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장/교육

법학교육의 위기,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

박찬운 교수 2018. 6. 16. 05:04

법학교육의 위기,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


나는 2년 전 오늘 이곳에서 ‘법학교육의 위기, 소통부재의 현실’이라는 글을 통해 로스쿨 이후 법학교육의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그것은 로스쿨이 도입되고 나서 대학의 법학교육이 사라져 가고 있다는 것을 말한 것이고 하루 빨리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실한 호소였다. 그런데 지난 2년 간 이 문제는 단 1밀리미터도 전진하지 못했다. 논의는 전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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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어 주 전에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학교를 방문했다. 교수들과 간담을 원한다고 해서 기대를 걸고 참석했다. 그런데 박장관이 와서 간담을 하려고 하는 주제를 듣고서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장관이 교수들로부터 듣고자 하는 것은 변호사 시험을 어떻게 개선했으면 좋겠느냐였다. 시험 출제형식은 어떻게 하고... 선택과목 시험은 어떤 식으로 개선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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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자리에서 단도직입적으로 한마디 했다. “그런 것도 중요하지만, 모처럼 장관이 직접 학교에 오셔서 교수들과 이야기를 한다면 좀 더 중요한 문제를 이야기했으면 좋겠습니다. 위기에 빠진 한국의 법학교육에 대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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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말을 하고 속사포처럼 준비해간 이야기를 했지만 분위기는 영 썰렁했다. 장관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자신의 관심사는 그게 아니라 변호사 시험에 있다는 것 같았다. 이어지는 논의도 거기에 국한되었고... 한 숨이 나왔다. 저런 주제가 일국의 장관이 대학에 와서 교수들과 논의해야 정도로 중요한 것인지... 심히 의문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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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꺼낸 말은 이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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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쿨이 도입된 지 어느새 10년째다. 문제가 많은 제도임이 분명하나, 시간이 가면서, 로스쿨은 대한민국의 법조인 양성기관으로 정착될 것이라 믿는다. 이제는 로스쿨을 비난하기 보다는, 그것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를 논의하는 게 필요한 시점이다. 로스쿨을 개선해 유능한 법조인을 양성하는 한편 한국 법학교육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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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 여기에서 시급히 논의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 한 가지만 말하고자 한다. 로스쿨의 문제가 아니라 로스쿨이 만들어짐으로써 문제가 된 대학(학부)과정의 법학교육이다. 나는 이 문제를 로스쿨 출범 이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말해 왔는데, 도무지 개선될 조짐이 안 보이니, 안타까운 마음 금할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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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과정의 법학교육이란, 로스쿨 생을 위한 교육을 말하는 게 아니라, 학부생들을 위한 교육을 말한다. 로스쿨을 운영하는 전국 25개 대학의 법학부가 올 해로서 완전 폐지되었다. 로스쿨 학생이 아닌 일반 대학생들을 위한 법학교육은 사실상 문을 닫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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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쿨은 로스쿨 학생을 위한 것이지, 일반 학부 대학생을 위한 과정이 아니기 때문에, 거기에서 학부생을 위한 과목을 만들어 운영할 순 없다. 과거 법대가 있을 때는 법대의 모든 커리큘럼은 법대생뿐만 아니라 비 법대생에게도 오픈되었다. 법학 복수전공자 혹은 부전공도 가능했던 이유다. 그러나 이젠 그게 불가능하다. 로스쿨생이 아닌 비법대생들은 매우 제한적으로 제공되는 교양법학 정도에 만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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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쿨을 갖지 못한 대학에는, 아직도 법대 혹은 법학과가 있지만, 그런 학교도 법학교육은 위기다. 로스쿨 이후 법학분야에 투자를 하지 않는 것은 물론, 학교에 따라서는 폐과를 서슴지 않는가 하면, 타 학과와 통합한 다음 법학과목을 줄이기도 한다. 전국적으로 법학은 사양학문이 되었고, 이제 법학이란 오로지 로스쿨생의 실무법학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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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쿨이 도입되기 이전을 생각해 보자. 법대에 들어갔다고 해서 모두가 사시를 보는 것도 아니다. 그 보다 훨씬 더 많은 학생들이 다른 분야(공무원, 회사원, 언론인 등)로 진출해 법학공부를 배경으로 일했다. 그 숫자가 25개 로스쿨 대학을 기준으로 4-5천 명에 달했다. 그런데 이젠 이런 인재가 없어졌다. 더욱 비 법대생들에겐 법학교육 자체가 불가능해져 법학소양을 갖춘 인재 양성에 적신호가 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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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쿨 도입여부와 관계없이 대학에서의 법학교육은 여전히 필요하다. 세상만사가 법과 관계되지 않은 게 없는 데, 법학교육을 오로지 법률가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만 제공하는 것은, 그 자체가 비정상적이다. 당연히 학부에서 법학을 배울 수 있어야 한다. 사실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로스쿨 도입과 법대폐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이었다. 일본은 로스쿨을 도입하면서도 법대를 없애지 않아 우리와 같은 문제를 자초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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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에 법대를 없앰으로써 법학분야의 일반대학원도 사양길에 들어섰다. 일부 대학을 빼고서는 대부분 대학의 법학분야 일반대학원의 입학자는 격감했고 특히 풀타임 대학원생을 발견하긴 하늘의 별따기가 되었다. 법대가 없어짐으로써 생긴 현상이다. 이제 법학을 학문으로 선택해, 대학이란 공간에서 몰입하여 연구하는 예비학자는 없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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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법학교육은 일대 위기다. 이런 상황에서도 딱히 대응책을 논의하지 못한다. 아니, 논의를 회피한다. 머리를 싸매고 학부생들을 위해 어떻게 법학교육을 제공할 것인지, 법학의 학문성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지를 놓고 토론하고, 뭔가 생산적인 대안을 만들어내야 하는데, 교육부도, 사법당국도, 각 로스쿨도 개점휴업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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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가보겠다는 것이다. 완전히 망해보고 나서야 움직이겠다는 자세다. 이것도 대통령이 나서 한 마디를 해야 움직일 것 같은 분위기다. 한국인의 소통능력이 이 정도에 불과하다는 데에, 법학교수의 한 사람으로서, 자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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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런 식으로 법학교육을 하는 문명국가는 없다. 이것이야말로 대한민국의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의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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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에 호소한다. 이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틀을 만들어라. 법무부, 교육부, 대법원,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등이 참여하는 태스크 포스 팀을 만들라. 거기서 로스쿨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 학부에서 법학교육은 어떻게 할 것인지 논의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