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장/정치

그냥 넘길 수 없는 강경화 장관의 말

박찬운 교수 2017. 10. 13. 17:08

그냥 넘길 수 없는 강경화 장관의 말

.

1.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어제(12일) 외교부 국정감사 과정에서 한강의 최근 뉴욕타임스(NYT) 기고문과 관련, "작가로서 개인적인 생각이 있을 수 있지만, 표현과 역사인식에 있어서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또 '청와대가 한강 씨의 NYT 기고문을 페이스북에 게재한 것이 외교 안보상 중대한 현시점에서 도움이 되느냐'는 질문에 "저와 협의했더라면 올리지 말라고 조언했을 것 같다"고 답변했다.

나는 이 말을 간단히 넘길 수 없다. 
.

2. 
매우 뜻밖에도 일부 보수언론 및 보수인사들이 한강의 기고문에 대해 문제를 삼고 있다. 기고문 중 일부를 갖고 한강의 역사관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들이 특별히 주목하는 것은 한국 전쟁 관련 부분이다. 원문과 한글 원문을 옮기면 이렇다.
.

"The Korean War was a proxy war enacted on the Korean Peninsula by neighboring great powers.(한반도에서 일어난 한국 전쟁은 인접한 강대국들에 의해 일어난 대리전이었다.)"
.

이와 함께 문제적 부분으로 언급되는 게, 이 말 이후에 서술한, 한국 전쟁 중 미군에 의해 자행된 노근리 사건이다.
.

3.
한강을 위해 특별히 변호할 필요도 없다. 영어를 제대로 해독할 수 있는 사람이(한글 원문도 나와 있으니 ‘한글을 제대로 해독할 수 있는 사람이’), 기고문 전체를 읽는다면, 오해의 소지는 없다. 저런 반응은 모든 것을 빨간 안경을 쓰고 바라다보는 이데올로그들의 광기의 소산이다. 
.

"One of the many things I realized during my research is that in all wars and massacres there is a critical point at which human beings perceive certain other human beings as “subhuman” — because they have a different nationality, ethnicity, religion, ideology.(내가 연구 중 깨달은 것은 모든 전쟁과 대학살에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인간 이하”로 인식했다는 점이었다. 그 이유는 그들은 다른 국적, 인종, 종교와, 이데올로기를 가졌기 때문이다.)"
.

한강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전쟁, 학살, 인류가 벌려온 참혹한 만행의 이면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인간 이하’(subhuman)로 보는 편견이 존재했다는 것. 그 선상에서 한국전쟁도 다른 만행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한국을 돕기 위해서 왔다는 미국도 거기에서 예외가 될 수 없고, 노근리 학살은 그 예이다. 나아가 지금 미국이 한반도에서 전쟁가능성을 말한다면, 그것 또한 미국이 한반도에 사는 사람을 ‘인간 이하’로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4.
한국 전쟁을 강대국의 대리전이라고 표현한 부분은, 전후 문맥상 일반적으로 논쟁해 온, 한국전쟁의 책임문제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표현이다. 한강 기고문의 전적인 목적은 ‘전쟁은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함이었다.

.

“We understand that any solution that is not peace is meaningless and that “victory” is just an empty slogan, absurd and impossible.(우리는 평화가 아닌 것은 어떠한 의미가 없으며 “승리”는 공허한 구호일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

전쟁은 그것을 반대하는 양민의 입장에선, 어떤 전쟁이든 대리전이다. 그들 양민과는 상관없는 전쟁이다. 한강의 대리전 표현은, 한국 전쟁에 대한 정치적 표현도, 더더욱 법적 책임을 논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전쟁의 본질적 성격을 문학가로서 통찰한 것에 불과하다.
.

5.
도대체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평화를 염원하는 작가가, 전쟁가능성을 이야기하는 미국의 조야에 ‘전쟁은 절대 안돼’라고 외치는 소리에 대해, 무슨 역사관을 들먹이는가. 전쟁이 일어나도 그저 숫자 놀음만 할 미국 워싱턴에 대해, 그것은 ‘너희들이 우리를 ’인간 이하‘(subhuman)으로 보는거야’라고 일침을 놓는 작가에게, 무슨 비난을 한다는 말인가. 한강은 평화를 간절히 원하는 우리를 대신해, 미국 조야에 전쟁반대를 호소하고 있을 뿐이다.
.

6.
나는 강장관의 생각과 자세에 큰 실망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강장관이 야당의 반대 속에서 임명될 때 누구보다 적극 지지한 사람이다. 내가 원한 강장관은 이런 사람이 아니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그가 한국의 외교장관으로 이 엄중한 한반도 정세에서 평화를 지키고, 미국에 대해서도 할 말은 하는 줏대 있는 장관을 원했다.

강장관의 저 말이 바로 그런 외교장관의 입으로 할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