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장/교육

나의 시민인권교육 방법론

박찬운 교수 2023. 5. 27. 18:11

 

내 강의 제목은 '자유란 무엇인가'. 이번 정부 들어 자유라는 말이 많이 사용된다. 대통령은 미국 의회에 가서 수십 회 자유라는 말을 썼다. 그 자유가 어떤 의미의 것이었을까? 사람마다 다른 자유의 의미, 나는 이번 학기 학부에서 '자유란 무엇인가'라는 과목을 만들어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어제 강의는 내가 한 학기 동안 학생들에게 들려주는 자유의 핵심을 90분에 전달하는 것이었다.

 
어제 수원시청에서 공무원을 대상으로 ‘자유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인권 강의를 했다. 내 강의에 참여한 공무원의 수가 800여 명. 절반은 현장에, 나머지 절반은 줌으로 연결해 참여했다. 내 인권교육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이 강의를 위해 오랫동안 준비했고 그것을 90분 동안 아낌없이 토해냈다. 강의 내내 분위기가 좋았다. 참석자들 중 졸거나 자는 사람들은 거의 보지 못했다.(공무원 인권교육에서 이렇게 조는 사람 없게 강의하기 정말 힘들다!) 강의가 끝난 다음 몇몇 직원은 나에게 찾아와 이렇게 수준 높으면서도 감동적인 강의는 오랜만이라며 감사의 인사를 했다. 좀처럼 운전하지 않는 내가 수원까지 차를 몰고 가서 강의한 보람이 있었다.
 

800명이나 되는 많은 공무원들이 내 강의에 참여했다. 내 강의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요즘 인권교육이 이곳저곳에서 행해진다. 공무원은 매년 일정 시간 인권교육을 받아야 하는 의무가 있고, 민간단체나 학교에서도 광범위하게 인권교육이 이루어진다. 인권법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학교 밖에서 이루어지는 인권교육의 질과 수준은 천차만별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인권교육의 역효과가 나오기도 한다.

무엇보다 인권교육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관심도가 높지 않아 그저 시간 때우기식으로 교육이 진행된다는 비판도 들려온다. 나는 오랜 기간 학교에서 인권법을 가르치고 기회가 주어지면 밖에 나가 시민(공무원 포함) 대상 인권교육을 해온 사람으로서 인권교육(인권강의)에 대한 몇 가지 원칙을 갖고 있다. 어제의 인권교육을 상기하면서 내가 세운 인권강의 원칙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첫째, 내가 잘 아는 분야의 인권교육을 한다.

인권교육도 분야가 넓다. 이 넓은 분야의 인권교육을 인권법 교수라고 해서 덥썩 물으면 안 된다. 강의 부탁이 와도 그에 대해 내가 잘 알고 있는지 바로 점검하고 잘 알지 못하는 영역이라면 수락하지 않는다. 내가 모르는 분야의 인권교육을 부탁받고 공부해서 강의할 수는 없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인권교육을 듣는 수강생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교수 입장에선 학생을 가르치는 것이 주 임무이므로 외부강의로 인해 학생들에게 피해가 가선 안 된다.

잘 모르는 분야의 강의를 수락하면 강의가 끝날 때까지 상당한 압박을 받는다. 또한 그 강의를 준비해야 하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니 결국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도 좋지 못한 영향을 줄 수 있다. 외부강의는 준비하는 데 특별히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아도 잘 할 수 있는 분야를 해야 한다. 나는 이 원칙을 철저히 지키기 때문에 열 군데에서 강의 요청이 오면 한 군데 수락하는 정도로 수락률이 매우 낮다.
 
둘째, 일단 강의를 수락하면 수강생들을 분석해야 한다.

강의가 나름 효과가 있으려면 수강생에 대한 사전 분석이 필수적이다. 학생인지, 공무원인지(공무원의 경우는 직급도 고려해야함), 전문가인지(의사, 변호사 등), 시민단체 운동가인지, 순수 일반시민인지에 따라 강의의 내용과 수준을 달리해야 한다.

이런 부분을 고려하지 않으면 아무리 수준 높은 강의를 했다고 해도 수강생으로부터 긍정적 반응을 끌어내긴 어렵다. 강사는 노력했지만 결국 벽에 대고 강의를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셋째, 강의 기법에 대한 연구를 평소 꾸준히 해야 한다.

강의는 하나의 엔터테인먼트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고 해도 전달력이 없으면 성공적인 강의라고 할 수 없다. 말의 장단, 목소리의 강약, 적절한 시선처리(의외로 수강생의 눈을 보지 못하고 강의하는 교수가 많다. 수강생의 눈을 봐야 교수가 강의를 지배한다), 시간 안배(아무리 명강의라고 해도 시간을 오버하면 좋은 평가를 받기 힘들다), 적절한 유모어, 시청각 자료의 사용, 강사의 자세 등등 수많은 요소가 결합되어야 수강생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강의에 몰입한다.

