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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방문기 17-3 <범죄추정시각> 원죄를 낳는 일본 형사사법절차를 고발하다 -이가라시 변호사님에게 드리는 헌사-

박찬운 교수 2017. 6. 30. 06:57

일본방문기 17-3


<사망추정시각> 원죄를 낳는 일본 형사사법절차를 고발하다

-이가라시 변호사님께 드리는 헌사-




이가라시 후다바 변호사의 추리소설 <사망추정시각>, 이 소설은 일본에서 발생하는 소위 원죄사건(사건 용의자가 고문 등을 받아 억울하게 범인으로 몰려 유죄가 된 사건)을 추리소설화한 것이다. 일본의 후진적인 형사절차와 인권침해를 이 한 권의 소설로 고발한 것이다. 이번 강연이 끝난 후 이가라시 변호사가 내게 한 권을 가지고 와서 나는 호텔에서 단숨에 읽었다. 소설의 저자로 된 사쿠 다스키는 이가라시 변호사의 필명임

 

일변연 초청 강연을 마치고 일본 변호사들과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늦은 저녁식사를 했다. 헤어질 무렵 이가라시 변호사가 가방 속에서 책 세 권을 꺼내 내게 내 놓는다. 모두 그가 쓴 책들이다. 두 권은 형사법 관련 전문서적, 한 권은 한글로 된 소설이다. 겸연쩍은 웃음을 지으며 소설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한다. “박선생님, 제가 쓴 소설입니다. 일본의 형사절차 문제를 소설로 그린 것이지요. 몇 년 전 한국에서도 번역되었어요. 많이 팔리지는 않았지만....”


나는 이가라시 변호사로부터 책을 받으면서 속으로 이런 말을 속삭였다. ‘어떻게 저리도 성실한 사람이 있을까? 평생을 오로지 책을 보고, 글을 쓰는 변호사, 전문성을 드디어 소설로 연결한 분... 한 분야의 진정한 전문가란 바로 이런 사람을 말하는구나. 당신을 존경합니다.“


조금 더 이 분 아니 내가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이가라시 후다바 변호사님을 소개하고 싶다. 이 분의 올해 연세는 우리 나이로 86! 돌아가신 나의 어머니보다 한 살이 위다. 원래 문학도였다가 형사절차에 관심을 갖게 나서 변호사가 되겠다고 결심, 뒤늦게 사법시험에 도전해 30대 후반에서야 변호사가 되었다. 그럼에도 올해 그의 변호사 경력은 무려 50년째!


선생은 지금으로부터 60년 전 범죄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베카리아의 <범죄와 형벌>을 다른 전문가들과 함께 일본어로 번역해 출판했다. 그 이후 형사법에 관한 수많은 책을 출판했다. 내 서가에도 선생의 책이 여러 권 있다. 특히 내가 이십 수 년 전 처음으로 국제인권법을 공부할 때 선생의 책은 길잡이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러니 나는 오랜 기간 그분으로부터 사숙한 제자나 마찬가지다. 바로 이 분이 소설을 썼다는 것이다.


호텔에 들어오자마자 선생이 선물한 소설 <사망추정시각>의 첫 장을 넘겼다. 지은이 이름이 생소하다. 사쿠 다쓰키? 이가라시 변호사의 필명이다. 도대체 이 소설이 어떤 내용이란 말인가. 한 장을 넘기고 또 한 장 그리고 또 한 장... 이렇게 몇 장을 넘기니 도저히 읽기를 멈출 수가 없다. 어느새 나는 소설의 무대인 야마나시 현의 어느 마을을 활보하고 있었다.


내 오른 쪽에 앉으신 분이 이가라시 후다바 변호사님이시다. 아무리 보아도 80대 중반을 넘은 할머니 같진 않다. 나는 오래 동안 이 분의 연세를 70 전후로 알고 있었다.


이 소설의 줄거리는 대강 이렇다.

