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인생/영국이야기

영국이야기 36 Old is beautiful!

박찬운 교수 2016. 12. 22. 00:13

영국이야기 36


Old is Beautiful!

-도시 건축으로 보는 선진국-

 




런던 거리를 활보하다보면 고색창연한 건물들이 많다. 궁전, 교회 같은 건물은 보통 수세기의 역사를 갖고 있는 게 보통이다. 일반 건물도 100년은 기본이고, 웬만하면 150-200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런던시내의 리모델링 공사현장, 신축공사장인 줄 알고 가보았더니 건물 전체를 리모델링하고 있었다. 촘촘한 비계를 보면 이들의 공사방법이 얼마나 꼼꼼한 지를 알 수 있다. 좁은 공간에서 공사를 하기 때문에 현장 사무실도 저 비계 위에 설치되어 있다.


런던 시내 건물들은 대체로 그런 정도의 나이를 먹었지만, 보수에 보수를 거듭하고 있어, 앞으로도 얼마를 더 생존할지 가늠하기 어렵다. 내가 지난 몇 달 동안 런던 시내 이곳저곳을 누볐지만 건물 신축공사현장을 거의 본 적이 없다. 내가 본 것은 죄다 보수공사였다. 선진국을 왜 developed country라고 하는 지 이제 확실히 알 것 같다. 


 

내가 있는 런던 대학 근처 건물. 한 블록 전체가 하나의 이어진 건물이고 이것을 도로가 둘러싸고 있다. 로마시대 인슐라의 원형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현재의 런던은 그 한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city of London(런던은 행정구역상 1city32Borough로 되어 있음)에서 시작하여 계속 확장되어 온 것이다. 원래 유럽의 도시는, 과거 로마시대부터 도시계획(city planning)이란 개념이 있어, 중세 때 만들어졌건, 근대에 만들어졌건 일정한 형식을 갖추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게 인슐라(insula)라는 도시 건축양식으로, 이것은 사방 네 개의 도로에 의해 둘러싸인 공간(블록, 혹은 그런 공간 속에 있는 집단주거시설, 곧 아파트먼트를 의미함)을 의미한다. 로마의 도시는 이 블록에 주거 목적이든 상가 목적이든 건물들이 들어섰다.


 

로마시대의 인슐라. 로마 근처의 항구도시 오스티아 유적. 한 블록 전체가 하나의 이어진 건물로 채워져 있다. 저 건물들 1층은 상가였을 것이고 2층 이상은 보통 주거공간으로 사용되었다. 안으로 들어가면 중정이 있다.(사진 위키피디아)



지금도 유럽 어느 도시를 가도 만나는 게 바로 이런 인슐라 개념의 도시 공간이다. 백 미터, 이백 미터 연이어 지어진 장방형의 건물이 사방 4개의 도로에 의해 포위된 그 블록 말이다. 이런 도시계획 개념은 유럽인에겐 아마도 문화 DNA(도킨스는 이를 밈이라 했음)가 되어 지난 2천 년 이상 이어져 왔다. 

 

유럽은 어딜 가도 우리처럼 큰 대도시가 흔치 않다. 우리가 익히 아는 도시라도 해도 인구 백만을 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다만 런던이나 파리 정도가 우리 식으로 볼 때 대도시인데, 이들 도시가 이렇게 커진 것은 산업혁명 이후 농촌인구의 급격한 유입 때문이었다.

 

유럽 최대의 도시 런던은 18세기 후반부터 일어난 산업혁명의 발상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많은 농촌인구가 런던으로 유입되어 공장노동자가 되고 도시 빈민을 형성하는 바람에 주거 환경은 비참한 지경에 이르렀다. 칼 맑스는 런던에서 이것을 목격하고 자본주의를 저주했고 그것은 결국 망할 수밖에 없다는 신념을 가졌던 것이다.

 


런던 홀랜드 파크 근처의 고급 주택가. 고급 저택의 경우는 집이 연결되지 않은 경우도 있다. 저들 저택도 내부로 들어가면 뒤에 건물로 둘러싸인 정원(courtyard)가 있다.



영국이 위대한 것은 그 상황을 방치하지 않고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그 환경을 개선해 왔다는 것이다. 그 본격적인 움직임이 빅토리아 여왕 시기에 이루어졌으니 대략 19세기 후반의 일이다. 런던 곳곳의 빈민촌이 철거되고 거기에 매우 견고한 벽돌조 건물들이 들어섰다. 물론 그것도 위에서 말한 유럽 전형의 블록개념으로 말이다


지금 런던 시내 어딜 가도 도로 가에 100미터, 200미터씩 연결된 집들이 있다. 이들 건물은 대개 밖에서는 안 보이는 중정(건물로 둘러싸인 정원)을 가지고 있다. 중정은 블록 내의 주민들에겐 하나의 커뮤니티 공간이다. 꽃과 나무로 조경이 된 이 정원은 주민들의 쉼터이자 언제든지 모일 수 있는 광장 역할을 하기도 한다. 19세기 후반 대대적인 도시정비사업을 통해 런던의 주요지역은 이런 형식의 건축물로 한 단계, 두 단계 업그레이드 되었다. 


