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인생/LUND 의 추억

사진으로 추억하는 룬드(3)(북구의 명문 룬드대학1)

박찬운 교수 2015. 12. 16. 22:01

-3- 사진으로 추억하는 룬드

 

북구의 명문 룬드대학(1)

-28세 교육부 장관의 나라 스웨덴의 비밀-

 


룬드대학 본관


나는 2012년 여름부터 그 다음 해 여름까지 룬드대학 라울 발렌베리 인권연구소의 객원연구원으로 일했다. 연구소는 바로 옆의 룬드대학 법학부와 특별한 관계에 있었으므로 나는 법학부 도서관과 법대교수 방을 자주 방문했다. 이로 인해 나는 룬드대학의 교육상황과 스웨덴 고등교육 시스템 전반을 이해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당시 나는 한국에서 온 학생들을 자주 만나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과 스웨덴의 교육문제에 대해서도 대화를 나누었다. 오늘 그 대화 중 한 부분을 여기에 옮겨 놓는다. 대화 상대자는 형호라는 학생인데, 나는 그 친구와 여러 차례 학교 이곳저곳을 함께 산책했다. 지금도 그 순간이 머릿속을 스쳐간다.

 

룬드대학에서 가장 오래된 쿵스후셋트(1584), 과거 덴마크 지배 시절 덴마크 국왕이 이곳에 오는 경우 거처하던 곳이다. 현재는 철학부 건물이다.


북구에서 가장 큰 대학 룬드대학의 역사

형호: 교수님 저는 사실 이곳을 오기까지 룬드대학에 대해선 거의 몰랐어요. 지금도 사실 잘 모르는데 우선 이 대학의 역사에 대해서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박교수: 좋은 질문이네. 어디를 가도 그곳 역사를 알아야 대화가 통하는 법이네. 룬드대학은 1666년 개교했지. 그 이전인 1658년에 스웨덴 왕국은 덴마크와 로쉴드 조약을 맺어 이 지역, 그러니까 스코네 지방을 스웨덴의 지배 하에 두게 되었지. 구스타프 왕가는 스코네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하자 바로 스웨덴화를 서두르게 되네. 그 방법으로 이 지역에 대학을 설립하게 된 것이야. 이 지역에 스웨덴 왕가가 지원하는 스웨덴 대학을 설치해 이 지역을 다스리는 인재를 양성하고 싶었던 것이지.

 

웁살라 대학의 옛본관, 지금은 학교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대학의 역사는 500년이 넘는다. 스웨덴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다.


참고로 이 지역은 스웨덴 왕가로선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을 거야. 덴마크를 코앞에 두고 있고, 당시로선 가장 중요한 산업인 농업이 스웨덴에서 가장 발달한 곳이 바로 이곳 스코네 지방이었거든. 이렇게 해서 룬드대학은 스웨덴 땅에선 웁살라 대학(1477)에 이어 두 번째로 문을 연 대학이 되네. 오랜 기간 스웨덴엔 이 두 대학밖에 없었다고 생각해도 될 정도로 룬드대학은 스웨덴, 아니 스칸디나비아를 대표하는 대학이었네.

 

룬드대학에 있는 이사이아스 테그너 동상. 테그너는 신부출신의 룬드대학 교수로 저명한 인문학자였다. 19세기 룬드대학을 부흥시킨 장본인이다. 룬드대학의 여러 동상 중 유일한 입상의 소유자다.


하지만 19세기 중반까지는 학생 수가 몇 백 명도 채 안 되는 작은 학교에 불과했어. 유럽의 변방대학 수준을 넘지 못한 것이지. 그러다가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덴마크와 붙어 있는 이 지역이 주요 산업기지로 떠올랐고, 그 덕에 룬드대학의 학생 수는 급격히 불어나기 시작했지.

룬드 옆에 말뫼가 있잖니. 스웨덴 제3의 도시잖아. 사람들이 이 지역으로 몰려들 수 있는 충분한 물적 기초가 만들어진 것이지. 게다가 철도가 놓이니까 스웨덴 전역에서 이곳으로 쉽게 고등교육을 받기 위해 올 수 있었을 거야

물론 교수들의 역량도 한몫했지. 19세기 초 스웨덴 최고의 인문학자 이사이아스 테크너 교수가 여기 교수로 있었거든. 인기 스타 교수가 이곳에 있으니 이 학교가 전국적으로 관심대상이 되었겠지.


스웨덴 제3의 도시 말뫼, 룬드에서 기차로 10분 거리다.


이렇게 해서 룬드대학은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 지금은 무려 학생 수가 4만 명이 넘는 북구 최대 대학이 된 것이지. 엄청난 규모야. 스웨덴 전 인구가 1천만 명이 안 되는 데, 이 정도의 대형 대학을 만들었다는 게.


