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장/정치

평양선언과 군사합의 비준 논란에 대하여

박찬운 교수 2018. 10. 26. 04:43

평양선언과 군사합의 비준 논란에 대하여


대통령이 지난 23일 ‘9월 평양공동선언’(평양선언)과 ‘판문점선언 군사 분야 이행합의서’(군사합의서)를 비준한 것을 놓고 자유한국당이 ‘국회의 동의 없는 비준은 위헌’이라고 법적 논란을 벌이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 여러 언론사에서 내게 의견을 물어 답한 바 있다. 여기에 그 질문과 답을 정리해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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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남북 합의는 국가 간 조약인가?

국제사회에선 남과 북은 엄연한 별개의 국가이다. 따라서 국제사회에선 남과 북의 문서에 의한 합의는 국제법상의 조약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랜 기간 우리(남)는 대외적으론 북의 국가성을 인정(예컨대 남북 유엔 동시 가입)하지만 대내적으론 북의 국가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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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헌법(영토조항)과 법률체제(국가보안법상 북은 반국가단체 등) 그리고 사법부의 판례가 그렇다. 대내적으로 남북의 관계를 정확하게 규정하고 있는 법은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남북관계발전법)인데, 동법 3조는 “남한과 북한의 관계는 국가 간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고 못을 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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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이 문제는 더 이상 논의할 필요가 없다. 남북합의는 (적어도 국내법적으론) 국가 간 조약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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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러면 왜 남북합의(평양선언과 군사합의)에 국가 간 조약절차에서 취하는 (대통령) 비준절차를 거쳤는가?

그것은 남북관계발전법에 의한 것이다. 동 법은 남북합의가 국가 간 조약은 아니지만 그에 준하는 절차를 규정하고 있다. 즉 남북관계법은 남북합의에 헌법상 조약에 관한 대통령의 권한과 국회의 권한을 차용하여 비준절차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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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약이 법적으로 효력을 발효하기 위해서는 국내법적으로 비준절차(이미 서명된 조약문에 대해 비준권자가 승인해 법적 구속력을 대외적으로 표시하는 행위)가 끝나야 하는데, 남북관계발전법은 남북합의에 이와 같은 절차를 요구한 것이다. 그 이유는 남북합의를 조약에 준해 다룸으로써 그 이행을 담보하기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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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발전법 21조에 의하면 남북합의는 대통령이 체결·비준한다고 되어 있고(1항), 국회는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남북합의서 또는 입법사항에 체결ㆍ비준에 대한 동의권을 갖는다고 되어 있다(2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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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럼 이번 대통령의 비준은 위헌문제는 없다는 것인가?

대통령의 비준을 헌법위반이라고 몰아세울 순 없다. 굳이 문제를 삼는다면 남북관계발전법 21조 위반 여부이다. 즉, 야당이 법률에 맞게 이의를 제기한다면, ‘대통령은 두 개의 합의에 대해 국회 동의를 받고 비준해야 하는 데 그렇지 않았으니, 동법 위반이다‘라고 해야 한다. 국가 간 조약이 아닌 상황에서 우리 헌법상의 조약에 관한 조항을 들이밀며 위헌 주장을 하는 것은 타당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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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번 비준이 남북관계발전법상 위반되지는 않는가?

비준에 국회 동의가 필요한가의 문제인데(동법 21조2항), 두 합의가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것인지 혹은 “입법사항”에 해당되는 것인지의 해석 문제다. 이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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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평양선언은 별도의 선언으로서의 남북합의이고 내용에 있어서도 선언성 합의라 당장 남쪽에 재정적 부담이 된다고 볼 수 없어(돈이 들어가는 합의는 남북교류 확대에 관한 것인데 이것은 현재 북이 유엔제제를 받고 있는 상황이라 현실적 합의이행이 유동적임) 대통령이 국회 동의 없이 비준할 수 있다는 주장은 충분히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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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평양선언은 판문점선언의 후속조치이고, 판문점선언은 국민의 중대한 재정적 부담이 있다고 보아 이미 국회에 동의요청을 한 상태이니, 평양선언도 의당 국회 동의를 받아 비준해야 한다는 야당의 주장은, 적어도 정치적으론 있을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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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앞으로 이런 문제가 계속 일어날 수 있는데 어떻게 하면 남북합의 비준절차가 매끄럽게 해결될 수 있겠는가? 정부에 대해 한 마디 해주길 바란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글을 써왔다. 정부가 내 글을 제대로 읽지 않은 것 같아 유감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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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판문점선언 국회 비준동의 문제가 있을 때 걱정을 많이 했다. 여야가 합의한다면 몰라도 야당이 완강히 반대하는 상황에선 국회 동의 요청을 하지 말 것을 제안한 바가 있다. 만일 동의가 안 되면 역사적인 판문점선언의 의미가 퇴색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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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상황에서 여야가 접점을 찾을 수 있는 국회 차원의 지원은 판문점선언의 지지결의안 채택이니 그것을 추진하는 게 좋다고 했다. 그런데 정부가 이런 고려 없이 국회에 동의요청을 하는 바람에 이번 비준절차도 스텝이 꼬인 상황이 되었다.

향후 지금과 같은 문제가 없도록 하기 위해서는, 남북합의 과정에서 국회 동의가 필요한 사항에 대해선 미리 면밀히 점검하고, 합의서도 ’국회 동의요청에 걸 맞는 조약문 형식‘으로 만들고 거기에 ’쌍방의 비준절차를 거쳐 효력을 발생한다‘는 명문의 조문을 넣을 필요가 있다.

(2018.10.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