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장/기타

인권 관련 학회의 필요성

박찬운 교수 2019. 6. 10. 04:52

 

지난 토요일(2019. 6. 8) 서울대 국제대학원에선 인권법학회, 인권학회, 국가인권위원회가 공동주최하는 인권학술대회가 열렸습니다. 두 학회가 중심이 되어 이런 학술대회를 하는 것은 처음있는 일로 자못 역사적인 일입니다.

아래 글은 학술대회 개회식에서 제가 말씀드린 축사입니다. 이 학술대회의 취지를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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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오늘 주말인데 쉬지도 못하시고 많은 분들이 이 학술대회에 참석해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특히 이 학술회의를 공동으로 주최할 수 있도록 협조해 주신 국가인권위 최영애 위원장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인권법학회와 인권학회가 공동으로 이 같은 학술회의를 하는 것은 처음입니다. 저는 우선 현 시점에서 두 학회의 시대적 존재의의에 대해 잠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것은 두 학회의 창립배경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세월 수 십 년 간 인권증진을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때로는 거리에서, 때로는 법정에서, 때로는 국제기구에서, 많은 인권운동가들이 우리의 인권증진을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그 결과 우리의 인권수준은 세계가 놀랄 정도로 바뀌었습니다. 제도적 개혁이 있었고 그에 따라 현실이 바뀌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설립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인권의 트렌드도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독재시절 우리의 주된 관심사는 자유권 분야의 인권증진이었습니다. 물론 이런 관심사는 지금도 지속되고 있지만 최근 들어 사회권 분야가 크게 주목 받고 있습니다. 사회권 분야는 그 특성상 국가가 단순히 소극적 의무를 다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국가가 적극적 의무를 다해야 하는데 그 과정이 쉽지 않습니다. 당사자를 과연 권리의 주체로 인정할 것인가, 국가의 의무의 내용은 무엇이어야만 할 것인가, 의무 이행을 위해서는 국가는 어떤 구체적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인가, 국가가 의무이행을 하지 않는 경우 소송을 통해 국가로 하여금 이행을 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은 가능할까... 

이런 상황에서 인권증진을 기한다는 것은 이제 공부, 연구 그 자체와 관련이 있습니다. 정부 기관이나 국회가 인권증진을 위해 구체적 행동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것을 가능케 하는 논리가 있어야 합니다. 그 논리를 누가해야 제공해야 할까요? 당연히 인권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해야 할 몫입니다.

제가 변호사와 인권기구의 정책 담당자로 일하다가 대학으로 간 게 벌써 13년이 되었습니다. 처음 몇 년은 오랜 기간 실무가로 일한 것을 기초로 학생을 가르쳤고 그것에 기초해 글을 썼습니다. 그런데 5-6년 지나니 바닥이 나더군요. 도저히 실무적 사고만으로 인권을 연구하고 가르칠 수 없다는 판단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본격적인 의문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그동안 공부하고 몸에 익혔던 지식이 너무 피상적이란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학자로서 무언가 하기 위해선 그것을 돌파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본격적으로 인권에 관한 학문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두 개의 학회가 생겨났습니다. 먼저 인권법학회가 탄생했고 이어서 인권학회가 탄생했습니다. 이 두 개의 학회가 탄생한 배경을 저는 이렇게 이해합니다. 인권증진을 위한 학술활동은 크게 두 가지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는 토대학문 활동이고 나머지 하나는 그것을 이용한 응용학문 활동입니다. 인권학회는 바로 인권에 관한 토대학문 활동을 하기 위한 학회이고, 인권법학회는 그것을 토대로 우리사회의 인권을 실질적으로 바꾸어낼 수 있는 제도연구 활동을 위한 학회입니다.

인권학회는 넓고 다양한 시각으로 인권문제를 고민합니다. 철학적으로, 사회학적으로, 역사학적으로 인권문제를 파고 들어갑니다. 인권법학회는 그런 고민을 바탕으로 주로 법률적 시각으로 인권문제의 해결을 위해 고민합니다. 저는 이 두 학회가 연결되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학술활동을 할 때 우리나라의 인권연구는 제 궤도에 올라갈 것이라고 믿습니다.

오늘 이 학술대회는 그런 의미에서 매우 역사적입니다. 오늘 우리는 현 시점에서 논란이 되는 여러 인권문제에 대해 우리 두 학회 회원들이 중심이 되어 심도 있는 발표와 토론을 전개할 것입니다. 나아가 말미엔 변화하고 있는 환경 속에서 우리들의 젊은 세대들에게 어떤 인권교육을 어떤 방식으로 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이제 우리의 인권운동은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인권연구자들의 깊이 있게 연구한 것을 토대로, 인권운동가들이, 국가기관이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 여기 모인 연구자들의 역할이 큽니다. 우리 모두 인권증진을 위해 각자 처한 환경에서 최선을 다합시다. 끝으로 바쁜 시간을 쪼개서 오늘 학술대회를 준비해 주신 두 학회 관계자 여러분과 인권위 담당자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2019. 6.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