스웨덴의 대학 일반

형호: 교수님 이 기회에 스웨덴 대학 전체에 대해서도 간단히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박교수: 물론이지. 내가 여기에 오자마자 스웨덴 대학을 전반적으로 확인해 보았네. 자네도 알다시피 스웨덴은 고등교육까지 무상교육을 원칙으로 하는 복지국가네. 그렇다 보니 대학은 국가주도형일 수밖에 없지. 전국에 종합대학과 전문대학(전문화된 고등교육기관)47개 밖에 없네. 그 중에서 종합대학은 14개 밖에 없어. 룬드대학도 그 중 하나지.






스웨덴을 대표하는 대학들의 로고, 웁살라대학, 룬드대학, 스톡홀름대학, 우메오대학, 왕립공과대학, 스톡홀름 경제대학


종합대학은 기본적으로 연구중심대학이네. 실용적인 과학기술교육은 종합대학이 아닌 전문대학의 역할이지. 법대의 경우를 살펴보니 전국에 법학부를 가진 대학은 웁살라와 룬드를 비롯해 5개 대학 밖에 없네. 그러니까 대학 간 수준 차가 거의 없지. 여기선 한국처럼 SKY 같은 대학서열은 없네. 평등주의가 사회를 지배하는 스웨덴에선 그런 개념은 상상할 수 없지.

 

교수도 밥 사줄 필요가 없는 스웨덴 대학생, 그들은 왜 독립적인가

박교수: 형호야, 네가 여기 온지 몇 달이 되었지? 스웨덴 대학생들과 지금 기숙사도 같이 사용하고 아주 가깝게 지내지? 그 친구들 보니 어떻든? 한국의 네 친구들과 비교해서 말이야.

형호: 많이 다른 것 같아요. 제일 큰 차이는 이 애들이 나이는 저보다 어린데 정말로 어른스러워요. 뭐 하는 것 보면 한국의 어른들을 보는 것 같아요. 부모님으로부터 거의 도움을 받지 않고 사는 것도 확실히 한국과는 달라요.

박교수: 형호야, 잘 본 것 같구나. 그럼 왜 그 친구들이 그렇게 어른스러워 보일까? 왜 그렇게 독립심이 강할까? 그것을 좀 설명해야겠다. 내가 보기엔 그건 이곳 복지제도와 관련이 크단다. 여긴 대학도 무상교육이잖니. 부모로부터 학비를 받을 필요가 없는 곳이란다. 


룬드대학 식당, 학생회관에 있는 이 식당의 음식수준은 시내의 고급 레스토랑 수준이다.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선 학생들의 경우 1만원 정도가 필요한데, 교수와 선생이 각자 계산하면서 즐겁게 밥을 먹는다.


더욱 대학에 들어오면 학업보조금과 학자대출금이 자동적으로 나온단다. 그게 얼마인지 아니? 정확한 금액은 아니지만 대체로 150여만 원 정도 되는 것 같더라. 그 중에서 3분의 1은 완전무상의 보조금이고 나머지는 대출금이야. 대출금액은 대학졸업 후 직장에 들어가면 그 때부터 갚아나가는 돈이란다. 또 이 친구들이 대부분 학교 주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잖니.

그러니까 스웨덴 대학생에겐 매달 2백만 원 정도가 누구의 도움 없이도 수중에 들어온다고 보면 돼. 이런 상황에서 부모로부터 도움을 받을 필요가 뭐가 있겠니. 일찌감치 부모로부터 경제적으로 독립하는 거야. 부모가 감 놓아라 대추 놓아라 할 필요가 없고, 스스로의 인생을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것이지. 그래서 네가 본 스웨덴 친구들이 그렇게 자유롭고 독립적인 것이야.

박교수: 한국에서 교수님과 학생이 식당에 가서 밥을 먹으면 누가 돈을 내니?

형호: 그거야... 교수님이 내시지요.

박교수: 그런데 여기선 그럴 필요가 없더라. 왜냐고? 애들이 전혀 그런 것을 바라지 않아. 여기선 식당에 가서 밥을 먹으면 교수나 학생이나 다 자기 것만 내. 이게 바로 복지국가의 대학생이다.

아이다 하드지알릭 스웨덴 교육부 장관, 그녀는 사민당 당원이며 2015년 현재 28세의 젊은 여성이며 교육부 홈페이지에 남자친구가 있지만 아직 결혼은 안했다고 당당히 써놓고 있다. 


여기 젊은이들이 얼마나 독립적인지 단적인 예를 하나만 더 들까. 지금(2015년) 스웨덴 교육부 장관이 누군지 아니? 아이다 하드지알릭(Aida Hadzialic)이란 여성이야. 이 여성의 나이가 몇 살인 지 아니? 놀라지 말게. 만 나이로 28살이다! 이 친구가 룬드대학 출신인데 여기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할름스타드란 곳이 고향이야. 이 친구는 고등학교 때부터 사민당 당원으로 정치 운동을 열심히 했고 대학 졸업하자 마자 그곳 시장을 한 사람이야. 나이 23살에 말이야. 상상이 가니?

