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장/기타

기자는 자성을 넘어 행동으로 보여야 -권석천을 환영하며, 그를 기대하며-

박찬운 교수 2019. 1. 20. 19:32

기자는 자성을 넘어 행동으로 보여야
-권석천을 환영하며, 그를 기대하며-



권석천이 돌아왔다. 그는 조중동으로 분류되는 중앙일보가 매일같이 아궁이의 불쏘시개로 들어갈 때 가끔 그것을 멈추게 하는 기자다. 그의 칼럼을 읽을 때마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어떻게 중앙일보에서 이런 기사가 나올까? 어떻게 그곳에 이런 기자가 있을까? 혹시 그는 중앙일보가 만일의 사태를 위해 들어놓은 보험이 아닐까?.... 누가 보아도 그는 중앙일보의 손석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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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한동안 Jtbc에 있다가 다시 중앙일보로 적을 옮겨 글쓰기를 시작했다. 어제(2019. 1. 15)자 칼럼(나는 왜 방조범이 되었나)은 사법전문기자답게 사법농단에 관한 글이다. 내용을 읽어보니 역시 권석천이다. 그의 칼럼은 사법농단에 관한 기자로서의 자성의 목소리를 담았다. 사법농단은 법원만의 책임이 아니라는 것이다. 기자인 자신에게도 방조의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모두가 공감할만한 내용이니 그의 기자로서의 진정성이 돋보인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 법조기자 시절 중요사건 판결을 놓고 논란이 일 땐 해당 판사가 가입한 단체부터 따졌고, 판사 성향에 고배율 현미경을 들이댔다. 판결이 편집 방향과 맞지 않으면 논리와 맥락을 살펴볼 겨를도 없이 편향 판결로 몰아붙였다. 나는 차마 부인할 수가 없다. 그런 보도들이 ‘물의 야기 판사’를 분류하고 재판에 개입하는 빌미가 됐으리란 걸. 나는 그렇게 사법 농단을 방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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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자성은 자신을 넘어 언론, 정치권과 검찰로 이어진다. 이것은 사법농단은 우리 사회 전체에 일정부분 책임이 있다는 것으로 집단자성을 촉구하는 이야기다. 이것도 공감할 수밖에 없다. 사법농단이 어떻게 법원만 잘한다고 해서 해결될 것인가. 법관들만 잘한다고 해서 앞으로 이런 일이 재현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는가.


“사법농단이란 드라마엔 대법원과 청와대만 있었던 게 아니다. 언론도 있었고 국회도 있었고 검찰도 있었다. 정치권과 언론이 아직도 ‘법원 내 보수-진보 갈등’ 레퍼토리를 틀어대는 마당에 사법만 달라진다고 고쳐질 문제인가.” 

그러나 그의 글 마지막 단락은 나를 혼란스럽게 한다. 그는 김두식 교수의 ‘법률가들’이란 책에 나오는 한 구절을 소개하면서 매우 비탄조의 한마디로 글을 맺는다.


“김두식 경북대 교수의 『법률가들』은 해방 후 눈앞의 고문과 학살을 외면한 채 기소하고 유죄 판결했던 판검사들 행로를 추적한 뒤 “피의자에게 따뜻한 태도를 보이는 것 정도가 그나마 괜찮은 판검사들이 선택하는 길이었다”고 말한다. 김두식은 아프게 묻는다. “그 시대에 훌륭한 판검사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 ?” 나도 같은 질문을 던져보려 한다. 과연 이 시대에도 훌륭한 판검사, 기자, 정치인이 존재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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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은 권기자의 진심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물론 보기에 따라서는 문장의 수사에 불과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만일 저 마지막 말에 일말이라도 강조점이 있다면, 나는 동의하기 어렵다. 저 말은 사법농단을 용인하는 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저 말은 우리 모두 죄인이니 사법농단의 법관들에게 돌을 던질 수 없다는 말로 들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욱 사실관계도 틀리다. 지금 이 시대는 해방 후 혼란기와 비교할 수 없다. 비록 일제 잔재를 청산하지 못했지만 우리에겐 새로운 사고를 하는 무시할 수 없는 수의 인재들이 있다. 이 시대엔 해방 후와 달리 훌륭한 판검사, 기자, 정치인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들이 말하고 글을 씀으로써 사법농단 사태가 여기까지 왔고 양승태를 드디어 검찰로 소환한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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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권석천의 글 마지막 단락은 고쳐져야 한다. 그는 지금은 과거와 다르다고 했어야 한다. 그는 훌륭한 법률가들과 기자들이 웅크리지 말고 앞으로 나와야 함을 이야기했어야 한다. 본인이 철저히 공개적으로 반성했으니 이제부턴 스스로 사법농단의 철저한 해결을 위해 앞장설 것이라고 말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야말로 진짜 공범이 되는 것이다. 알고도 안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사이비 기자가 아니겠는가.(2019. 1.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