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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도에 대한 고백

박찬운 교수 2019. 3. 20. 19:46

효도에 대한 고백

 

내가 요즘 효자 소릴 듣고 있다. 매일 두 세 번씩 병원에 입원하신 아버지를 찾아가니 그런 말이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오해하지 하지 마시라. 나는 아무리 보아도 효자가 아니다. 나는 그저 최소한의 자식 도리를 기계적 습관으로 실천할 뿐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언젠가 부덕의 부메랑으로 돌아올지 모른다는 걱정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가슴속에 마냥 간직하고 살 것도 아닌 것 같아 이 자리에 잠시 내 ‘효’의 실체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나는 오랫동안 대한민국 사람들의 ‘효’는 노인복지의 부재가 만들어낸 허상이라고 생각해 왔다. 효란 노인복지가 안 된 사회에서 개인의 노후를 각각의 가정이 책임지도록 정신적으로 강제하는 도덕관념이라는 것이다. 만일 우리나라의 노인들도 북유럽의 노인들처럼 자식들 도움 없이 독립적으로 살 수 있다면, 효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라 믿는다. 

 

병원에 가서 수없이 목도하지만, 그곳을 들락날락하는 대부분 가족들의 모습은 불만에 가득 차 있다. 나를 포함해 병상을 찾는 자식들이 부모에게 따뜻한 애정표현을 하는 것을 본 일이 없다. 병상에 누워 있는 환자가 얼마 남지 않은 삶을 차분하게 정리하는 것은 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이나 귀한 일이다. 우리에겐 죽음과 질병이 가는 자와 남는 자 모두에게 공포이자 짐이다. 거기에서 부모와 자식의 순수한 사랑은 보이지 않는다. 이러니 자식만 욕할 일은 아니다. 효도의 도덕적 의무감엔 분명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나의 효는 애정을 바탕으로 표출되는 아름다운 행동이 아니다. 대한민국이란 사회체제와 문화가 나를 길들였을 뿐이다. 나는 지난 30여 년간 부모님을 경제적으로 도와 왔고 집안의 큰일을 도맡아 왔다. 내가 생각해 보아도 대견할 정도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것이 내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부모님에 대한 사랑과 감사의 표시는 아니었다. 내가 그렇게 한 것은 내 집안에서 나만이 그것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회피하면 나의 집안이 완전 콩가루가 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도 사실 피하고 싶었다. 

가끔 나는 생각한다. 만일 내가 어린 시절 밥상머리에서 부모님으로부터 인생에 교훈이 되는 고상한 말씀을 듣고 자랐다면, 나는 어떤 인물이 되었을까? 만일 지난 수십 년 간 부모님이 경제적으로 독립해 자식 도움을 받지 않고, 오히려 그 반대로 자식들이 가끔 부모님으로부터 도움을 받았다면, 오늘 우리의 부자관계는 어떤 모습이 되었을까? 이런 생각을 할 때면 마음이 아리다. 

아버지가 오늘 보름 만에 퇴원하셨다. 갖고 있는 병마가 달아난 게 아니다. 잠시 외출을 하는 것이다. 이젠 어쩔 수 없는 단계에 진입한 듯하다. 얼마 남지 않았다. 의사도 준비를 하란다. 하루 종일 마음이 아프고 무겁다. 어떻게 하면 얼마 남지 않은 아버지의 삶이 마지막 순간까지 존엄함을 잃지 않을 수 있을까? 그 속에서 자식인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정말 아버지가 나의 기계적 효도가 아닌 애정 어린 효도를 느끼면서 하늘나라로 가실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