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장/정치

경찰개혁에 관하여

박찬운 교수 2019. 2. 11. 21:39

경찰개혁에 관하여


검경 수사권 조정

청와대가 추진하고자 하는 검경수사권 조정의 기본방향은, 수사기소 분리원칙 아래, 수사는 원칙적으로 경찰이 담당하고(모든 사건에 대한 경찰의 1차적 수사권 및 1차적 수사 종결권 인정), 검찰은 직접수사를 최소화하고(검사의 직접 수사를 일부 사건으로 한정) 경찰수사에 대한 보완적 수사를 하며(검찰송치 후 2차적 수사권), 검찰의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를 폐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조정을 가로막는 두 가지 상황이 존재한다. 이것이 엄존하는 한 이번 검경수사권 조정은 결론이 난다고 해도 사실상 매우 제한적인 내용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지금 백지 위에서 자유스럽게 논의하여 미래지향적인 수사 환경을 만들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하나는 현실적 상황으로 검찰이 수사기소 분리원칙을 받을 수 없을 정도로 너무 큰 조직이라는 점이다. 검찰은 해방 이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사의 주재자로서의 법적 지위를 누려오면서 조직을 키워왔다. 현재 검찰은 검사 2천 명, 수사관 및 일반직 8천 명 도합 1만 명의 수사전문 기관이다. 이 조직이 건재하는 한 현재 추진 중인 수사 기소 분리원칙에 의한 검경수사권 조정은 사실상 어렵다. 만일 수사기소 분리원칙이 합의된다면 1만 명 검찰조직을 전면적으로 재조정해야 한다. 현재의 조직은 직접수사를 전제로 한 조직이기 때문이다. 검찰조직을 기소 전문기관으로 (슬림화해) 정비하고 상당부분을 떼어서 경찰에 주든지, 아니면 그것을 이용해 새로운 수사전문 기관(예컨대 미국의 FBI 같은 조직)을 만드는 논의를 해야 한다.

또 하나는 제도적 상황으로 검찰의 영장독점권이다. 현행 헌법상 강제수사는 검찰을 통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경찰에게 1차적 수사권을 준다고 해도 강제수사를 위해서는 검찰의 통제를 받지 않으면 안 된다. 경찰은 검찰로부터 수사지휘를 받고 싶어 하지 않지만, 영장청구권이 없는 경찰로서는 강제수사에서 검찰의 지휘를 받지 않을 수가 없다. 정부 조정안이 통과된다고 해도 독자적인 수사를 하고 싶어 하는 경찰로선 크게 실속이 없다. 수사지휘권이란 말만 없어질 뿐 경찰의 수사는 여전히 검찰의 통제를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두 가지 현실을 인정한다면 검경수사권 조정은 단계별 접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지금 진행되는 것을 1단계 개혁이라고 보고 거기에 걸 맞는 개혁을 진행해야 한다. 1단계에선, (여야 합의를 통해) 검경 간의 관계를 수평화할 수 있는 방안을 채택하고(경찰 수사과정에서 검찰의 구체적 수사지휘권 폐지, 검찰의 영장독점권을 보완할 수 있는 경찰의 이의제기권 확보 등), 검찰의 직접수사를 최대한 제한하는 정도에서 끝내면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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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경 수사권 조정의 2단계 개혁은 2020년 총선 이후 개헌과정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 때까지는 검찰의 조직개편을 염두에 두면서 미래지향적 수사구조에 대해 좀 더 고민해야 한다. 나아가 검찰의 영장독점권을 없애고 일본처럼 경찰에 체포 및 압수 수색 영장의 청구권을 부여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이런 고려를 기초로 개헌 이후 제도적 개혁을 완성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일본의 수평적 검경관계 이상의 제도 개혁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2단계 개혁의 칼자루는 국민이 쥐고 있는 셈이다. 총선과 개헌을 해 나가는 과정에서 국민의 여론을 어떻게 형성해 가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다.

자치경찰

경찰개혁의 또 하나의 축인 자치경찰 문제도 쉽지 않은 과제다. 정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국가 경찰의 권한을 자치경찰로 이양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태생부터 지금까지 국가경찰로만 지내온 우리 경찰이 제대로 된 자치경찰을 만들어내는 것은, 말 그대로 가죽을 벗기는 고통을 감내하지 않으면 안 되는 개혁이다. 정치인들의 자치경찰에 관한 이해관계도 첨예하여 입법화 과정에서 합의를 쉽게 기대하기 어렵다. 어떤 권한을 어느 정도 이양해야 할지, 현재의 경찰인력을 어떻게 배분할지, 어떻게 자치단체장의 부당한 간섭과 지방 토호세력으로부터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이 모든 것이 투명하게 논의되고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받아야 한다. 무엇보다 경찰 내부에서 자치경찰로 소속을 바꾸는 것을 신분불안으로 느끼는 경찰관들을 설득해야 한다. 

인사개혁

경찰의 인사문제를 개혁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과제임에도 경찰개혁 논의대상에서 빠졌다. 인사개혁 논의가 자칫 조직이익 보호라는 의미로 비추어질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인사개혁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경찰개혁의 핵심이다. 

경찰은 전통적으로 인사 불만이 큰 조직이다. 15만 명의 인력으로 군대 다음으로 조직이 큼에도 이를 운영하는 경찰간부의 수는 극소수다. 이로 인해 경찰은 항상 과도한 승진 경쟁과 이로 인한 인사부작용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런 상황에서 경찰 고위직을 경찰대 출신이 독점하고 있다. 경찰대는 경찰개혁의 선봉에 서 있지만 경찰인사에선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다. 경찰개혁위 권고로 경찰대의 부작용은 어느 정도 순화될 가능성은 크지만 그것을 본격적인 인사개혁이라고 보기엔 부족하다. 

따라서 경찰이 제 자리를 찾기 위해선 경찰인사제도를 근본적으로 손을 보아야 한다. 현재 11개 계급으로 된 다단계 계급구조를 줄이고, 중간간부(경정 및 총경급) 및 최 상층부 경찰지휘부를 증원해 타 중앙행정기관과 유사할 정도로 조직 관리의 숨통을 터야 한다. 또한 군과 비교해 불리한 (계급)정년 제도를 개선해 경찰관들이 안정적으로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근무여건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나아가 인사 불만을 최소화하기 위해 공정한 인사절차를 확립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과제다. 이런 인사개혁이 없이는 경찰의 어떤 개혁도 내부 협력을 받기 어려울 것이다.(2019. 2.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