야마나시 현의 토건 사업자인 거부 와타나베 쓰네조의 딸 미카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사라졌다. 그리고 얼마 뒤 집으로 한 통의 전화가 온다. 1억 엔을 요구하는 유괴범의 전화다. 이 사건이 터지자 현 경찰은 수사본부를 설치해 수사에 착수했다. 와타나베 부부는 현금 1억원을 준비해 범인의 요구에 따르려 했지만 경찰의 개입으로 결국 돈을 건네지 못했다. 그 후 미카는 야산에서 시신으로 발견된다.


고바야시 쇼지라는 26세의 청년이 이 사건의 용의자로 체포된다. 그는 어느 날 아부라라는 산나물을 뜯기 위해 산에 갔다가 우연히 미카의 시신과 가방을 발견하고 가방 속에 들어 있던 4천 엔을 훔쳐 달아난다. 고바야시는 그것으로 인해 미카의 유괴살인범으로 몰린다. 그는 수사관들의 집요한 자백강요에 굴복하고, 제대로 된 변호도 못 받은 채 1심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는다.


이 사건의 항소심을 맡은 국선변호인 가와이 도모아키는 사건 기록을 보는 순간 고바야시가 누명을 썼다는 것을 직감한다. 가와이의 집요한 추적으로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하지만 항소심 재판부와 검찰은 요지부동. 재판부는 1심 재판결과를 굳게 믿고 가와이가 신청하는 증거신청을 외면한다


사건해결에서 가장 중요한 사망추정시각과 관련된 증인은 채택되었지만 예상했던 증언은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와타나베로부터 탄원서를 받아 냈고 ,피해자 어머니 미키코가 법정에 증인으로 나선 것이다. 미키코는 법정에 나와 고바야시의 음성이 1억 엔을 요구했던 전화 상의 그 음성이 아님을 증언한다.


가와이의 헌신적 변호에도 불구하고 항소심은 원심판결을 깨지 않았다. 다만 형량만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낮추었다. 그 순간 가와이는 좌절하지만 그것도 잠시, 가와이는 다시 일어서 진실을 향해 나아간다. 그의 끈질긴 추적은 이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이 소설은 극사실주의의 전범이다

스토리만으로는 이 소설이 다른 범죄소설과 무엇이 다른지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다른 류의 소설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소설의 구성과 묘사가 극사실주의적이라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일본의 형사절차를 정확히 알지 않고서는 도저히 쓸 수 없는 소설이다. 글을 읽다보면 소설을 읽는 게 아니라 묵직한 다큐 작품을 읽는 것 같다.


실제 일어난 사건을 민완한 기자가 파헤쳐나갔다고나 할까? 과연 이런 게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까? 허구적 사실 묘사를 소설의 요체라고 본다면 분명히 의문이 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글은 분명 소설이다. 어느 한부분도 허구 아닌 부분이 없으니 말이다. 다만 독자는 어제 일어난 유괴살인사건을 현장에서 생중계하는 듯한 글 솜씨와 정밀함에 한순간도 딴전을 필 수가 없다.

 

이 소설은 일본 형사절차에 대한 고발장이다

일본의 형사사법을 누군가는 정밀사법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완벽한 절차로 검찰이 유죄라 판단하고 기소하면 그 유죄율은 99.9%라는 것이다. 결코 무고한 사람을 유죄로 만드는 실수란 없다고 일본 사법종사자들은 자랑한다. 하지만 이 소설은 그 신화를 여지없이 깬다. 일본에서 왕왕 일어나는 소위 원죄(冤罪·원통한 범죄) 사건이 어떤 구조 하에서, 어떤 상황 하에서 일어나는지 알고 싶다면, 이 소설을 읽어볼 것을 권한다. 정밀사법의 정체를 알게 될 것이다.


일본의 형사절차에서 원죄를 생산하는 기본구조 중 가장 큰 문제는 자백중심의 수사다. 피의자를 지목하여 수사관들이 장기간 협박과 고문 그리고 회유를 반복하면서 자백을 이끌어낸다. 이 소설에서도 그것을 여실이 보여준다. 피의자 고바야시는 냉혈한 수사관 히라이의 강압수사와 하세가와의 회유에 굴복한다.