 

스웨덴 대학의 교육방법

형호: 교수님, 제가 여기에 와서 제일 부러운 게 여기 친구들은 우리보다 훨씬 여유가 있는 것 같아요. 공부도 우리보다 그렇게 어렵게 안하는 것 같고요. 제가 축구를 좋아하는 데 저녁이면 마음대로 공을 찰 수 있고요. 도대체 어떻게 이럴 수 있는 것이지요?

박교수: 그게 물론 이 친구들이 공부 안한다는 말은 아니지? 공부하는 방법이 우리와 다른 것이야. 나도 그게 너무 신기해서 지난 몇 달간 여기 교육과정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이제 그 비밀이 풀리더구나

우선 스웨덴에선 모든 학생들이 대학에 들어오지 않아. 고등학교 졸업생의 약 40프로 정도만이 들어오지. 대학에 들어오는 친구들은 모두 공부가 좋아서 오는 거야. 누구와 경쟁하기 위한 것이 아니야. 그러니까 공부 그 자체를 즐기면서 하는 것 같더구나. 

그리고 대학에서도 수업 진행방법이 우리와는 사뭇 달라. 법대의 경우를 말해 볼까. 아마 네가 공부하는 공대도 크게 다르진 않을 거다.

여기는 한 학기가 20주야. 한국보다 무려 4-5주나 길지. 그런데 한 학기 수강과목이 우리보다 절대적으로 적어. 우리는 한 학기에 6-7 과목을 듣지. 이들 과목을 한 주에 1시간이든, 2시간이든, 3시간이든 모두 듣게 되어 있어. 그러니까 수업을 따라가기가 얼마나 어렵니. 각 과목 예습, 복습, 거기에다 과제 수행.... 정말 제대로 공부하려면 밤을 새워도 못할 거야.



스웨덴 대학생들의 연중 최대 축제인 발보리 축제. 매년 4월 말경에 있는데 이날은 젊은이들에겐 광란의 하루가 보장된다.

룬드대학 주변의 축구장. 오후가 되면 잔디 구장에 나와 수많은 학생들이 축구를 한다. 여기선 남학생과 여학생이 함께 공을 찬다.


스웨덴 젊은이들은 노래 부르기를 좋아한다. 룬드 시내 한 가운데서 학생들이 연주하는 모습


그런데 이 친구들은 어떻게 하든? 20주인데도 수강하는 과목이 우선 적어요. 3-4 과목 정도에 불과해. 더욱 그 과목을 모두 한꺼번에 개설해서 한 주에 다 수강하는 게 아니야. 20주 중 10, 4, 4, 2주 등으로 나누어 한 주에 한 과목씩만 강의하지. 10주 동안 한 과목만 강의하고, 그게 끝나면 다른 과목으로 넘어가 4주 동안 그것만 강의하고, 그리고 그것이 끝나면 또 다른 과목을 4주 강의하고...

한 주에 강의하는 것도 두 번 정도 수업하는 게 전부야. 한 주는 교수가 강의하고 다른 한 주는 학생들이 발표하고... 그런 식으로 수업이 진행되니 아이들이 여유가 있지. 그리고 모든 학생들은 졸업 학기가 되면 논문을 써야 해. 이건 연구중심대학을 다니는 모든 학생들에게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거야.

한국에서 학부생들이 논문을 쓴다? 우리도 과거에 그것을 하긴 했지만 대부분 학교에서 별 도움이 안 된다고 폐지했지. 그런데 내가 여기 학생들 논문 쓰는 것을 직접 보니 거의 학위 논문 수준으로 쓰더구나. 우리 집에 지금 한 친구가 논문을 쓰고 있거든. 한 학기 동안 다른 것은 하지 않더라.

 

교수들의 문화

형호: 교수님께서는 한국의 교수님들과 이곳 대학의 교수님들을 비교하면 어떤 생각을 하세요? 크게 다른 점이 있는가요?

박교수: 하하하! 많이 다르지. 내가 제일 다르게 본 것은 역시 쓸데없는 경쟁을 하지 않는다는 거야. 요즘 한국의 교수는 쓸데없는 논문을 너무 많이 쓰거든. 논문 쓰느라고 연구를 못한다는 자조어린 말까지 하고 있으니... 그런데 여긴 그런 게 거의 없더라. 여긴 공부 그 자체로 승부를 보니까.

 

룬드대학 법과대학 교수들의 피카시간, 교수 연구실 앞에 이런 공간이 있어 매일 같이 이렇게 모여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눈다. 


스톡홀름의 남스톡홀름 대학 정치학부 교수 피카룸


물론 요즘엔 여기도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그래도 한국의 대부분 대학에서 하고 있는 것처럼 수치 경쟁은 덜 하지. 그리고 또 하나 부러운 것은 교수들 간의 대화문화가 좋더구나. 역시 스웨덴 피카 문화가 대단해. 교수 연구실에도 피카 룸이 다 있어서 하루에도 한 두번은 그곳에서 거의 모든 교수가 함께 커피를 마시고 대화를 해. 한국의 교수들은 한 번 문 닫고 자기 방 들어가면 그것으로 끝인데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