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인생/일본여행기

일본방문기 17-1 시간은 갈 것이고 밤은 또 올 것이다 -데이코쿠 호텔에서-

박찬운 교수 2017. 6. 24. 08:28

시간은 갈 것이고 밤은 또 올 것이다

-데이코쿠 호텔에서-


 

이런 이야기를 쓰면 괜히 자랑한다고 할 것 같아서 조금 주저되기도 하지만 집을 떠나 있는 사람의 마음을 조금 이해해 준다면 그런대로 들을만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변호사 초년시절 꽤나 도전적인 삶을 살았다고 자부한다. 지금 생각해보니 까마득한 옛 일 같기도 한데 거침없는 한 시절이 있었던 것만큼은 분명하다. 김앤장 같은 대형로펌에 들어가 돈 버는 변호사는 되지 못했지만 그 대신 그곳에서 일하는 변호사들이 경험하지 못하는 일들을 많이 했다.




데이코쿠 호텔. 1890년 오픈한 이 호텔은 일본 근대화의 상징이자 자존심이다. 이름 자체가 요즘엔 사용하지 않는 '제국'이다. 지금도 오쿠라, 뉴 오타니 호텔과 더불어 일본을 대표하는 최고급 호텔 중 하나이다.

 

변호사를 시작한지 5-6년이 안 돼 내 이름은 일본에까지 알려졌다. 그래서 일본의 많은 변호사 단체로부터 초청을 받아 뻔질나게 일본을 들락날락했다. 연간 평균 5-6회 도쿄, 오사카, 나고야, 후코오카 등지를 다니면서 각종 발표와 강연을 했다. 그런 생활이 거의 12-3년 지속되었으니 그 횟수가 어느 정도가 될지는 대충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일본을 많이 다녔어도 내 돈은 거의 쓰지 않았다는 사실!

 



데이코쿠 호텔에서 본 히비야 공원과 관청가. 공원 뒷편으로 보이는 빌딩 중 맨 오른 쪽이 법무성이고, 맨 왼쪽이 일변연이다.



그렇게 자주 가던 일본도 2005년 변호사 생활을 정리한 뒤로부터는 뜸해지기 시작했다. 하는 일이 달라지니 갈 일도 없고 또 오라는 곳도 없었다. 물론 아주 가끔 학술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다녀오긴 했지만 치열했던 한 시절이 저문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일본에 가는 비용도 대부분 내 호주머니에서 나갔다. 내가 선뜻 일본에 가지 않은 또 하나의 이유였다.

 

며칠 전 오랜만에 도쿄에 왔다. 일본변호사연합회(일변연) 초청으로 특별강연을 하기 위함이다. 연초 아오야마 가쿠인 대학의 형사법 교수인 니이쿠라 교수로부터 연락이 왔다. 일본에 와서 강연을 해달라는 것이다. 지금 일본 변호사들의 관심사 중 하나가 수사절차에서의 변호인 참여인데, 일본은 한국과는 달리 아직 요원한 상태다. 일본변호사들은 한국이 이 제도를 도입했다는 것을 알고 지난 몇 년간 한국 상황을 면밀히 연구해 왔다. 강연 요청은 바로 이 연결선상에 있는 것이었다.

 


일본 최초의 서양식 공원 히비야 공원, 1903년 개장. 바로 황궁 옆에 위치하며 주변은 관청가다. 도심 한 가운데 제법 큰 공원으로 삭막한 시멘트 콘크리트 속에 사는 사람들에겐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은 곳이다. 


다른 요청이라면 적당한 이유를 들어 거절하겠지만 이것만은 내가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이 문제에 관한 한 나만큼 한국과 일본의 상황을 정확히 아는 법률가도 없으니 일본 친구들이 정확히 번지수를 찾은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나는 지난 한 학기 동안 이 강연을 위해 여러 가지를 준비했다. 강연의 편의를 위해 통역 없이 했으면 어떻겠냐는 제의도 흔쾌히 받아들여 한동안 사용하지 않던 일본어까지 연마했다오늘이 그렇게 해서 준비한 강연의 D 데이다.

 

일변연의 공식초청인지라 대우도 좋다. 일변연은 도쿄에서 가장 좋은 호텔인 데이코쿠(제국)호텔에 방을 잡아 주었다. 창밖에서 바라보는 도쿄는 아름답다. 세계 여러 나라를 다녀보았지만 이런 품격을 갖춘 현대도시를 쉽게 찾기 힘들다. 일본인은 적어도 외양으론 근대화를 한지 한 세기 만에 서양을 완벽하게 추월했다


데이코쿠은 1890년 창업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호텔이다. 메이지 시대에 서양에서 오는 귀빈들이 묵을 숙소로 황궁 바로 옆에 지은 것이다호텔이 지어지고 얼마 뒤 길 건너편엔 공원이 들어섰다. 일본 최초 서양식 공원인 히비야 공원이다. 아침에 일어나 공원을 한 바퀴 돌아보니 곳곳에서 만나는 거목이 햇빛을 반사한다. 나무 한그루 한그루에 100년 이상의 역사가 그대로 담겨있다. 

 

나는 과거 데이코쿠 호텔에 묵은 적이 한 번 더 있다. 꼭 22년 전인 1995년 이맘 때다. 그 때도 일변연의 초청으로 토쿄를 방문했을 때였다. 국제변호사협회(International Bar Association)와 일변연이 공동으로 국제심포지엄을 주최했는데 발표자로 참여했던 것이다. 당시 이 심포지엄에는 영국, 말레이시아, 필리핀에서 온 법률가들이 참여했다. 행사 전일 만참 겸 준비모임에 갔을 때 영어를 모르는 사람이 딱 한 사람이 앉아 있었는데.... 그게 바로 나였다.

 

그 당시를 생각하니 지금도 부끄럽다. 영어를 모르는 나는 대화에 참여하지 못하고 밥만 먹고 말았으니... 내 시야가 아직 우물 안의 개구리 신세를 면치 못했음을 뼈저리게 느꼈다. 어찌어찌 해서 발표를 마치고 귀국 길에 들어서는 비행기 속에서 나는 한 가지 굳은 결심을 했다. ‘공부를 해야겠다. 이제는 일본을 넘어서 세계로 나아가야겠다.’ 이렇게 해서 그 다음 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다녀 온 뒤, 계속 공부를 해, 급기야 지금 교수가 되어 있는 것이다.

 

오랜 시간이 지난 오늘, 나는 다시 데이코쿠 호텔에서 창밖을 바라본다. 세월은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22년 전 이곳에 묵을 때 나는 당황한 나머지 아무 것도 보질 못했다. 오로지 잠만 자고 발표를 위해 방구석에 앉아 준비만 했다. 열정은 있었지만 여유는 없었다, 아마도 여유를 찾는다는 것은 당시로선 사치스런 일이었을 것이다.

 

오늘 내 맘은 담담하다. 시간은 갈 것이고 또 밤을 맞이할 것이다. 일본 친구들과 진지한 대화를 하고 격의 없는 친교의 시간을 가질 것이다. 그들 중에는 함께 늙어가는 친구들도 있을 것이고, 이제 막 배움의 길에 들어선 젊은이들도 있을 것이다. 생각해 보니 나이를 먹는다는 것, 시간이 간다는 것, 크게 나쁘지만은 않은 일이다.

 

(다음은 저의 강연 이야기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