일본의 두 번째 원죄생산 구조는 자백을 가능케 하는 대용(代用)감옥이다. 우리와 달리 일본에선 피의자에 대한 수사가 경찰과 검찰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어떤 경우엔) 재판이 끝날 때까지 경찰서 유치장에 구금되는 일이 많다.(우리는 사건이 검찰로 송치되면 경찰은 수사에 더 이상 개입할 수 없고, 피의자의 신병은 구치소로 옮겨진다)


이런 상태이기 때문에 경찰에서 자백한 피의자는 검찰에 가서도 부인하기 힘들고, 급기야는 법정에 가서도 힘들다. 생각해 보라. 검찰에 가서 부인한 다음 다시 돌아갈 곳이 경찰서 유치장이라면 그 밤에 무슨 일이 벌어지겠는가. 담당 경찰관이 늑달 같이 달려들어 다시 자백을 받아내려고 온갖 협박과 고문을 하지 않겠는가? 그런 상황에서 어찌 그 피의자가 진술을 번복해 부인할 수 있을까?

 

이 소설은 형사절차에서 변호인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준다

무고한 사람이 범인으로 몰렸을 때 무죄가 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 정밀사법이란 미명 하에 형사법의 대원칙인 무죄추정 원칙이 사실상 유죄추정 원칙으로 변질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피의자가 무죄가 된다면 그 1등 공신은 분명 변호인이다. 누구 말대로 무죄를 받기 위해선 좋은 변호사를 만나야 한다. 돈만 좇는 게 아니라 정의와 진실을 추구하는 변호사를 만나는 게 급선무다.


이 소설에서 그 역할을 맡은 게 가와이 도모아키다. 그가 없었다면 고바야시는 2심에서 항소기각 판결을 받고 나락으로 떨어졌을 것이다. 그의 선고형이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낮춰진 것은 가와이의 헌신적 노력에서다. 하지만 현실은 그와 같은 변호인보다는 1심 변호인인 오카무라와 같은 변호사가 많은 게 사실이다. 가난한 고바야시 집안에서 모든 재산을 다 털어서 선임한 변호사가 한 일이라고는 변론요지서도 제출하지 않고 법정에서 선처를 구한다는 말 한마디뿐이었다.


만일 가와이 같은 변호사가 고바야시 옆에서 수사 초기부터 변호를 할 수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감히 수사관들이 고바야시를 이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해 고문하거나 협박해 자백을 받아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작가, 아니 이가라시 변호사는 이런 절차가 불가능한 일본의 형사절차와 그 속에서 변호란 이름으로 돈을 버는 파렴치한 변호사(현실에서 많이 발견되는)를 등장시켜 부조리한 사법정의를 고발한 것이다.

 

눈여겨 볼 대목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내 눈에 포착된 대목들 중 일부를 소개해 보겠다. 아마도 일반 독자라면 그냥 넘길 일이지만 법률가로선 그냥 넘길 수 없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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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판 너머에 초췌한 남자가 있었다. 이제 겨우 스물 일곱인데, 중년처럼 지친 얼굴이다.“


이 부분은 가와이가 국선변호인 된 다음 처음으로 도쿄 구치소에 가서 고바야시를 만나는 장면이다. 내 눈에 들어온 부분은 플라스틱 판이다. 변호인 접견을 하는 데 변호인과 의뢰인 사이에 플라스틱 판이 놓여 있는 것이다


이런 모습은 우리나라에선 일반 접견실에서나 볼 수 있지 변호인과 의뢰인 간의 접견에선 볼 수 없다. 우린 자유스런 상태에서 비밀접견이 보장된다. 일본의 사법절차가 얼마나 후진적인 지를 고발하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377

미안해요. 출근하면 가장 먼저 이 문서부터 출력해 주세요. 재판소에 가면서 바로 제출하고 싶으니까, 9시 반까지!“


이 부분은 가와이가 사무원 모치다에게 문서출력을 부탁하는 장면이다. 내 눈에 특별히 들어온 것은 재판소에 가면서 제출...’이라고 한 부분이다. 변호사가 법원에 문서를 직접 제출한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도 원래 이런 일은 사무원의 일이었다


