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인생/일본여행기

일본방문기 17-2 열정을 불태운 일변연 강연 -공부하고 기록하는 일본인-

박찬운 교수 2017. 6. 24. 08:42

열정을 불태운 일변연 강연

-공부하고 기록하는 일본인-

 


얼마만인가. 가슴 뿌듯한 몇 시간을 보냈다. 몸은 온통 땀으로 범벅이 되었지만 마음은 날아갈 것 같다. 드디어 끝났다. 우레 같은 박수가 들렸다. 나의 일변연 특별강연(한국에서의 수사절차 변호인 참여권의 현실과 문제점 그리고 개선방향)이 끝난 것이다.

 



히비야 공원에서 관청가를 찍었다. 위 건물 중 왼쪽에서 두번째 건물이 일본변호사 통합빌딩이다. 거기에 일본변호사연합회를 비롯 동경변호사회, 동경제1변호사회, 동경제2변호사회가 들어서 있다.



623일 강연은 오후 다섯 시 간단한 준비모임을 한 다음 6시부터 시작되었다. 한 시간 동안 강연을 한 뒤 한 시간 반 동안 Q/A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장소를 옮겨 늦은 저녁을 하면서 밤늦게까지 대화를 이어갔다. 한 사람을 불러 완벽하게 본전을 뽑는 일본인이다. 나는 그것을 잘 알면서도 흔쾌히 내 모든 것을 그들에게 주고 말았다.

 

일본이란 나라! 우리에게 엄청난 시련을 안긴 나라이고 아직도 그 앙금이 가시지 않은 나라다. 아베 수상이 이끄는 일본 정부의 꼬락서니를 보면 그 나라와는 결코 선린관계를 맺기 어려울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일본은 개인적 수준에서 민간 레벨의 교류를 하다보면 다른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없는 나라다. 배울 게 많다. 아니, 많은 정도가 아니라 어쩜 우리로선 공포의 대상이다. 내 강연을 통해 일본인들이 어떤 친구인지, 내가 왜 그들을 존경 이상의 경원의 대상으로까지 보지 않을 수 없는 지, 그 이유를 알아보자.


 


강연 시작 한 시간 전 일변연 형사법제위원회의 준비팀과 사전조율을 하였다. 내 오른편에 앉은 이가 준비팀의 좌장인 이가라시 후다바 변호사이다.



우선 나의 일본 파트너들은 엄청나게 공부하는 사람들이다. 내 강연이 재미있는 게 아니다. 그저 이웃나라가 가지고 있는 제도 설명에 불과한 강의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도 강연장에는 120 명이나 되는 변호사들이 운집했다. 금요일 저녁 시간에 말이다!. 그것도 도쿄의 변호사들만이 아니다. 나한테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이 주는 명함을 보면 오사카, 쿄토 등지에서도 왔다. 그곳에서 신칸센을 타고 왔을테니 왕복요금만도 20만원이 넘는다! 내 일성은 강연장에 모인 이들의 공부하는 자세에 대한 헌사였다. 


여러분, 저는 이게 일본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자부심을 느낄만합니다. 대단합니다!”

 



강연장에 120명의 변호사들이 참석했다. 금요일 저녁에 이렇게 많은 변호사들이 전국 각지에서 온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일본 전문가들의 특징은 평생 한 우물을 판다. 내 강연을 주최한 일변연 위원회는 형사법제위원회라는 곳인데 이 위원회의 터줏대감 위원들이 바로 그런 전문가들이다. 몇 몇 위원을 소개하자


오래 전에 이미 위원장을 한 이시가와 변호사. 선생은 올해 우리 나이로 87세로, 1957년부터 변호사를 해 왔으니, 그 경력만 60년이 넘는다. 50-60년대 일본의 민주화와 자유화에 헌신한 백전노장이다. 선생은 오사카에서 아직도 현업에 종사하고 있다. 나하고도 20여 년 전부터 교분이 있는데, 일부러 먼 길을 오셔서 강연장의 좌장답게 맨 앞에 자리를 잡고 강연을 들은 뒤에, Q/A시간엔 한국의 수사절차에서의 구속기간에 대해 질문하셨다. 선생은 강연이 끝나자 열차 시간 때문에 저녁을 같이 못한다는 인사를 하 자신의 저서 한권을 내 손에 쥐어 준 뒤 총총히 사라지셨다. 