유럽도시는 근대에 와서 도시가 확장되었음에도, 한 가지 특징은 도시 한 가운데에 주거공간이 많다는 사실이다. 런던의 경우 보통 4-5층의 건물이 즐비한데, 이들 건물을 보면 1(여기에선 그라운드 플로어라고 해서, 0층이다)엔 상가, 2층부터는 주거공간이다. 시내 한 가운데 건물이 이러니까 도심이 공동화될 염려가 없다.

 

이것은 우리와 매우 다른 양상이다. 과거엔 우리도 도시 한 가운데 사람들이 많이 살았지만 지금은 딴판이다. 한번 한밤중에 종로나 을지로를 가보라. 낮엔 사람들이 그렇게 바글바글 댔음에도 개미 한 마리 지나가지 않는 정적의 공간이다. 이게 바로 도시 공동화 현상으로 현대 도시의 문제는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다


도시는 사람이 밤낮으로 살아야 건강하고 활기가 있다. 거기에서 문화와 전통이 성장하고 역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유럽 여행에서 이런 도시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나라의 도시문제를 생각하면 많은 것이 보일 것이고, 우리 도시가 나아가야 할 방향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런던 대학 본부건물인 세니트 하우스(Senate House), 20세기 초 건물인데, 주변 건물과는 매우 이질적인 건축양식을 갖고 있다. 건립과정에서 매우 논란이 많았다고 한다. 저 건물은 2차 대전 중 정부의 선전성 건물이었다. 저곳에서 조지 오웰의 처가 근무했다고 한다. 오웰이 쓴 <1984년>에 나오는 진리부가 아마도 저런 식의 건물이었을 것이다.



런던은 다른 유럽도시처럼 고색창연한 건물과 정형성을 갖춘 건물을 높이 평가한다. 그럼에도 도시계획을 잘못했는지 런던 시내에도 가끔 주변 건물과 확연히 튀는 빌딩을 볼 수 있다. 필시 건축 당시 그런 건물이 들어서는 것에 대해 논란이 있었을 것이다. 이런 건물은 기능적으론 편할지 모르나 건축문화와 전통을 중시하는 입장에선 결코 바람직한 건축물이라고 할 수 없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영국 사람들은 옛날 건축물 보호에 엄격한 지침을 갖고 있다. 보호가치가 있는 건물을 몇 단계 등급(Grade 1, Grade 2*, Grade2)으로 나누고 그것에 따라 철저하게 개보수 제한을 하는 것이다. 현재 이런 건물은 런던을 비롯해 영국(잉글랜드 및 웨일즈) 전역에 약 40만 개가 있다고 한다


이렇게 옛날 건물에 대한 보호가 철저하다보니 우리처럼 재건축, 재개발 방식의 도시정비란 런던에선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식 도시정비는 과거의 흔적을 완전 무로 돌린 다음 거기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개념이다. 런던 사람들, 아니 영국 사람들에겐, 그런 도시정비는 있을 수 없다. 철거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마저도 어떻게 해서라도 보존하고 내용을 바꿔 새로운 것을 담는다. Old is Beautiful!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케인즈나 버지니아 울프가 살았던 블룸즈베리 타비스토크 공원 근처의 아파트. 지금은 저 건물 대부분이 모두 런던대학의 연구소나 강의실로 사용되고 있다.



내가 있는 블룸스베리는 영국(대영)박물관 근처를 말하는데, 대부분 건물이 빅토리아 여왕 시절 또는 19세기 초에 만들어졌다. 그 당시엔 상당수가 주거용 건물로 사용되었지만, 지금은 주거용 보다는 공공용도로 많이 사용된다. 특히 이곳은 런던대학교가 들어와 있기 때문에 옛날 주거용 아파트(이곳에선 이것을 Flat이라고 함) 대부분이 학교 강의실 건물 혹은 연구실로 바뀌었다. 겉은 그대로 둔채 내부를 리모델링해서 그렇게 만든 것이다.

 

경제학자 케인즈 등이 활동한 블룸즈베리 클럽의 주무대인 고든 스퀘어 주변의 아파트가 지금은 거의 전부 런던대학 건물이 된 것이 대표적 예다. 그런 강의실이나 연구실을 들어가 보면 현대식 건물 안에 만들어진 그것들과는 감이 확실히 다르다. 역사와 전통이 피부로 느껴질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공부하거나 연구하는 사람들마저 역사의 일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테이트 모던 미술관, 생폴 성당(맨 아래 사진 속의 돔 건물)과는 템즈 강을 사이에 두고 있다. 우뚝 솟은 굴뚝이 미술관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가보면 건물 자체가 현대 전위예술이다.



