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인생/종교 철학 심리

절망의 종교, 대한민국 극우의 첨병이 되다

박찬운 교수 2018. 3. 1. 20:53

절망의 종교, 대한민국 극우의 첨병이 되다

-윤정란의 <한국전쟁과 기독교>를 읽고-



인류역사에서 수천 년의 생명력을 유지해온 몇 몇 종교를 우린 보편 종교라고 부른다. 보편 종교의 특징은, 개인적 차원에선 공포(그 원인이 자연이든 인간의 권력이든)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고 진리를 추구해 참다운 자유에 이르게 하는 한편, 사회적 차원에선 이웃을 사랑함으로써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한다는 것이다. 어떤 종교든 이 보편성을 유지하지 못하면 언젠가는 인간 사회로부터 버림을 받고 인류사에서 퇴출될 수밖에 없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나라의 기독교 그중에서도 개신교는 위기다. 대한민국 국민 중 천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개신교도라고 하지만 지금 보편 종교로서의 개신교의 의미를 살리고 있는 신자는 과연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다. 개신교도는 과연 그 종교적 믿음으로 인해 얼마나 자유를 누리고 있고, 그것을 위해 얼마나 진리를 추구하고 있는가. 과연 그들은 얼마나 대한민국 사회의 평화를 위해 이웃을 사랑하고 있는가. 

내가 보기엔 대한민국 개신교도 대부분은 교회 주식회사의 의결권 없는 주주에 불과하다. 그들은 교회의 주체적 구성원이 아니며 몇 몇 목회자에 의해 맹목으로 조종되는 의지 없는 신자들이다. 거기엔 개인적 차원에서의 진리도 없고, 사회적 차원에서의 사랑도 보이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개신교는 절망의 종교가 되었다.

대한민국의 극단적 우파세력은 개신교회에 몰려 있다. 박근혜 구명을 위해 데모를 하는 태극기 부대나 진보세력을 연일 종북주의자로 매도하는 사람들 상당수가 개신교회 신자들이다. 또 그들은 동성애자의 차별이 마치 하느님 말씀인 것처럼 떠들며 동성애자들을 마귀라고 몰아 부친다. 보도에 의하면 개헌논의 과정에서 일부 개신교회는 여당과 진보세력이 우리 체제를 사회주의 체제로 만들려 한다고 거짓 선전까지 하고 있다고 한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세계 개신교 역사에서 유례없는 현상이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는가. 조금이라도 우리 사회를 분석해 보고 싶은 사람으로선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는 주제다. 이 의문을 품고 있는 사람이라면 윤정란의 <한국전쟁과 기독교>라는 책을 한 번 읽어 보기 바란다. 이 책을 읽어보면 우리 개신교가 유난히 반공과 반북에 예민한 이유와 그것이 정치권력과 어떻게 연결되었는지 그 기원을 알 수 있다. 이것을 통해 우리나라의 보수, 그 중에서도 기독교 보수주의의 뿌리를 확연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윤정란이 말하는 것을 간단히 말하면 이렇다. 대한민국에서 보수라 지칭되는 사람들의 뿌리는 크게 보면 대구 경북을 중심으로 하는 TK와 한국전쟁 전후로 월남한 서북출신 North West다. 즉 이 둘이 결합한 ‘TK 노스웨스트 유나이티드 에어라인’이 우리 보수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서북 출신은 정확히 말하면 서북출신 기독교인(개신교인)을 말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서북 출신 기독교인들은 남한에 와서 기독교의 중심세력을 이루었고 남한 보수의 아성 TK와 결합되었을까? 윤정란의 책 일부를 그대로 옮김으로써 간단히 답하면 이렇다.

“한국 기독교가 한국 사회의 우익 진영을 대표하는 집단으로 부상한 것은 한국전쟁 이후부터로, 그 중심에 월남한 서북출신 기독교인들이 있었다. 한국전쟁 이후 서북출신 기독교인들은 한국 기독교의 주류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남한 사회에서의 정착에도 성공했다. 이를 기반으로 박정희 정권과 결합함으로써 한국 사회의 영향력 있는 집단으로 부상했다.”(14)

“1945년 광복 이후... 서북지역의 기독교 지도자 대부분이 공산당에 체포 구속되고 죽임을 당했기 때문에, 월남한 서북 지역 기독교인들은 피난민 교회를 거점으로 삼아 월남한 목사를 중심으로 강한 연대를 구축했다. 반공연합 전선의 형성이었다.”(330)

“월남한 (서북) 기독교인들은 교회를 설립한 한경직을 중심으로 결집하기 시작했다. 북한에서 공산당과 대치하다가 이를 피해 월남한 사람들의 ‘탈출 신앙 공동체’인 영락교회는 월남한 기독교인들의 남한 정착 안내 및 구호, 나아가 반공의 전투기지 역할을 했다. 예를 들어 영락교회 청년회와 학생회는 반공주의 운동에 앞장선 조직이었다. 이들은 1946년에 결성된 서북청년회의 핵심 구성원이었다. 청년회 간부와 회원은 북에서 공산당과 대치하다가 월남했기 때문에 반공투쟁에 매우 적극적이었으며, 학생회는 학내의 공산주의 지지자들과 맞서는 최선봉 단체였다.”(102-103)

“1960년대 이후 한국 경제성장의 큰 동력은 한국전쟁 이후 가장 근대화된 집단인 군대에서 5.16의 핵심세력이 된 박정희와 서북 출신 군장성들, 서북 출신 기독교인들이 주도한 한국 교회, 북한 체제보다 경제적으로 앞서야 한다는 일념으로 제기된 승공 담론, 그리고 빈곤에서 탈피하기 위해 승공론을 지지한 한국인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336)

사실 윤정란의 연구는 새로운 것은 아니다. 우리 보수의 뿌리 중 하나가 서북 출신 기독교인이라는 것은 상식에 속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 책은 그 상식을 정확한 문헌에 기초해 확인해 줌으로써 대한민국 기독교 보수의 실체를 역사학적 관점에서 확연히 드러내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대한민국 기독교 보수의 뿌리를 알순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책만으로 개신교 일부가 극우 세력으로 자리매김하는 것까지를 이해하긴 어렵다. 그것은 이 책이 70년대 박정희 정권까지 서북 출신 개신교인을 연구대상으로 함으로써 지난 30여 년간 개신교에서 일어난 변화상은 담지 못했기 때문이다. 

도대체 지난 1980년 대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국 기독교에는 어떤 변화의 바람이 불었을까? 이 기간 중 오늘의 이 극우적 현상을 불러일으킨 특별한 사정은 무엇이었을까? 개신교의 위기를 극우적 행동이나 기독교의 원리주의로 돌파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면서 드는 의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