 


강연 후 참석자들이 질문하고 있다. 일어선 이가 본문에서 말한 올해 89세의 이시가와 변호사님, 나를 보기 위해 오사카에서 오셨다.



이가라시 변호사. 여성 변호사로 올해 86세. 원래 문학도였다가 30대 후반에서야 시험에 합격하고 60년대 후반부터 변호사 일을 해온 일본의 대표적 형사전문 변호사다. 조용히 경청하다 간간히 던지는 말씀 속에서 50년 내공의 진짜 전문가를 만날 수 있다. 내 서가에도 선생의 책이 몇 권 꽂혀 있는데, 대부분 일본 형사법을 국제인권법 차원에서 분석하고 비판한 책들이. 내가 20여 년 전 국제인권법에 대해 처음 공부할 때 이들 책으로부터 큰 도움을 받았다. 재미 있는 것은 이 분이 추리소설 작가이기도 하다는 사실이다. 몇 년 전엔 선생의 소설 <사망추정시각>이 한국에서도 출간되었다. (이 분에 대해선 다음 회 글에서 자세히 쓸 것이다.)

 

니이쿠라 교수/변호사. 아오아먀가쿠인 대학의 형법 교수로 올해 정년을 맞이했다. 정년 십 수년 전에 변호사로 등록해(일본에선 법학교수로 일정 기간 일하면 변호사 자격을 취득할 수 있다) 일변연 형사법제위원회의 열심 당원으로 일해 왔다. 이 분이 이번에 내 강연의 심부름꾼 역할을 자청했다. 호텔에 와서 나를 맞이하고 카운터에 가서 비용을 계산하는 일이다. 우리 나이로 67세인 분인데, 이곳에선 할 일 많은 젊은이에 불과하다.

 

이 터줏대감들은 이 위원회 활동을 길게는 50년 이상을 해온 사람들이다. 일본에선 이게 가능하다. 일본의 변호사회는 본인이 계속 원하면 한 위원회에서 10, 20년 계속 일할 수 있다. 한 우물을 계속 팔 수 있다는 것이다. 그에 비하면 우린 어떤가. 내가 변호사회 임원을 해봐서 알지만 그런 환경이 아니다. 집행부가 바뀌면 위원들도 대부분 바뀌니 터줏대감들이 있을 리가 없다. 그러니 한 분야의 전문성을 확보하긴 어려운 구조다.


 


나는 혼신의 힘을 다해 강연했다. 땀으로 옷이 다 젖었다. 하지만 기분은 만땅!



일본 친구들은 철저하게 준비하고 팀 플레이를 한다. 일본을 자주 다니면서 느낀 것인데, 한국인은 단독 드리블을 잘하는 반면 일본인은 정교한 패스에 능하다. 이번 강연에서도 그것을 여실히 알 수 있었다. 내 강연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니다. 2월 달에 처음 연락이 왔으니 준비기간만 4-5개월이 걸렸다


내 강연을 위해 준비팀이 만들어졌고, 그 좌장은 위에서 소개한 이가라시 변호사였다. 80대 후반의 할머니 변호사가 아들뻘 되는 젊은 변호사들과 함께 일을 하다니! 한국법을 전공하는 아오야마 가쿠인 대학의 아베 교수와 번역 및 통역자로 같은 대학에서 박사과정에 있는 정유정 선생이 참여했다. 아베 교수는 강연장에서 마지막으로 내 강연의 의미와 시사점을 정리하는 역할을 맡기도 했다. 그 외에도 형사법에 조예가 깊은 교토의 젊은 변호사 이시가와는 사전 질문서(이 질문은 매우 실무적이고 구체적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일본의 변호사가 아니라면 우리에게 이런 구체적인 질문을 할 수 있는 전문가는 없다고 생각한다)를 작성해 내게 보냈고 강연장에서 그 질문을 주도했다.

