國家)를 불러들이는가. 나는 이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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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들은 아무리 배워도 개인과 국가의 관계가 무엇인지 고민하지 않는다. 모든 상황에서 '나'라는 개인을 국가의 부품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사실 왜 그러느냐고 물어보면 대답도 잘 못한다. 무슨 큰 이유가 있는 게 아니다. 그저 그게 관행이 아니냐고 말하는 게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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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다. 송년회에서 애국가 부르고 국기에 대한 맹세하는 게 큰 고민해서 만들어 놓은 절차가 아니다. 남들 하니 나도 하는 것일 뿐이다. 하지만 이런 무의식 중의 습관이 무서운 거다. 우린 별생각 없이 이런 일을 하지만 사실 국가주의라는 이슬비에 옷을 적시는 중이다. 시간이 가면 우리 옷은 흠뻑 젖어 말리기도 어려워진다는 것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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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개인을 위해 존재한다. 국가를 위해 개인이 존재하는 게 아니다. 개인은 자신의 영역을 지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우리 삶에서 국가를 내 몰기는 불가능하지만 할 수만 있다면 그것을 내몰아야 한다. 그래서 개인의 영역을 최대로 확장시켜 그 개인이 가지고 있는 천부의 자유를 누려야 한다. 그렇지 않고 매사에 국가를 부르짖으면 그게 바로 애국이란 이름으로 국가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당신은 이불 속까지 국가를 끌어들일 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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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조르바가 한 말을 기억하는가. 그는 이런 현상을 이렇게 일갈했다.

 

“조국 같은 게 있는 한 인간은 짐승, 그것도 앞뒤 헤아릴 줄 모르는 짐승신세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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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를 내 자신에서 완전히 배제하면 그게 아나키스트고, 국가를 내 자신의 완전한 주인으로 섬기면 그게 전체주의 국가주의자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아나키스트도, 전체주의 국가주의자도 되어서는 안 된다. 그 양극단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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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존중은 이 양극단의 중간에서 약간 왼쪽으로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데에서 가능하다고 믿는다. 국가란 괴물 앞에서, 가슴 속에 아나키스트의 불가능의 꿈을 안고 다른 사람과 연대하며 정의로운 삶을 살아가는 게, 바로 인권존중의 삶을 살아가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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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불복종>을 쓴 미국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이 말 하나를 마지막으로 기억하자.

 

“우리는 먼저 인간이어야 하고, 그 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