그런데 일본에선 언제부터인지 변호사들이 이런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사무원을 여럿 쓸 수 없는 현실에서 일어나는 불가피한 현상이다.가난한 변호사들의 애환을 보는 듯해 애잔하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최근 젊은 변호사들을 만나다 보니 우리나라에도 이런 현상이 지금 일어나고 있다. 과거 변호사업계에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380

가와이는 고재 제3형사부로 또 뛰어갔다. 재판관이 식사하러 나가버리면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서기관에게 재판관을 만나고 싶다고 부탁하자, 간단한 회의에 사용하는 창문도 없는 작은 방으로 안내되었다. 5분쯤 아까 그 서기관과 양복 차림의 세 남자가 들어왔다. 재판관들이다.“


이 부분은 가와이가 항소이유서 제출을 연기받기 위해 재판관들을 만나는 장면이다. 우선 항소이유서 제출 과정이 우리나라와는 다르다. 우리나라에선 형사사건의 항소이유서는 항소재판부가 원심재판부로부터 기록이 접수되면 그 통지를 변호인에게 해주고, 그로부터 20일 이내에 이유서를 제출해야 하는 것으로 법에 규정되어 있다. 그러니 이런 식으로 항소이유서 제출을 연기 받을 수는 없다. 일본은 우리와 다르다. 그거야 절차상 차이니 그렇다 치자.


그것보다는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변호사가 이런 요청을 하기 위해 판사를 만나는 방법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변호사들이 법관에게 이런 유의 요청을 하기 위해 과거엔 판사실을 들락날락했다. 하지만 지금은 판사실 접근이 어렵다. 소위 전관예우라는 폐단을 막기 위해 법원이 변호사들의 판사실 접근을 막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본은 이 문제를 이렇게 해결한다는 것이다. 변호사가 담당 재판부 서기관에게 판사 면담 요청을 하고 아예 별도의 방에서 판사를 만난다. 이런 것은 우리도 한번 고려해볼만한 절차가 아닐까?

 

386

가와이 도모아키 변호사의 하루하루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이날부터 이듬해 2월 말일까지, 그는 20건이 넘는 민사사건을 판결과 합의로 끝냈고, 새로 약 40건의 민사사건을 수임했으며, 그중 반을 소송 외 합의로 정리했다.“


이 부분은 바쁜 가와이 변호사의 일상을 그린 것이다. 내 눈에 띈 것은 변호사의 사건 수임 건수이기도 하지만(요즘 한국 변호사는 이런 정도로 사건을 수임하지 못한다) 사건처리 방식이다. ”그중 반을 소송 외 합의로 정리했다는 부분은 일본 변호사들의 일처리 방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는 의뢰인으로부터 소송사건을 수임하면 대체로 소장을 제출하고, 소송절차에 들어가 거기에서 합의를 하는 경우는 있지만, 변호사가 법정 외에서 합의를 하는 일은 많지 않다. 그런데 일본에선 변호사들이 법정 외에서 상대방 당사자 혹은 그의 대리인을 직접 만나 합의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하면 분쟁해결 속도가 빠르다. 소송으로 가서 몇 년 동안 고생할 것을 단 며칠 내로 끝낼 수도 있다. 이런 일처리 방식은 우선 당사자를 위한 것이고 다음으론 변호사 자신을 위한 것이다. 소송이란 자고로 시간 끌고 돈 드는 절차다. 일본 변호사들의 사건처리 방법을 한국 변호사들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398

가와이는 몇 번이고 머리를 숙였다. 그리고 가와이는 가방을 열고 자그마한 봉투를 꺼냈다. “선생님, 감정료 말씀입니다만, 피고인은 체포된 직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 이거 50만엔 밖에 안 됩니다. 기준보단 적다는 것 알지만, 이것으로 허락해 주실 수 있으신지.”