 

준비 기간 중에 내 논문(변호인 참여권의 현실과 문제점 그리고 활성화를 위한 제언-인권과 정의, 2015. 11)이 일본어로 번역(번역자 아베 교수) 되었다. 나아가 내 강연을 담은 파워 포인트 및 사전질문서의 답변까지 모두 번역되어 강연장의 참가자들에게 배포될 자료집으로 만들어졌다. 준비기간 중 나와 준비팀 변호사들 간에 교환된 메일 개수를 세어보면 적어도 100통 이상은 될 것이다. 아마 준비팀 중 누군가는 내 강연을 기록하고 그것을 또 다른 보고서로 남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 위원회의 기록으로 보존되어 후배 변호사들에게 전승될 것이다. 시간이 가면 기록은 축적되고 또 축적되어 후일 누구든지 그것만 보면 위원회의 소상한 역사를 한 눈에 보게 될 것이다. 이게 바로 일본인 전문가들이 일하는 방식이다.


 


이가라시 후다바 변호사의 추리소설 <사망추정시각>, 이 소설은 일본에서 발생하는 소위 원죄사건(사건 용의자가 고문 등을 받아 억울하게 범인으로 몰려 유죄가 된 사건)을 추리소설화한 것이다. 일본의 후진적인 형사절차와 인권침해를 이 한 권의 소설로 고발한 것이다. 이번 강연이 끝난 후 이가라시 변호사가 내게 한 권을 가지고 와서 나는 호텔에서 단숨에 읽었다. 소설의 저자로 된 사쿠 다스키는 이가라시 변호사의 필명임



부끄럽지만 우리가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바로 그들의 일하는 방식이다. 사실 내가 지금 이 기록을 남기는 것도 일본인 친구들의 그 기록보존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마저 남기지 않는다면 나의 소중한 경험은 나로 끝나고 만다. 얼마나 허망한 일인가.

 

마지막으로 이번 강연을 통해서 나와 일본 파트너들이 확인한 두 가지 사실을 정리해 두어야 겠다. 하나는 수사절차에서 가장 중요한 인권보장책은 변호인 제도라는 것을 서로 공감했다. 조사 중에 변호인이 입회해서 피의자에게 조언해 주는 것이야말로 수사절차에서 인권침해를 막을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이라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또 한 가지는 일본 변호사들이 지난 20여 년간 줄기차게 주장해 온 수사의 가시화(可視化)를 위한 녹음 녹화의 한계를 공감했다는 사실이다. 조사과정을 녹음 녹화하자는 것은 수사절차에서의 변호인참여가 일본에선 불가능하기 때문에 나온 대안이. 그런데 이들이 이제 다른 시각을 갖게 된 것이다. 한국에서 변호인참여권이 제도화된 것을 보고 일본도 그 도입을 강력히 요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내 강의가 많은 일본 변호사들에게 녹음 녹화를 통한 수사의 가시화보다 더 확실한 인권보장책인 변호인 참여제도로 눈을 돌릴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면 나로선 그보다 더 큰 보람은 없을 것이다.

 

이 글을 다 쓸 때 쯤 이가라시 변호사로부터 한 통의 메일이 도착했다. 선생은 이번 강연이 대성공이었다고 하면서 내게 놀라운 찬사를 쓰셨다. (믿지 않을 것 같아 ㅎㅎ) 그 문장을 그대로 여기에 옮긴다.


"この度の講演会は本当に素晴らしいものでした。

 先生のご講演は、日本の刑事手続と日弁連の歴史に残る最高のお話でした。"(이번 강연회는 정말로 훌륭했습니다. 선생의 강연은 일본 형사절차와 일변연 역사에 남을 최고의 말씀이었습니다.)

나는 이 칭찬이 그저 일본인들의 의례인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내 강연이 일본 변호사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음이 분명하다. 그들은 나를 통해 한국 인권변호사들의 역동성을 읽고 감동했다. 

칭찬은 고래도 춤을 추게 한다고 했던가? 선생의 이 말 한마디로 그동안 내 어깨를 짓누르고 있던 부담감이 일순간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