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인생/세상 이곳저곳

여행하는 인간, '호모 비안스'(Homo Vians)

박찬운 교수 2016. 7. 3. 19:28

여행하는 인간, '호모 비안스'(Homo Vians)

 

누구나 여행을 동경할 것이다. 미지의 세계로 나가 낯선 풍경, 낯선 사람, 낯선 문화를 경험해보고 싶은 것은 하나의 본능이다. 우리들의 조상의 조상이 저 아프리카 골짜기를 떠나, 세계 각처로 흩어져 나갔을 때 갖게 된 유전자가, 분명 우리 몸속 깊숙히 각인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의외로 각박해 지금 살고 있는 이곳을 쉽게 떠나지 못한다. 교통이 발전하고 물질적 풍요를 누리면서, 많은 사람들이 세계 각처로 여행을 떠나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평생 이 나라 국경을 넘지 못하는 사람들이 부지기 수다. 이 글을 보는 분들 중에서도 상당수는 거기에 해당할 지 모른다.

 

여행을 많이 못하는 분들에겐 죄송스럽지만, 개인적으론 다행스럽게도, 나는 여행을 많이 하는 축에 속한다. 아마 대학교수 중에서 나만큼 여행하는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일본을 시작으로 미국, 이어서 유럽의 여러나라, 그리고 중국과 동남아를 돌아다녔다. 물론 나의 경우는 순수한 여행이라기 보다는 대부분 공부와 관련된 여행이 많았지만, 학교로 온 이후엔 순수한 여행도 여러차례 시도했다. 실크로드 기행, 페르시아 기행, 나일문명 기행, 터키 기행 등이 그것이다.

 

나는 늘상 두 가지를 강조한다. 독서와 여행이다. 이 둘의 관계는 뗄 수가 없다. 내가 만들어 유행시킨 말이 있다.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 여행은 걸어다니는 독서" 독서와 여행은 인간을 풍요롭게 만든다. 불완전한 인간을 성장시키는 데 이 둘만한 것이 없다. 그러니 자신을 성장시키고자 하면  이 둘을 꾸준히 병행해야 한다.

 

과거를 돌이켜 보면 여행이란 꿈은 나에겐 과분한 것이었다. 시골 벽촌 빈한한 가정에서 태어나 자랐기 때문에, 여행을 목적으로 먼 길을 떠난다는 것은, 감히 생각하지 못했다. 대학 이전 내가 집을 떠나 하루 이틀이라도 잠을 자고 왔던 기억은 손가락으로 셀 수 있는 정도다. 초등학교 3학년 시절 아버지를 따라 처음 서울에 왔던 일, 서울에 이사를 한 다음 방학을 이용해 몇 번 장항선을 타고 외가가 있는 충남 광천을 간 일, 교교 2학년 때 경주로 수학여행을 간 일 정도가 여행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학에 와서도 가본 곳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1학년 때 고교동창들과 함께 일주일 시간을 내, 완행 호남선을 타고 목포에 도착해, 진도, 보길도, 완도를 거쳐 해남 등지를 배낭여행한 게, 제일 기억에 남는 여행이었다. 고시 공부를 했던 관계로 몇 개의 절을 가, 그곳에서 방학을 나지 않았다면, 대학시절 기억에 남는 낭만은 전무했을 것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여행가 김찬삼 교수, 그는 이렇게 오토바이를 타고 세계를 누볐다.

 

차를 운전하며 세계여행을 하는 김찬삼 교수 그리고 그가 가지고 다닌 여행용품

 

하지만 이 기간 중에도 여행의 꿈을 언제나 가슴 속에 품고 지냈다. 그 꿈을 갖게 한 일등공신 중의 하나가 김찬삼 교수의 세계여행기다. 돈이 있어도 여행을 자유롭게 할 수 없었던 시절, 한국의 한 여행가가 탄생했다. 지리학자인 그는 50-60년대 3번에 걸쳐 세계여행을 떠난다. 자그만치 160개국, 1천개 도시를 다녀왔고, 간 곳을 컬러사진으로 담아왔다. 비망록에 곳곳의 신기한 이야기를 깨알같이 적어왔다. 그리고 그것을 컬러 도판의 여행기로 우리들 앞에 내놓았다. 

 

김찬삼 교수가 3차례 걸쳐 여행한 여행지. 5대양 6대주 안 간 곳이 없다.

 

아마도 한반도 출신으로서 이런 여행가는 유사 이래 처음일 것이다. 교통이 발달하고 여행이 자유스런 오늘날도 쉽게 나오기는 어려울 대 기록이다. 나는 중고교 시절 도서관에서 이 컬러 여행기를 심심할 때면 넘겨보았다. 그리고 언젠가 나도 그의 뒤를 따라 저곳을 가보리라 다짐했다.

 

김찬삼 교수의 세계여행기

 

김찬삼 교수가 여행 중 쓴 비망록

 

지난 달부터 우리 대학 박물관에선 아주 흥미있는 전시회가 진행되고 있다. '여행하는 인간, Homo Vians'라는 제목의 전시다. 말 그대로 여행에 관한 전시회다. 여행의 역사가 한 눈에 들어온다. 그 속에 여행가 김찬삼의 코너를 따로 만들어 그를 기념하고 있다.

 

오늘 나는 여기에서 김찬삼 교수가 권하는 여행원칙 몇 가지를 소개한다. 수십 년 전에 김교수가 한 이이야기지만 지금도 세계여행을 하는 사람들에겐 그 말 대부분이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1. 여행의 목적은 지리학적 연구와 인간수업이다. 그러므로 실현가능한 목표를 세우고 그에 맞게 준비를 한다. 그 중에는 신문과 방송의 국제면에서 현지정보를 얻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또한 최신의 현지 지도와 정비된 카메라를 준비한다. 그리고 현지어를 기본회화정도 배워간다.

2. 건강을 유지한다. 이를 위해 걷기와 맨손체조를 생활화한다.

3. 교통편은 가능한 한 최염가로 택하고 복장은 화려하지 않아야 하며 숙소는 호텔이 아닌 게스트 하우스나 펜션같은 여행자 숙소를 택하고 식사는 가능한 한 그 지역의 전통시장에서 해결한다. 이는 세계사람들을 만나 보편적인 지식을 얻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검소한 여행이어야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4. 지리학자로서 지형, 농산물, 돌, 토양에 대한 관찰이 제일의 확인사항이다. 현지에서 눈으로 보고 몸으로 직접 느끼면서 카메라에 담는다.

5. 여행 중 아무리 피곤해도 취침 전에 여행상황과 금전출납을 정리하고 나날의 여행코스를 지도에 기입한다.

6. 위급할 수록 미소를 잃지 않는다. 영어를 쓰고 중남미에서는 스페인어를 쓰는 데 이것이 안 통할 때는 웃는다. 미소야말로 신이 준 최상의 의사소통 수단이다.

 

(2016. 7.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