이 부분은 이 사건의 최대 쟁점인 피해자 사망추정시각과 관련된 감정증인을 물색하는 과정에서, 가와이 변호사가 사체 검시에 참여했던 나이토 교수를 만나, 증인으로 나와줄 것을 부탁하는 장면이다. 일반 독자가 이 장면을 보면 감동할 것이다. 국선변호인이 사비를 들여 증인을 물색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로서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게 뭐냐고? 어떻게 감정증인에게 변호사가 사석에서 감정료를 줄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선 이런 식으로 할 수 없다. 우선 형사사건에선 감정료도 원칙적으로 국가가 부담하지 피고인이 부담하지 않는다. 변호사가 자신의 의뢰인을 위해 이런 식으로 증인에게 돈을 준다면 그것은 증인의 증언에 관여하는 행위로 일종의 사법파괴에 해당한다


내 상식으론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이게 일본에서 가능하다? 이 부분에 대한 의문을 풀기 위해선 내가 직접 작가인 이가라시 변호사에게 물어보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471

변호사 선생, 우리 회사 고문이 되어주지 않겠나?” ... “전 형사 전문입니다.” 가와이는 조금 거짓말을 했다. 이 남자의 검은 일에 동참하고 싶지 않았다. ... 변호사를 멋대로 부릴 수 있는 동물쯤으로 생각하면 곤란했다. 가와이는 자기 의사로, 부족한 시간과 돈을 쪼개어 여기까지 왔다. 누구에게도 명령을 받지 않았다.“


이 부분은 가와이가 와타나베 사장으로부터 고문 제안을 받는 장면이다. 국선변호인 가와이가 피고인을 위해 애쓰는 것을 본 피해자 아버지 와타나베의 제안이다. 어렵게 사무실을 유지하는 변호사들이라면 이런 제안에 목말라한다. 매달 꼬박꼬박 고문료가 나오는 이런 제안을 마다할 변호사가 어디에 있겠는가


그런데 가와이는 거절한다. 와타나베 사장의 검은 일을 도와줄 수 없기 때문이다. 만일 그리하면 변호사란 직업은 검은 세계의 고용된 총잡이에 불과하다. 가와이가 보는 변호사란 직업은 그런 게 아니다. 그가 보는 변호사는 누구도 돈으로 조종할 수 없는 독립적인 직업이다. 우리 변호사들도 한번쯤 생각해 볼만한 장면이 아닐까?

 

523

원죄사건을 다룰 때마다 항상 생각나는 말이 있어. ‘인생의 화와 복은 마치 꼬아놓은 새끼줄 같다는 말.“ ... ”인생은 화와 복, 즉 재앙도 행복도 서로 뒤섞여 꼬인 새끼줄 같다는 의미인데, 내가 원죄사건을 만날 때마다 이 말을 떠올리는 이유는 원죄라는 건 결코 한두 사람의 악인이 품은 악의나 누군가 한 사람의 실수만으로 일어나는 게 아니기 때문이지. 수십 가닥의 짚이 꼬여서 밧줄이 되는 것처럼, 수십 명의 이난이 한 일, 즉 악의뿐만 아니라 일종의 선의, 배신이나 과실에다 일종의 의무에 충실한 행동이나 모범적인 행위도 모두 꼬이고, 다양한 인간 활동이 얽히고설켜, 그것이 어떨 땐 원죄가 되기도 한다는 말일세. 그걸 항상 통감해.“


이 부분은 가와이가 국선사건의 무죄를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항소심 재판부로부터 무죄선고 대신 무기징역 선고를 받고, 실망한 나머지 원로 변호사 마스키 기요시를 찾아가 하소연을 하자, 그가 해준 말이다. 아마 이 소설을 쓴 원로 변호사 이가라시 변호사의 깊은 고뇌가 이 말 속에 그대로 녹아 있는 듯하다.


한 사람의 억울한 운명은 이렇게 결정되는 것이다. 누구는 선의로 한 일이, 누구는 의무로 한 일이, 누구는 모범적인 일이라 생각한 일이 결국 합해져 한 인생에겐 결정적인 실수로 나타날 수 있다. 그러니 이런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라면 신중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나의 단순한 이 행동이 어떤 이에게는 평생 씻을 없는 상처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


이로써 이가라시 변호사의 <사망추정시각>에 대한 내 이야기를 마친다. 이 글이 이가라시 선생에겐 존경의 표현이, 또한 그를 모르는 한국 독자들에겐 일본의 형사절차를 이해하고 나아가 변호사란 직업을 이해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