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장/교육

추악한 스포츠계의 모습은 우리의 자화상이다

박찬운 교수 2019. 1. 11. 14:41

추악한 스포츠계의 모습은 우리의 자화상이다
-대증적 요법을 넘어 근본적 문제를 생각하자-


토마스 바흐 현 IOC 위원장은 선수출신 위원장이다. 그는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펜싱 남자 플뢰레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수상했다. 그런데 그는 펜싱 선수를 직업으로 선택하지 않았다. 그는 뷔르츠부르크 대학의 법대를 졸업하고 법학박사가 되었으며 지난 수십 년 간 변호사로 활동했다. 그는 경기인으로 살아온 것이 아니라 명망 있는 법률가로서 스포츠 행정관으로서 인생을 살아왔다. 서구사회에서 토마스 바흐는 예외적인 인물이 아니다.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이, 아니 올림픽엔 출전했지만 노메달에 그친 선수들이, 선수생활을 마치고선 각자의 전공과 각자의 능력에 따라, 다양한 직업전선에서 일반인들과 다름없이 살아간다. 누군 제빵의 장인으로, 누군 자동차 회사의 디자이너로, 누군 대학의 교수로, 누군 시청의 공무원으로 살아간다. 물론 이들은 과거 이름 있는 선수였기에 자신의 종목과 어떤 방법으로든지 관련을 맺고 후배들을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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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어떤가. 서구의 저런 모습을 과연 기대할 수 있을까. 한마디로 불가능하다. 대한민국 선수들은 아침부터 밤까지 운동만 한다. 학생 신분이지만 공부는 하지 않는다. 그들에겐 운동이 전부다. 오로지 메달리스트가 되고 프로 선수가 되는 게 삶의 목적이다. 그것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다. 젊음도 낭만도 여행도 공부도.... 만일 이들이 중도에 운동을 그만두면 할 일이 없다. 한마디로 깜깜하다. 잔인한 정글에 버려진 이방인이 되는 것이다. 살벌한 세상에서 죽으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어떻게 해서라도 운동을 계속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다. 어떻게 해서라도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야 하고, 어떻게 해서라도 실업팀에, 어떻게 해서라도 프로팀에 들어가야 한다. 이 환경에서 코치, 감독이란 지도자 폭군이 탄생한다. 지도자들은 선수의 미래를 쥐고 있기에 힘이 있다. 이들은 선수만이 아닌 그 부모들마저 장악한다. 자식의 장래를 걱정하는 부모로선 눈물을 머금으면서도 지도자의 말을 들어야 한다. 대한민국 스포츠계가 인권침해의 온상이 되어 병들어가는 것은 어쩜 자연스런 현상이다. 현재와 같은 구조에선 제2의 심석희, 제3의 심석희는 나올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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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스포츠가 이렇게 된 데엔 우리 사회의 극단적 경쟁구조와 심리가 연결되어 있다. 스포츠란 경쟁을 필수요소로 하는 제도화된 육체적 기술이다. 여기에 우리 사회의 극단적 경쟁구조와 경쟁심리가 결합되고 격렬한 화학반응을 일으켜 스포츠계는 악마들의 싸움터가 되었다. 우리 사회에선 어떤 분야에서든 1등이 되어야 한다는 심리가 있다. 1등이 안 되면 다 보잘 것 없다. 1등이 안 되면 안 하느니 만도 못하다. 1등이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이다. 1등은 부와 명예를 모두 가져간다. 서울대를 들어가야 하는 이유는 그 출신의 일원이 되어야 대한민국에서 행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출신이 되어야 대한민국의 명예와 부를 독점하기 때문이다. 스포츠계의 극단적인 1등 심리는 이런 구조 속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들의 자화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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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스포츠계의 정화는 현상적 대응을 넘어 보다 근본적이어야 한다(이말은 현상적 대응을 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그것은 그것대로 즉각하라). 코치와 감독의 일탈을 징계와 처벌로만 대응한다고 해서 스포츠계가 바뀔 가능성은 없다. 극단적 경쟁구조와 심리를 완화시키지 못하면 궁극적 변화는 기대하기 힘들다. 대한민국 사람들이 연대의 정신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1등만이 세상을 사는 것이 아니고 꼴등도 당당히 살 수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 선수들에게 1등을 못해도 미래가 있다는 희망을 주어야 한다. 공부와 병행하지 못하는 운동은 우리가 바라는 진정한 스포츠가 아님을 알게 해야 한다. 
자기 생각을 말과 글로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은 어떤 사회에서도 악마의 노리개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것이야말로 근본적인 인권침해다. 우린 그런 운동선수를 거부해야 한다. 우린 그런 운동선수를 키워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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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스포츠인은 자유롭고 독립적인 존재이어야만 한다. 그런 인간은 개인적인 노력과 함께 우리 사회의 구조개혁을 통해 탄생한다. 구조개혁 중 대표적인 것이 복지제도의 강화다. 서구사회에서 토마스 바흐와 같은 사람이 탄생할 수 있는 것은 복지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복지제도야 말로 과도한 경쟁구조와 심리를 완화시켜 자유롭고 독립적인 인간을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2019. 1.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