이런 강의기법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평소 이를 꾸준히 연구하고 다른 사람들의 경험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나는 몇 년 전부터 관련 유튜브를 찾아 수강생들과 자주 보는데 반응이 꽤 좋다. 시민 교육의 경우는 더욱 이런 시청각 자료를 찾아 활용하는 것이 좋다. 단, 강의 시에 사용하는 유튜브는 너무 길면 자신의 강의가 거기에 묻히게 되니 조심해야 한다. 자신의 설명을 돕는 가급적 짧은 동영상을 찾아 시청토록 하는 게 중요하다.

또 하나 중요한 나의 기법은 강의 준비는 많이 하되 강의 원고를 따로 만들지 않는다. PPT를 사용하지만 아주 자세한 내용의 강의안을 만들지 않는다. 만일 그렇게 하면 강의는 PPT에 의존하게 되어 임기응변을 하기가 어렵다. 강의는 다양한 상황에서 조금씩 변용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간단하게 요약된 PPT만 보고 내용은 즉석에서 채울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수강생 입장에선 그저 PPT 읽어주는 강사를 만나 밋밋한 강의를 수강하는 것이다. 그런 강의에서 좋은 반응을 얻긴 어렵다.

다만 줌 강의를 하는 경우는 강의 원고를 만드는 것도 좋다. 그래야 짧은 시간 내에 좋은 내용의 강의를 빠짐없이 할 수 있다.
 
넷째, 옷차림도 중요하다.

좋은 강의가 되기 위해선 강사와 수강생 간의 신뢰도 한몫 한다. 옷차림은 그런 면에서 중요하다. 강사는 경박해서도 안 되고 너무 고루해서도 안 된다. 정장을 할지, 평상복을 입을지를 일률적으로 말하긴 힘들다. 그것은 수강생이 어떤 사람들인지, 강사에 대한 수강생의 기대가 어떤 것인지에 따라서 달리 판단해야 한다.

어제 나는 정장을 하고 갔다. 원래 ‘자유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에 맞게 청바지에 노타이 차림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장고 끝에 정장을 하고 갔다.  강의 모두에 800명이나 참여하는 공무원들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기 위해 평소 하지 않는 정장 차림으로 왔다고 하면서 박수를 유도했다. (ㅎㅎ 옆구리 찔러 절받기!)  이 말 한마디가 참석자들에게 강의에 대한 흥미를 유발시켰을 것이다.
 
다섯째, 인권강의는 지식을 넘어 감정을 건드려야 한다.

인권강의가 성공하기 위해선 강의가 끝난 후 뭔가 가슴 뭉클함을 주어야 한다. 인권 강의는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넘어 수강생들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강의의 결론은 마음을 움직이는 말로 마무리를 할 필요가 있다.

나는 인권강의가 끝난 후에 결국 남는 것은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지난 후 강의 시간에 들은 지식은 기억 저편 속으로 사라지지만 내 감정을 건드린 어떤 말 한마디는 오랜 기간 내 머리를 지배한다. 강사는 그것을 찾아 보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어떤 말이 수강생들의 가슴을 흔들 수 있을까? 그것을 강의 전 하나의 화두처럼 잡을 필요가 있다. 그런 노력을 하다보면 명풍 인권강의가 탄생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여섯째, 강사료를 적절히 받아야 한다.

요즘은 많이 달라졌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권전문가를 초청할 때 제대로 강사료를 지불하지 않았다. 인권이란 돈을 초월하는 것이니 인권강의도 돈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인권강사가 이슬만 먹고 사는 사람들이 아니다. 항산(恒産)에 항심(恒心)이라고 했다. 돈 있는 곳에 마음도 있다. 여건에 따라 다르지만 적은 돈이라도 마련해 강사를 초청하는 것은 기본이다. 이 기본을 잊는 단체나 기관엔 인권교육을 가봐야 남는 게 없다. 

나는 이제까지 내가 관리하는 프로그램에 인권전문가를 초청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강사비를 마련해 주었다. 주관하는 측이 조금 넉넉하면 강사비를 더 올려줄 것을 요구한다.

나도 강사료를 제대로 안 주는 곳은 가지 않는다.(솔직히 말하면 나에 대한 강사료는 업계 최고수준!) 강사비를 받지 않는 경우는 내가 재능 기부를 하는 때이고, 그것은 사전에 내가 그리 하겠다고 했을 경우이다.

어제 강의가 끝나니 어느 공무원이 다른 기회에 한 번 더 초청하고 싶다고 해, 우스개 소리로 "좋은데요, 그러려면 강사료는 오늘의 두 배는 더 주어야 할 겁니다"라고 했다. 농반 진반의 말이었다. 
(2023. 5.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