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st Essays/자유롭고 독립적인 삶

혼인의 자유, 이혼의 자유

박찬운 교수 2019. 6. 16. 10:24

 

A와 B는 부부로 둘 다 독립적인 경제능력이 있으며, 둘 사이엔 성년의 자녀들이 있다. A는 언제부터인가 B에 대한 사랑이 식었다고 느끼고 C와 가까이 지내게 되었다. A는 B와의 결혼생활을 정리하고 C와 새 출발을 하려고 B에게 이혼을 제의하였으나 B는 결사반대다. 그러나 A는 B와 별거를 선언하고 C와 동거에 들어갔다. 이런 세월이 어느새 5년이 지났다. A는 B와의 대화를 통해선 도저히 이혼할 수 없다는 판단을 하고 법원에 이혼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법원은 어떤 결론을 내릴까. 설마했는데, 법원은 A의 이혼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소위 유책주의 판례에 입각해 A의 이혼소송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이혼에 원인을 제공한 A는 이혼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이다.

4년 전(2015년)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파탄주의를 받아들이지 않고 유책주의를 고수했다. 대법원이 유책주의를 고수한 가장 큰 이유는, 유책 배우자의 상대방을 보호할 입법적 조치가 마련되지 않아, 현 단계에서 파탄주의를 취하면 유책배우자의 행복을 위해 상대방이 일방적으로 희생될 위험에 빠진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상대방 보호’란 경제적인 문제가 핵심이다. 대법원 판례의 취지를 쉽게 한 마디로 말하면 이런 것이다.

"남편들아, 네 행복 찾으려고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세상에 마누라를 버려? 에이, 의리 없는 놈아, 죽을 때까지 책임져라! 아내들아, 이 모진 세상에서 헤어지면 어찌 살런가. 어쩔 수 없다. 남편 바짓가랑이 잡고 그냥 살아라.“

나는 이 판례에 대해서 아무리 유책배우자의 상대방이 경제적으로 어렵다고 해도 법원이 이런 식으로 결혼을 강제하는 것이 맞을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표한 적이 있다. 

그런데 위의 예는 대법원이 유책주의를 고수한 이유와도 거리가 멀다. A와 B 모두 경제적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B는 이혼을 한다고 해서 경제적으로 위험에 빠지지 않는다. 이런 사건에서조차 국가(법원)가 유책주의를 들이밀며 혼인생활의 유지를 강제하는 것이 맞는가.

지금 B는 오로지 법적 배우자란 지위를 이용해 A가 결혼 공동체 밖으로 나가는 것을 막고 있다. A는 결코 죽을 때까지 B가 허락하지 않는 한 결혼의 틀 속에서 빠져 나갈 수 없다는 것이다. 제 발로 걸어 나가는 것까진 강제할 수 없지만, B의 동의 없이 A가 밖에서 혼외의 사람을 만난다면, A와 그 상대방의 삶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겠다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나는 이런 혼인생활의 유지를 명하는 법원의 판결엔 동의할 수 없다. 유책배우자의 상대방을 보호하겠다는 유책주의에 일말의 합리성을 인정해 주고 싶어도, 이 사례에서까지 유책주의를 적용하는 법원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

국가가 이런 정도에 이른 혼인생활에 개입하여 그 유지를 명하는 것은 혼인의 자유에 대한 본질적 침해다. 인간이 결혼을 선택하는 것도, 그것에서 벗어나는 것도, 본질적으로 자유다. 국가는 경우에 따라 그 자유를 일부 제한할 수 있지만 저 같은 경우에까지 혼인해소를 제한하는 것은 하나의 ‘폭력’이다. 

이 글이 누굴 염두에 두고 쓴 것인지는 짐작하겠지만, 여기 사실관계가 그들의 것과 똑 같지는 않다는 것도 노파심에 적어 둔다.(2019. 6. 15)