런던의 명물 중 하나가 테이트 모던이라는 현대미술관이다. 16년 전 세워진 세계 최대의 현대미술관이다. 1900년 이후 세계 현대미술을 알고 싶으면 여길 꼭 가봐야 한다. 템즈 강을 사이에 두고 생폴 성당과 마주하고 있는 데 외관을 보면 좀 특이하다. 미술관에 무슨 높은 굴뚝? 미술관이라고 하기에는 좀 폼이 안 난다.

 

알고 보았더니 이 미술관은 템즈강변의 화력발전소를 리모델링해서 만든 것이다. 이 발전소가 40여 년 가동하다가 1980년 대 초 가동을 멈추면서 철거여부를 두고 고민을 많이 한 모양이다. 결론은 뜯지 않고 이 발전소를 국립미술관으로 만들기로 한 것이다. 내부를 들어가면 정말 엄청난 면적의 전시시설과 거기에서 풍기는 생경함에 압도된다. 건물 자체가 전위 미술품이란 생각이 들 정도다.

 


내가 살고 있는 보우 쿼터.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유명한 성냥공장이었다. 그것을 리모델링해서 지금의 거주용 아파트로 만들었다. 아파트 입구는 과거 성냥공장 그대로다. 건물 중앙에 있는 거대한 타워에서 과거 공장의 규모를 엿볼 수 있다.



또 하나 예는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다. 나는 런던에 와서 우연하게 이 아파트에서 살게 되었는데, 한국 사람으로선 행운이다. 지난 몇 달간 런던에 사는 한국인들에게 이 아파트에 대해 물어보았지만 어느 누구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니까 아마도 한국인으로선 내가 이 아파트에서 처음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곳은 보우 쿼터(Bow Quater)라고 불리는 곳으로 700여 세대가 사는 런던에선 꽤 큰 아파트 단지다. 그런데 이 아파트는 보통의 주거단지가 아니다. 아파트 건물들은 모두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후반에 이르기까지 유명했던 성냥공장 브라이언 앤 메이 건물을 리모델링한 것이다.

 

이곳은 런던 시내의 동쪽에 해당하는 곳으로 산업혁명 이후 공장지대였다. 그중에서 브라이언 앤 메이 성냥공장은 아주 유명한 곳으로 19세기 후반 이곳에선 2천여 명의 여성 노동자들이 성냥을 만들었던 곳이다


19세기 영국의 공장노동자의 노동조건이 좋지 않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 중에서도 이 성냥공장은 특히 나빴다. 1888년 런던의 성냥공장 여성노동자들이 역사적인 집단파업을 일으킬 때, 그 발원지가 바로 이곳이었다. 그만큼 이곳은 영국 노동자들에겐 애환이 담긴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보우 쿼터의 가을. 내가 사는 곳은 사진 중앙 원통 모양의 아파트다.

 


이 성냥공장이 1979년 공장문을 닫으면서 한참 동안 이곳을 어떻게 할 것인지 논란을 벌렸다. 토론 끝에 이곳을 보존하기로 결정하는 데, 기상천외하게도 공동 아파트 단지로 개발한다는 것이었다. 그후 성냥공장의 정문과 공장의 상징인 타워를 그대로 둔채, 내부를 대대적으로 공사해 훌륭한 주거시설로 탈바꿈했다. 영국 시내에선 보기 힘든 수영장과 사우나 시설이 있는 고급 아파트로 변신한 것이다.

 

이 아파트에서 몇 개월 살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아파트가 매우 견고하다는 것을 체감한다. 벽체가 얼마나 두꺼운지 도무지 옆집, 윗집에서의 소음이 전달되지 않는다. 물내려오는 소리, 윗집에서 쿵쿵대는 소리가 일체 없다. 평가를 한다면 1등급 아파트다.


이게 영국 런던의 모습이다. 이 이야기를 끝내면서 하나의 바람을 말하고 싶다. 우리도 이랬으면 좋겠다. 이젠 더 이상 뜯지 말고, 갈아 뭉개지 말고, 과거를 안으면서 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하나의 전제가 있다. 제대로 된 장기적 안목의 도시계획과 튼튼한 건물이다.

 

100, 200년을 내다볼 수 있는 도로망과 공원 등의 도시기반시설을 만들고 거기에다 견고한 건물을 지어야 한다. 그래야만 그것을 고쳐가면서 오랜 기간 역사와 문화를 간직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야 진정한 선진국 developed country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